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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리 Jan 21. 2023

올보(Aalborg) 거주민으로서의 마지막 하루

덴마크 올보

집 앞에 생긴 새로운 cafe-bar-lounge*에 들어가 Tornhøjvej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예전에 올보에서 이민자들이 특히 많이 살고 우범지역이었던 곳이다. 그런 곳을 새로 싹 밀어내고 깔끔한 도시로 탈바꿈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곳, 그런 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다름 아닌 학교와 가까워서였고 더욱이 아파트 바로 밑에 Netto라는 슈퍼마켓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을 보러 먼 곳의 슈퍼마켓을 들락날락거리는 건 요리를 좋아하고 먹는 것을 사랑하는 내겐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파트 앞에 코로나 시기 땐 검사소로 쓰이던 작은 공간이 cafe-bar-lounge로 탈바꿈을 했고 집을 나가야 하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들어가 보게 됐다. 그도 그럴 게 올보에서는 한 달에 두세 번만 외식을 했다. 여기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격 대비 맛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느껴서가 가장 큰 이유랄까.

카페에 들어서니 직원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손님은 아직 아무도 없다. 12시가 안 된 시간이었으니 당연한 걸까. 가장 구석으로 저리를 잡았다. 아파트가 보이는 곳으로, 뭔가 마지막이란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걸까.

잠시 후 덴마크어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며칠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the menu'라는 괴기한(호러/블랙코미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치즈 버거(9.95 파운드)를 그리도 먹고 싶어 진다. 하지만 며칠째 버거를 못 먹었기 때문에 이때가 기회다 싶은 마음에 Tornhøjvej 버거를 시키기로 했다. 내용물은 소고기 패티에 치즈 올라가고 블라 블라... 안 시킬 이유가 없었다. 자신 있는 메뉴가 없을 때는 가장 위에 적혀 있는 메뉴를 시키는 게 좋다, 그게 그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이기 때문이다. 버거를 시키고 멍하니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오가는 사람들과 카페로 들어오는 사람들과의 아이컨택이 조금 부담스러워 창가를 등지고 앉았다. 내가 마수걸이를 한 탓인지 끊임없이 들어오던 또 다른 손님들(그냥 손님이 많은 가게일 수도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나 다시 자존감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내 자존감 지킴이가 돼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달까).

웨이트리스분이 주문을 받고는 세프가 오고 있다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한창 집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거라 쉼이 필요했던 나는 '전혀 문제없다!‘고 얘길 하곤 찬찬히 카페 내부를 살펴봤다. 곳곳에 있는 크기가 다른 덴마크 국기와 너도나도 앞다투어 주황불빛 내뿜는 전등이 가득하다. 거기다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tv 스크린에는 장작이 타고 있는 영상을 틀어놨다, ‘이게 hygge**입니다!’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듯이.

15분쯤 지났을까 시킨 버거와 웨지 감자가 서빙됐다. 딱 봐도 양이 많다. 일단 기념(?) 사진을 찍고 버거부터 맛본다. 객관적으로 맛 평가를 하자면 별점 다섯 개에 별 세 개를 받을까 말까 한 맛. 하지만 뭔가 학교 앞 버거를 먹는 느낌이라 이번 생각이 나면서 나쁘지 않았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기본 소스로 달콤함이 가득한 걸 보니 설탕이 좀 들어갔나 싶기도. 소고기 패티이지만 안까지 90%를 익힌, 토마토, 양상추, 생양파가 아삭아삭하니 씹히는. 치즈와 양파튀김이 올라가 있어 한껏 헤비한 느낌을 주는 그런 버거였다. 객과적인 맛보단 주관적인 추억과 분위기가 별 네 개로 올려준 듯한 버거를 만족스럽게 먹고 기분 좋게 계산하고 나왔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한국행이 가족들을 본다는 마음에 설렘이 커져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던 걸까. 외로움을 크게 많이 타지 않는 나지만 가족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덴마크는 cafe, bar, 그리고 lounge의 경계가 모호하다. 카페에서 웬만한 음식류는 다 팔고(아마 주식이 밥이 아니라 빵이라 그런 것 같기도) 카페나 바의 특성이 강한 곳도 있긴 하지만 혼합 형태의 공간이 많은 것 같다. 많지 않은 인구수, 많지 않은 요식업의 수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개인 뇌피셜).

**hygge(휘게) 장소, 사람, 무엇이든 구애받지 않고 심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휘게의 순간이다. 물론 이미지적으로 본다면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롯가에서 가장 편한 사람과 핫초콜릿 한잔 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느낌이랄까. 북유럽에 거의 다 존재하는(아니, 전 세계적으로 어느 곳이든 다 존재하겠지만 북유럽은 특히 거기에 대한 그들만의 언어로 명명해 놓았다는 데 대해) 개념으로 스웨덴은 fika(피카)라는 게 있다. 덴마크에서의 삶은 단조롭지만 내실 있다. 한국에서의 삶은 다이내믹하지만 바쁘고 숨이 찬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무엇이 좋고 그른지의 차이가 날 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딱 6개월씩 나눠서 살 수 있는 삶이면 참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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