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 생각지도 못한 만남들은 즐겁다.
#7
14:35에 출발했어야 할 비행기가 15:35가 되도록 떠날 생각을 않는다. 30분 전에 탑승을 마쳤으므로 엉덩이는 점점 빵 구워지듯 구워지고 있다.
오늘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 탑승 후 30분 정도를 눈을 붙였는데 눈을 뜨고 나서도 탑승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라이언 에어에서는 왜 늦어지는지 방송조차 하지 않는다. 뒤에 아일랜드 사람과 도미니카 사람이 탔는데 타자마자 대화를 시작해서는 지금까지도. 이 사람들이 짐작하는 바로는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와 관련 있는 것 같다고. 옆 좌석에 앉은 영국분은 뭔가 예약 취소 전화를 건다고 난리고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영국발 아일랜드행 비행기가 17:50인데 놓치게 될 것 같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생각도 못했네. 다행히 런던에서 포르투로 가는 비행기를 일부러 좀 느지막이 끊어놨는데 타이트하게 끊었더라면 첫날부터 엄청 일정이 꼬일 뻔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이제 출발한다.
이륙 후 보이는 덴마크라는 나라는 어쩜 이리 평평할 수 있을까 싶게 평지로 되어 있다. 구름이 적당히 있는 오늘 같은 날씨에 그 평평함이 더 잘 느껴지는 듯하다.
1시간 50분, 베이크 되고 있는 엉덩이가 무사하길 바라며.
잠이 깬 뒤에는 컴퓨터를 꺼내서 동영상 편집. 이북리더기가 있었으면 책을 읽었겠지만 컴퓨터로는 책보단 동영상 편집이 맞겠단 생각(?)이 들어. 착륙할 때 컴퓨터 집어넣으려고 보니 옆사람 여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 주워주려고 했지만!!!! 팔이 안 닿아서 옆 사람한테 '여권 떨어졌어' 했더니 자기 거 아닌 것처럼 하다가 '넌 팔이 기니?'라고 해서 '아니'하고 있었더니 부랴부랴 자기 거라고. 뭔가 부산스러워 보여서 있는 힘껏 짧은 팔로 주워서 줬더니 엄청 고마워하며 말문이 막 터짐 ㅎㅎㅎㅎㅎ 자긴 덴마크에 강의하러 왔다가 간다며 나보고 학생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전공이 뭐냐고... 짧은 시간에 엄청 다양한 얘기를 나눔. 라이언에어가 늦게 출발한 이유는 아픈 환자가 있어서였다고(난 자느라 몰랐;;;) 그런데 자기는 메디컬 담당 교수지만 그냥 숨어버렸다며, 자기는 메디컬 관련해서 의사는 아니고 환자-의사 간 커뮤니케이션을 향상하는 그런 일들을 한다며... 덴마크나 여타 유럽 국가들은 환자의 인권이 너무 높아서 의료진들이 환자의 말에 엄청 눈치 봐가며 일한다고. 아시아와는 다르다길래, '음, 그럴 수 있지, 저개발국가들은 그런 게 있을 수 있지'라고 얘길 했더니 약간 놀라며 어디에서 왔냐고 하길래 '응, 나 한국'이라고 했더니 한국은 좀 다를 수 있겠다며, 중국, 일본, 한국에 대한 리서치도 하고 있다고 했다.
인종차별 당할 뻔했다... 당한 건가...
기득권들은 본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면서 그들과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딱 나누는 뭔가가 있다. 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 있을지도, 많이 없어졌지만... 이런 일을 겪으며 나부터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어쨌든 엄청나게 수다를 떨다가 '너 진짜 나를 구했어'라길래 '뭐, 그런 걸 가지고'라고 얘기하려다 그냥 'it's ma pleasure'하고 끝냄 ㅎㅎㅎㅎㅎ 캠브리지에 있는 집도 사진으로 보여주고 남편이 덴마크인이란 것도 알려주고 어릴 때 덴마크에서 살았다며 ㅎㅎㅎㅎㅎ 아, 진짜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엄청 많은 얘길 나눴네.
한 번씩 생각지도 못한 이런 만남들은 즐겁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이런 만남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6월에 왔던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와이파이가 안 되더니 오늘은 엄청 잘됨. 그리고 e-passport 기기도 그때와는 달리 다 잘 작동되던데 나는 또 튕김. 여권 검사하시는 분이 돋보기까지 꺼내서 위조 여권인지 확인함. 그러고는 멋쩍은 듯이 한국 여권 그린 아니었냐며, 바뀌었다고 좀 됐다고(물론 바꾼 여권 사용하는 사람이 다수는 아닐 터이니) 했다. 나는 왜 인식이 안 되는 거니?!!
**탄자니아에서는 의사를 너무 어려워하는 환아 부모님들을 교육하는 게 일이었는데... 아이러니다, 진짜. 중도란 없는 건가... 인권이 수평이 되는 일은 이뤄지지 않는 걸까... 이렇게 다른 세상을 주기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니 다중이가 안 될 리 만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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