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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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 하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사람들은(종교를 믿거나 그렇지 않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고 하는가.
그래서 거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산티아고 순례길 페이스북 그룹에 질문을 던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답을 줬다.
그룹 멤버들은 건강을 위해,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기에, 은퇴 후 그 전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기 위해, 그냥 그럴 때인 것 같아서 등 등...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줬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대답은 "많은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어떤 목적을 찾기 위해서이다. 별다른 목적 없이(목적이 있는 경우도) 길을 걷다 보면 무엇인가 찾아진다. 물론 찾지 못해도 어떤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
그리고 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봤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된 건 시간을 저 멀리로 거슬러 올라 2008년 말 또는 2009년 초, 서점에서 노란색 표지에 매료되어 구입한 '박기영의 『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왜 가셨어요?』'라는 책을 읽고 나서이다. 박기영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고등학교 애니메이션부 동아리 활동할 때 친구 중 하나가 박기영 가수님의 팬이라 '나비'라는 노래를 노래방에서 엄청 불러서 알고만 있는 정도였다) 산티아고에 대해서도 몰랐던 때이지만 그녀의 글은 내게 미지의 세계를 보여줬다. 지금은 그 하나하나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당시의 내게는 나름 센세이셔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박기영 가수님의 엄청난 광팬이 됐음과 동시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생에 한 번은, 종교를 믿지 않는 나라도, 순례길 완주에 도전해보리라 마음먹었다(박기영 가수님은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그게 첫 번째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 결심한 계기, 그리고 이런저런 얘길 하면서 순례길을 다녀온 친구들의 흥미진진한 경험담을 듣고,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의 애정 어린 산티아고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고 하는 게 쌓이며 점점 더 꼭 가보자란 마음을 가지게 됐다. 이렇게 빌드업된 마음이 아주 오래전 인연이 블로그에 순례길을 다녀왔다는 글을 남기면서 '어? 유럽에서 사는 동안 순례길을 다녀오는 것도(좀 무리를 해서라도) 좋겠다!' 싶어서 앞뒤 안 재고 비행기표를 예매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가는지.
위에 저렇게 구구절절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고 하는 배경을 썼지만 '왜'에 대한 답은 보류하고 싶은 마음인 건지, 어쩐 건지... 막상 순례길을 걸으면 하루 15-40 km 거리를 걷느라 저런 생각들이 무의미해지기도 한단다. 모르니까 간다는 게 맞는 걸까(알면 가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나란 사람, 알아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정말 마음에 든 것이겠고, 한마디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 길이라는 게 표지판이 있을 순 있어도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순간순간의 작은 선택들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딘가에 닿겠지 싶은 마음으로.
그 답은 여행이 끝난 뒤 다시 내 안에서 결론을 내리고 글로 풀어봐야겠다. 당장은 당장의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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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장황하게 글을 남긴 후 새로운 코멘트가 달려서 확인해 보니, 이야기인즉슨, 본인은 아들 둘을 잃고 5년 동안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냐며 살아가다가 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순례길에 올랐단다. 그래서 순례길을 다녀왔지만 다른 순례자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배우거나 깨달은 게 없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단다. 순례길을 몇 번이나 다녀온 친구에게 그렇게 말을 했더니 아주 간결하게 '넌 배웠어, 다만 듣지 않았을 뿐이야'란 얘길 들었다고. 그리곤 갑자기 큰 깨달음이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이전의 밝고 오픈마인드이고 쾌활하던 자기의 모습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배움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 아니었나 하는. 그리고 그는 내년 4월에 한번 더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새 순례길을 걸으면 뭔가를 배울/얻을 수 있단 기대를 어렴풋이 했었던(하고 있기도)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마음은 다 내려놓고 가야지 싶은, 그리고 그냥 그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을 즐겨야지 싶은.
그의 얘기에 나는 '애도를 표합니다(아들을 잃은 것에 대한).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댓글이라며 고맙다고 그런 경험(깨달음 전)이 내게도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어떻게 그런 경험을 받아들일지도 알게 됐다고, 벌써 카미노를 시작한 것 같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그냥 간다!
순례길에서의 더 생생한 이야기는 아래의 유튜브로!
https://youtube.com/@humanveings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