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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리 Jan 18. 2023

번외_무료 나눔의 에피소드

덴마크에서의 에피소드 #1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물건 나눔(주방 용품 위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쓴다.


세상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교류를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개인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가 결정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건 나눔의 글을 올리고 얼마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기는 어떤 물품이 마음에 드는데 언제 가면 되겠냐, 하나만 선택해도 되냐, 정말 무료로 나눔 하는 거냐, 오늘 바로 가도 되냐 등 등. 대략 12명 정도에게 메시지가 왔고 결과적으론 우리 집에 다섯 팀이 방문했다.


가장 먼저 내게 토스터기를 가져가고 싶다고 얘기한 중국분. 아주 간결하게 본인이 가져가고 싶은 물건을 얘기하더니 시간 약속을 잡고 와서 본인이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돌아갔다. 우리 학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며 필요한 물건을 나눔 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아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과업을 마무리한 듯한 만족감을 풍기며 돌아갔다. 깔끔한 무료 나눔의 현장이랄까.


두 번째로 왔던 사람은 쇽띠(strong)라는 이름의 인도분과 그의 아들. 현관문에 붙어있는 키패드 사용이 미숙해 직접 내려가서 에스코트를 했는데 남자아이를 안고 왔다. 정말 무료냐며 본인은 인도에서 왔다고 이런 기회가 있어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내겐 필요가 없어진 물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도 뭐 한 물건들이라 나눔을 하는 건데 이리 말해주니 고맙다. 아이를 위해 조그만 통을 위주로 챙기고 꼬마애(대략 5~6살 정도)가 있기에 레고를 하나 줬더니 아기가 레고를 자꾸 뿌리친다. 싫어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오기 전에 아무 물건도 만지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해서 심통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 그런 거라면 설명서까지 챙겨주겠다고 하곤 챙겨줬더니 엄마가 더 좋아한다. 아이는 엄마의 엄격함에 마음이 상한 듯한 분위기라 더 이상 말을 걸거나 하기 힘들었다(글을 쓰다 보니 너무 어린아이에게 레고를 선물해 줬나 하는 생각이... 삼키거나 하진 않겠지? 엄마가 주의를 주겠지? 아... 너무 경솔했나, 나...). 그렇게 그들이 가고 두 시간 뒤, 세 번째 분이 집에 왔다.


어디서 왔냐 물으니 필리핀에서 왔다며 아기의 얼굴이 엄마보다 하얀 걸 보니 덴마크인(아마 89%의 확률로)이나 다른 백인과 결혼한 필리핀인 같았다. 메시지로 파란색 시스테마 통을 부탁했었다고 얘길 하는 그녀, 아! 따로 챙겨놓았다며 ‘역시 시스테마 통이지(뉴질랜드산 락앤락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라며 건네니 자기도 그래서 좋아한다며 아이를 위해 조그만 통이 필요했는데 너무 고맙다 얘길 한다. 아기(대략 두 살)는 처음엔 낯을 가리더니 이내 방긋방긋 웃는다. 그렇게 본인이 원하는 물건을 챙겨서 갔다. 그리곤 메시지로 다시 한번 고맙단 얘기를 한다. 마무리까지 확실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분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신 분. 부다페스트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적 친밀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게 메시지로는 약간 공격적인 어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오기 전 과연 어떤 사람일까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기 전부터 자기가 원하는 물건 말고라도 다 가져가서 charity기부할 수 있다며 다 가져가도 되냐, 여유분의 담을 봉지나 가방 같은 게 있냐 묻길래 ‘이 사람은 뭐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모든 물건을 줄 순 없다, 벌써 몇 명이 오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냐며 필요한 물건만 가져가라고 했었다. 그리고 여분의 가방은 당신 쪽에서 챙겨 와야 한다고. 몇 번의 대화 끝에 시간 약속을 잡았고 그녀가 도착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서양인들의 나이대는 동양인인 내가 가늠하기 어렵지만, 짐작하건대) 여성분이 등장했고 말투가 좀 세긴 했지만 얘길 해보니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단 결론에 다다랐다. 기부 관련해서 한 얘기는 무료 나눔을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편의를 위해 모든 물건을 가져가란 전제 조건을 붙인단다(이 생각 자체를 해보질 못했다!). 그리고 헝가리 총리(대통령?) 관련 얘기를 또 하게 됐는데 지금 북한 같이 되어가고 있다며... 부다페스트에서 스톡홀름으로 갈 때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분이 해줬던 얘기와 아주 비슷한 얘기를 해서 좀 놀랐다. 아주 똑같은 얘긴 아니지만 공산주의 비슷한 그런 정치를 하고 있다고... 그리곤 자기가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쿨하게 돌아갔다. 얘기를 나눠보지 않고 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잘못될 수도 있단 생각과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좀 더 다정한 언어 습관을 익히지 못해 안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 걸까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이렇게 쓰게 만든 장본인들. 우크라이나에서 피난을 왔다는 타냐라는 분과 그의 남편(덴마크는 국가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정착 지원을 장려하고 있다).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서(8시쯤... 물론 4시만 되면 어둑해지는 덴마크이지만) 도착한 그들. 쇽띠와 같이 현관문 옆 키패드 사용을 못해 내려가서 직접 에스코트해서 집으로 왔다. 부인이 본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며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사실 남편은 표정이 조금 무뚝뚝해서 살짝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고르며 있길래 옆에 있던 작은 전기장판을 들곤 ‘이걸 선물로 주고 싶어요(전기장판은 무료 나눔 품목이 아니었다)’라고 하곤 설명을 해줬더니 그 무뚝뚝했던  표정의 남편의 얼굴이 미소를 띤다. 아하, 귀욤상이셨구나! 자기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데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리곤 4일 전에도 우크라이나 어느 지방에 폭탄이 떨어졌다며 관련 동영상을 보여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러시아가 주춤한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아직도 전쟁은 -ing인 사실이 믿기 어렵다. 아니, 도대체 언제쯤 이 전쟁은 끝이 나는 걸까. 직접 이렇게 난민을 보게 되니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상상하던 난민과는 달라서 색다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상상 속에 존재하던 난민과 그들의 상태는 똑같겠지,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살기 위해 타국으로 온 것은. 그들은 두 달 전에 덴마크에 도착했다면서 ‘일을 하고 있냐?‘는 나의 물음에 CPR(주민등록번호 같은...)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그들과 헤어졌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떠났는데도 그들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파킨슨병 Pakinson's disease

파킨슨병은 치매 다음으로 흔한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입니다. 우리 뇌 속에는 여러 가지 신경 전달 물질이 있는데 그중에서 운동에 꼭 필요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파킨슨병은 중뇌에 위치한 흑질이라는 뇌의 특정부위에서 이러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원인 모르게 서서히 소실되어 가는 질환으로, 파킨슨 환자들에게서는 서동증(운동 느림), 안정 시 떨림, 근육 강직, 자세 불안정 등의 증상이 발생합니다. 파킨슨병은 주로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이 병에 걸릴 위험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발생빈도는 인구 1,000 명 당 1명 내지 2명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60세 이상의 노령층에서는 약 1%, 65세 이상에서는 약 2% 정도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퍼옴.


마지막은 덴마크 출신의 번아웃 온 여성분. 메시지로만 간단한 대화가 오감에도 그 친절함이 느껴지던. 그도 그럴 게 정확한 시간관념과 의사소통 방식, 누굴까 싶은 궁금증이 생기던. 우리 학교 학사(정치학)/석사(국제관계학) 출신이라고 밝힌 그녀는 본인이 원했던 물건을 챙기고 나서 중간중간 얘길 나눴는데 얘길 나누다 보니 아주 근래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는 얘길 했다. 그러면서 너무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그래서 난 조금 화들짝 놀란 채로(그도 그럴 게 덴마크는 전 세계적으로도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여기서?’라고 물었더니 ceo가 영국에서 20여 년 정도 산 덴마크인인데 덴마크 멘탈리티보단 영국 쪽에 가까운 거 같다며 야근이랑 스트레스 풀한 환경에 익숙했다며 푸념을 늘어놨다(사실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향 차이일수도). 오피스 잡인데 정말 자기는 조금 덜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일하기 일쑤였다며... 조금 놀라웠다. 그래서 번아웃이 온 상태라면 조금 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며 더 좋은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 줬다. 그도 그럴 게 경력도 있고 덴마크인에다 석사학위도 있으니 일 찾는 게 거기 속하지 않는 사람들보단 쉬울 게 확실하니까(뭐, 이것도 개인의 능력과 운 때가 맞아떨어져야하긴 하지만).


이번 물건 나눔을 통해서 뼈저리게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나름 맥시멀리스트보단 미니멀리스트에 가깝게 산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나를 발견했고 이걸 계기로 다시금 미니멀리스트를 목표해 보자란 다짐을 해본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산다, 나도 그중의 하나이고. 이런저런 경험으로 수놓아지는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한 번씩 생각하는데... 뭐, 어디로든 가고 있지 않겠냐며. 좀 더 재밌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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