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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Oct 04. 2020

프록시마 프로젝트

자녀와의 약속

‘프록시마(proxima)’의 사전적 의미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을 의미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우주 정류장의 이름이다. <프록시마 프로젝트>란 ‘프록시마’라는 이름의 우주 정류장에 우주 비행사를 보내는 프로젝트이고 이 영화는 우주 비행사로 선발된 프랑스 국적의 사라(에바 그린)가 우주 비행사로 선발된 후 우주 정류장으로 떠날 때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프록시마 프로젝트>를 관람하고 난 후 두 편의 비슷한 영화들이 생각났다. 하나는 <퍼스트 맨>(2018), 다른 하나는 <그래비티>(2013)이다. <퍼스트 맨>은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서 달에 가기 위한 어느 우주 비행사의 광기에 가까운 집념을 보여주는 영화이고, <그래비티>는 조난 당한 우주 왕복선으로부터 다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한 여성 우주 비행사의 여정을 그린 영화다.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우주에 가기 위한 주인공의 훈련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퍼스트맨>과 비슷하고 여성 우주 비행사가 주인공이란 점에서 <그래비티>와도 유사하다. 그런데 우연히도 <퍼스트 맨>과 <그래비티>의 주인공들은 지구에서 어린 딸들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퍼스트 맨> 중


<퍼스트 맨>의 주인공 닐(라이언 고슬링)의 딸은 병으로 사망했고, <그래비티>의 라이언(산드라 블록)의 딸은 사고로 죽었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구를 떠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구에서는 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우주란 불행한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도피처였고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우주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 후 지구로 귀환한다.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주인공 사라도 어린 딸 스텔라가 있다. 사라는 남편과 별거 중이기에 스텔라를 봐 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 어마어마한 훈련과 언론과의 인터뷰를 마치면 딸에게 달려가지만 같이 있을 시간은 늘 부족하다. 사라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고된 훈련이 아니라 딸에 대한 걱정이다. 자신이 떠한 후 지구에 남아 있을 딸이 걱정되어 우주에 가는 것도 망설여진다.  어쩌면 <퍼스트 맨>과 <그래비티>의 주인공들이 우주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지구에서 자신을 중력처럼 잡아 당기는 딸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프랑스 여성 우주 비행사가 참여하게 되었다면 분명 자신 뿐 아니라 국가의 경사이고 사라는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스텔라는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관심이 없다. 스텔라는 우주 비행사가 아니라 엄마가 필요한 아이이다. 엄마가 자신과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것을 늘 섭섭해하고 전형적인 8살 아이들처럼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을 한다. 끊임없이 요구만 할 뿐 타협이 되지 않는 스텔라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뿐이다. 

사라의 동료인 마이크(맷 딜런)은 종종 시간을 어기고 훈련에 잘 따라오지 못하는 사라를 타박하지만 사라는 그런 마이크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넌 부인이 다 해 주잖아.”



이 영화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 고증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 여성들이 짊어져야 하는 육아에 대한 책임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 비행사가 되어도 육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 바로 엄마들이다. 어느 나라든, 어느 직업이든 육아에 대해 가장 많은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엄마이고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 앞에선 우주 비행사나 사무직 근로자나 가정 주부나 모두 평등해진다. 자신의 오랜 꿈 따위는 자식의 미래 앞에서 잊혀지고 그 어떤 국가의 중대사도 자식의 안위를 뛰어넘지 못한다. 영화 속 사라가 유능해 보이는 이유는 우주 비행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라 우주 비행사 '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텔라가 어른이 된다면 그 때 엄마가 왜 자기와 자주 놀아주지 못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엄마 어깨 위에 놓여있던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고, 국가를 대표하는 우주 비행사가 되었으면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엄마에게 오히려 감사할 것이다. 


혹시 오늘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던 시간을 다른 곳에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대신 선택한 일이 아이들이 자랐을 때 이해 받을 수 있는가?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될 정도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국가의 이름을 걸고 우주로 나가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아이들과의 약속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랬듯, 당신의 아이들도 당신이 지키지 않았던 약속들을 평생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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