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지 타러 가다 생긴 에피소드:)
*여행 에피소드 1 #singapore #luge #merlion #한국사람 #할머니 #가이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다 둘러보고 루지를 타러 가는 길! 갑작스레 멀라이언 상 근처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앞으로 공작새가 총총 뛰어갔다. 나도 모르게 '헐-!!!!'이란 감탄사가 툭 튀어나왔다. 너무 빨리 지나쳐서 엄마 사진을 못 찍었다. '아쉽다.'며 엄마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순간, 누군가 내 팔을 낚아챈다. '응?!!' 하며 옆을 쳐다봤더니 꽃분홍 트레이닝 재킷을 걸친 한국인 할머니(요즘엔 60대인 분들도 할머니라 부르기 좀 애매하지만)가 '아이고, 다행이네~!!! 한국 사람인갑소?'라며 말을 건넨다. 엄마와 난 멈춰 서서 그렇다고 답한다. '아이고, 내사 마 헐!이라는 말 때문에 한국 사람인 줄 알았네... 내가 화장실을 갔다 나왔는데 일행들이 다 가뿠는갑소, 우짜노?!!!' 다급해 보이는 할머니의 눈빛에서 '일행과 몇 분 정도 떨어져 계셨구나.' 하는 걸 알아챘다. 진정하시라고 말하고 혹시 카톡으로 일행과 연락이 되는지를 물었다. 나는 현지 심카드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핫스폿으로 연결해 드리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 가이드와는 연결이 되어있지 않았고, 일행분들도 이 분처럼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 않을 거란 생각에 다다랐다. 다음은 할머니께 현지 가이드 전화번호를 가지고 계신지 여쭤봤다. 목에 걸려있던 표를 보여주셨다. 거기엔 한국 가이드 번호와 싱가포르 가이드 번호가 적혀있었다. '자스민'이라고 적힌 현지 가이드 번호로 전화를 해보지만 통화음이 들리지 않고 뚝하고 끊긴다. 한국 가이드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음이 들리고 안내 언니가 '국제전화 요금은 받으시는 분이 돈을 내야 합니다.'라는 식의 안내를 해준다. 통화 연결음이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통화를 해본다. 받지 않는다.
할머니는 옆에서 계속 '우짜노?!!!'를 연발하시며 엄마랑 얘기를 나누신다. 김해에서 여행을 왔는데 화장실 간 사이 사람들이 다 없어졌단다. 어떻게 자기만 놔두고 가버리냐며 울분을 토하신다.
전화를 이리저리 계속 돌려봐도 안 돼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안내 방송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바로 옆에 다행히도 안내 센터가 있어 간단히 사정 설명을 한다. 안내원은 'lost & found'는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 분이 일행과 떨어졌는데 현재 통화가 되지 않는다.'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본인들이 연락을 해보겠다면서 연락처를 달란다. 할머니 목에 걸려있던 표를 건넸다. 보더니 싱가포르 현지 가이드 번호가 싱가포르가 아닌 말레이시아 국가 번호로 시작을 한단다. 싱가포르 번호가 아니란다. '이런! 그래서 통화음도 없이 연결이 안 됐던 거구나!'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한국 가이드에게 연락을 계속해보기로 한다. 할머니는 연신 '그래도 한국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데이, 진짜 우짤까 싶었는데...'라며 고맙다고 하신다. 17명이 함께 여행을 왔단다. '우와, 엄청 많이 오셨네요. 한 사람 없어져도 모르긴 하겠네요.(눈치 없이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대화 도중에도 계속 한국 가이드에게 전화를 한다, 언젠가는 받겠지란 심정으로...
'여보세요(사투리 버전)?'라는 4~50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최찬규 씨 전화 맞나요? 여기 싱가포르 유니버설 스튜디오인데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 4월 7일부터 4월 12일까지 여행 오신 김말임 씨가 일행과 떨어져 있어서요. 현지 가이드 분 전화가 안 돼서 이 쪽으로 연락드렸습니다.'라고 상황 설명을 한다. '지금 전화하고 계신 분은 누구시죠?' '네, 저는 지나가던 한국인인데 김말임 씨 부탁으로 연락드렸어요. 현지 가이드 분 연락처 주시면 제가 연락을 해볼게요.' '아, 그래요? 그라믄... 잠깐만요. 번호가...' '네, 천천히 찾으세요.' 옆에서 할머니가 '하이고, 내사 마... 다행이다...'라며 서계신다.
'아... 그라믄 이 번호로 연락을 해주실랑교? 번호가...' '일단 이 번호로 전화를 해보고 혹시 안 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 기다려주세요.' 일단 전화를 끊고 받은 번호로 연락을 한다. 자스민... 뚜루루루 뚜루루루. '여보세요?(사투리 버전)' '아, 네, 안녕하세요? 지금 일행 중에 김말임 씨와 같이 있는데 어디 계시나요?' '네? 김말임 씨요?' '네, 루지 타러 가는 멀라이언 상 근처 화장실 앞에 김말임 씨랑 같이 있습니다.' '어? (조금 멀리 떨어진 목소리) 언니, 김말임 언니 안 계세요? 여기?... 아... 아, 어디시라고요?' '멀라이언 상 루지 타는 길목이요, 그쪽에서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지금 거기로 내려가고 있습니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생각보다 너무 밝은 목소리에 조금 당황했지만 통화를 끊고 할머니께 일행이 이 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며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린다.
'아이고, 마... 고맙심 미데이, 내 때문에 이래 시간을 빼앗겨서 우얄꼬... 내가 돈이라도...' 가방에서 돈을 꺼내시려는 걸 엄마랑 내가 극구 사양하며 '이게 한국 사람 정이지요, 조금만 더 기다리지요~'라고 하며 기다렸다.
3분이 지나고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 왁자지껄한 한국 여행팀이 이열종대로 내려온다. 엄마랑 나는 '이제 됐다...'며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제일 앞에 있던 여자분 한 분이 '아이고 와 여 있심니꺼?'라며 김말임 할머님의 손을 잡는다. '한국 사람은?' 현지 가이드가 올라가고 있던 우리에게 가이드냐며 묻고 우리는 '여행 중이에요!'라며 올라간다. '아이고 고맙심니더~'라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우리는 올라왔다. 뒤에서 일행들이 차례대로 김말임 할머니께 '큰 일 날 뻔했네.' '다행이다.' '하이고, 혼자 와...'라며 걱정과 안심의 얘기를 건넨다.
한 40분 정도 일정이 늦어졌지만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두 번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며 '오늘 좋은 일 했네!'라며 뿌듯한 마음으로 루지를 타러 올라갔다.
2017년 4월 13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