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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리 Jan 22. 2023

집으로 가는 길 1

뮌헨 공항에서 끼적이는 글.

호스텔이지만 꽤나 좋은 느낌의 숙소였던 스웨덴의 generator (깨끗하고 시설 좋고 새로운 친구도 만날 수 있었던 환경) 같은 환경을 기대하며 코펜하겐에서도 generator로 1박 예약을 했다. 사실 처음엔 next house Copenhagen이라는 호스텔에 예약을 했었지만 vacating inspection(아파트를 비우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검사, 이것도 할 말이 많다만 오늘은 생략)의 일정이 변경되어서 취소를 했던 터였다. 메트로를 타고 내려서 큰 캐리어 하나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 메신저백을 둘러매고 15분 정도를 걸었다. 짐이 없었다면 7-8분 걸릴 거리를 울퉁불퉁한 코펜하겐의 도로 상황에 낑낑대며 온 탓이다. 이 악물고 도착했더니 메인 출입구부터 풍기는 스웨덴의 그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조금 덜 좋을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꽤나 그 차이가 크던. 하지만 이 가격에 1박만 하면 되므로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니 가격 대비해서는 그리 나쁘지 않다. 덴마크는 물가가 비싼 나라이므로.

내 부탁으로 친구가 추천해 준 두 곳의 레스토랑(한 곳은 덴마크 음식 전문점인 Det Lille Apotek과 다른 한 곳은 Cantina라는 seriously delicious한 곳을 가고 싶다면 가보라던 이태리식 전문점)을 건너뛰고 쌀밥을 먹기로 했다. 역시 밥심이다, 한국인은. 가장 가까운 태국음식점으로 가서 돼지고기 볶음과 오징어 튀김을 시켜 먹었다. 한 개는 적고 두 개는 많은 걸 알았지만 너무 힘들어 일단 시키고 보자 마인드였던 터라. 다행히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의 밥을 든든히 먹고 나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10시 30분에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을 잘 못 잤다. 덴마크에서 생긴 이상한 수면 습관 + 창문을 닫아놨음에도, 7층에 방이 있었음에도 밖에서 들리는 소음 + 한밤중엔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1층 친구의 코골이까지(내 침대는 2층, 처음엔 내가 너무 코를 크게 골아 내 코골이에 내가 놀라서 깬 줄!). 그렇게 잠을 설치고 알람이 울리기 전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며 이럴 거면 그냥 공항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4시 반이 되기 전에 일어나 공항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차가운 공기 탓에 정신이 말똥말똥, 오자마자 체크인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는 이메일로 온 셀프 체크인 후 짐도 셀프 체크인을 했다.

짐 벨트에 큰 캐리어를 올렸더니 24.3kg. 루프트한자의 체크인 수하물은 23kg이지만 빼고 빼고 빼도 그 무게는 안 되겠기에 정말 조금만 더 넣었다 생각했는데 정말 조금 더 무게가 늘었었구나. 영리한 건지 간사한 건지 모르겠을 나의 전략 또는 계략은 다행스럽게도 먹혀들었다. 셀프 체크인을 하면서 도와주시던 직원분이 아주 퉁명스럽게 ‘너무 무겁네요, 짐을 좀 빼야 할 것 같은데요’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하아’하고 새어 나오면서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보내줄게요, 다음부턴 주의 바랍니다’라는 말을 뱉게 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그 큰 짐을 다시 풀고 싸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서 한숨이 정말 푹하고 나왔었다.

아침부터 일찍 서두른 탓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어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30분을 내리 자고 일어났는데 비행기가 아직 땅에 붙어있다. 아직 출발하지 못했구나. 괜찮다, 어차피 독일 뮌헨 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6시간 정도의 대기 시간이 있으니. 그렇게 다시 눈을 뜬 지 2분 여 만에 비행기는 급발진을 해서 하늘길이 올랐다. 가장 싼 항공권을 사서인지 코펜하겐-뮌헨, 뮌헨-인천 두 비행기의 좌석이 다 샌드위치다. 식사가 아니라 3-3 좌석에 중간 좌석이라는 말. 괜찮다. 어쨌거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잖는가. 내일 하루 종일 푹 쉬자, 아마 그러지 못하고 그러지 아니하겠지만은(도착했더니 그 30분 늦게 이륙하는 것도 원래 일정에 들어가있던 거였는지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덴마크에서 떠난다는 느낌이 없다가(마냥 가족을 본다는 설렘만 있었는데) 영국에 있는 친구와의 짧은 통화에 내가 정말 덴마크를 떠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덴마크, 뭐랄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많은 것들. 물론 다른 유럽 국가나 아니면 아예 다른 대륙에 갔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한가득 했겠지만, 좀 다르다. 좀 다른 식의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준 곳. 다른 말로는 표현이 잘 안 된다. 딱 이 시기에 이 나이에 이곳에 와서 느꼈던 그 수많은 감정들이 조금 벅찼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친구와의 통화를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나는 어땠나라는 질문을 던졌고 답은 없지만 많이 경험했구나라는 대답을 들었다, 누구도 아닌 내게서.

곧 어떤 식으로든 다시 오게 되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떠난다.


​​

며칠 전 덴마크를 떠나기 전 가장 가깝게 지냈던 두 명에게 가게 됐으니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한 명은 올보에서 알고 꽤 자주 만났던 거의 유일무이한 한국인. 그리고 다른 한 명은 1학기 때부터 프로젝트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편한 덴마크인 친구. 그러자고 약속을 하고 한국분과는 두 번 만나 맛있는 저녁 식사를 먹고 덴마크인 친구와는 마지막날 저녁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윤 뭐랄까, 평소에도 연락을 꾸준히 해오지 않다 굳이 싶은 마음이기도 했고... 많은 감정이 교차해서였다. 글로 남기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중략.

...며칠 사이 엄청 먹고 다녔구나 싶은 생각...

Princess Juliana, 선상 레스토랑
Catch sushi, 스시 뷔페
Caféministeriet, 파스타에 블랙홀 달린 줄
Cafe Vesterå V4, 분위기가 좋았던 곳

그렇게 만난 그들과 덴마크와 인생이란 뭘까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답은 없지만 어떻게든 셋 다 새로운 시작을 목전에 앞둔 상태라(인종도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설렘 반 걱정 반이던. 그리고 여기라서 많은 걸 느낀 것 같다는 독백처럼 내뱉은 나의 덴마크 생활의 끝맺음 문장. 그리고 덴마크 친구가 2023년의 본인의 목표는 ‘be kind to myself!'라던.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심으로 해야만 하는 일!

우리 모두 자기 자신에게 제일 잘해봐요, 이번 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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