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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Feb 05. 2021

어디갔어, 버나뎃

진정한 사과

* <어디갔어 버나뎃>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버나뎃(케이트 블란챗)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건축을 그만두게 된다. 건축가로서의 재능을 억누른 채 육아에만 전념한지 20년이 지났고, 한 때 건축계의 아이돌이었던 버나뎃은 사회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갔다.  버나뎃이 정신병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하자 남편인 엘진(빌리 크루덥)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려 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 싫은 버나뎃은 가출을 하여 남극으로 떠난다.  



<어디갔어 버나뎃>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주인공 버나뎃은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연기파 배우인 케이트 블란챗이 연기한 버나뎃이라는 캐릭터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재미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버나뎃만큼 재미있는 여성 캐릭터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버나뎃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워하며 버나뎃을 집요하게 왕따 시키려는 옆집 여자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이다.



오드리는 마을의 얼굴 마담이자 모든 행사의 중심에 있는 여성이다. 마을에서 오드리가 모르는 사람이나 사건은 없다. 그런 오드리가 버나뎃을 미워하는 이유는 버나뎃이 마을 일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드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버나뎃을 괴롭히려고 하고 버나뎃도 오드리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드리가 버나뎃을 미워하는 이유는 버나뎃이 마을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드리는 버나뎃을 질투했다. 마을 토박이인 오드리는 주목 받고 인정 받는 것을 즐기는 여성이지만 그녀가 받을 수 있는 인정은 마을 안에 머물러 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녀는 Nobody이다. 반면 버나뎃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건축가이다. 버나뎃의 남편은 성공한 기업가이고 딸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다. 



버나뎃은 오드리가  이루고 싶은 것을 모두 이룬 여성이었다. 버나뎃과 비교하면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그런 여성이 이웃에 살면서 자신을 무시하고 있으니 그녀의 평판을 깎아 내리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드리는 버나뎃을 오해했다. 버나뎃은 오드리를 무시했던 것이 아니다. 버나뎃은 공황장애가 있었고 심장이 좋지 않았던 딸을 돌봐야만 했다. 버나뎃의 집은 비가 세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있다. 담쟁이는 마루를 뚫고 올라온다. 유명한 건축가가 사는 집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집안 일조차 버거운 버나뎃이 오드리에게까지 관심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영화는 심리학자까지 등장시켜 심리학 용어들을 남발하면서 버나뎃의 증세가 매우 심각하기에 격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하지만 정작 버나뎃을 치유시킨 사람은 오드리였다.


남편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버나뎃은 오드리의 집으로 도망친다. 피난처가 절실했던 버나뎃은 오드리에게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사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처지를 오드리에게 고백한다. 


“난 친구도 없고, 시애틀에 아는 사람도 없다.”


자신이 동경하던 버나뎃이 현실 세계의 왕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오드리의 감정은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드리도 숨기고 싶던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다. 오드리는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았고 아들은 마약을 하고 있었다.


오드리의 과도한 인정 욕구는 현실의 고통을 숨기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가장 밝히기 싫은 비밀을 공유하게 된 버나뎃과 오드리는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인지 경쟁적으로 고백하며 친구가 되어갔다. 두 사람이 화해하는 장면이 영화의 엔딩만큼이나 뭉클한 이유는 나도 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때문에 감정이 상한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은 사과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과하는 대신 상대방을 비난함으로써 잘못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려고 하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생각은 정상이고 나와 다른 생각은 비정상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 제정신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정신은 제정신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모두 정상일까? 나의 행동이나 습관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고치기 어려운 나의 습관이 이웃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더라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어떤 행동을 미워하는 이웃이나 동료가 있다면, 그래서 그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편하다면 내 행동이 그들 눈에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보자.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해 보자. 사과란 누군가의 미움으로부터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 당신은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고 그 것을 인정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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