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혹은 그렇게라도
"시험관까지 하고 싶진 않아요."
얼마 전, 방송인 이효리가 떡볶이 먹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했다는 말이다.
아기가 생기지 않는 부부의 현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으레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안 낳는 거야, 못 낳는 거야?", "병원 가 봤어?"로 시작해 시험관 시술의 결과가 좋다는 병원의 목록들도 빠지지 않는다.
이효리 부부는 난임이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현재에 대해 궁금해하는 대중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풀어놓았을 것이다.
저 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 또한 난임이었다. 아니 나는 불임이었다.
나는 임신의 과정이 불가능한 몸을 가지고 있다. 양쪽 나팔관이 유착되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이 내 몸 안에서는 불가하다. 그래서 선택할 수 없이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것, 딱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나도,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저 말을 수도 없이 뱉어왔었다.
난 결혼하기 전부터도 아기를 원했던 사람이고, 태어나 처음으로 가졌던 꿈이 "엄마"였다.
결혼 후 3년이 넘을 즈음, 가깝고 먼 주변에서 나의 2세 계획에 대해 참 많이들 궁금해했다.
딩크족이냐, 아기는 빨리 낳고 키워야 엄마가 편하다, 노산이면 힘들다 등등 내 대답 따위는 들을 생각 없는 이들의 질문을 가장한 조언들이 쏟아졌다.
누군가가 아기를 안 갖는 것인지 못 갖는 것인지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못 갖는 거예요. 노력하는데 잘 안되네요."
안 갖는 거라고 하면 대부분 믿지 않는다. 못 갖는 거면서 안 갖는 거라고 대답한다고 생각하는 찰나의 눈빛들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묻는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나면 여지없이 조언이 쏟아진다. 카더라부터 실제 경험담까지.
그리고는 빠지지 않는 질문 하나.
"병원 도움을 받아볼 생각은 있고? 인공수정, 시험관 요즘 결과 좋던데. 아기 갖고는 싶다며."
뒤따라 나오려 준비 중인 조언들을 차단하는 한 마디를 나는 잘 안다.
그렇게까지 해서 갖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까지라. 그렇게까지라. 무슨 의미일까.
아기를 갖기 위해 내 배에 자가주사를 놓는 짓까지는 못하겠다는?(사실 이것도 망설이는데 한 몫했다.)
아기가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너무도 간절히 바랐다. 이번 달에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아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생리가 시작되면 늘 눈물을 훔쳤을 정도니.
그뿐인가. 명절에 시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조카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있다 나오면 마음이 허무했다. 동서들이 부러웠다.
솔직히 실패가 두려웠다. 그리고 그 실패에 처참히 무너지는 나를 상상하면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어쩌면 나는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아기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나에게 있음을. 하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마다 다르게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
사실은 그렇게라도 해서 아기를 갖고 싶어요.
하지만 실패할까 두려워요. 최후의 수단이 사라지면 그때 전 어쩌죠?
언젠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고요.
난 그게 너무 무서워요. 내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받게 될까 봐요.
시험관 시술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었고, 그걸 쓰고 나면 이젠 더 희망을 가질 수 조차 없다는 것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이미 난 실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준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였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차이였다.
나는 결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거짓말을 믿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을 더 보냈다.
그 2년 동안 나는 시가에 방문할 일을 만들지 않았고, 내 부모님은 임신의 이응자도 꺼내질 않으셨다.
할머니는 종종 전화를 주셔서는 태몽을 꿨는데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며 임신이 늦게 될 모양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나를 위한 기도도 잊지 않으셨다.
가까운 친구들은 잊을 만하면 임신에 도움 되는 것들을 선물로 보내왔고, 진심으로 나의 임신을 함께 기다려주었다.
2년 동안 내가 구독한 블로거들은 전부 임신 과정에 관련된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고,
태몽인가 싶은 꿈을 꾸다 깨는 날이면 비몽사몽에도 메모장을 켜 꿈을 기억해 낼 만한 키워드를 적고 다시 잠에 들기도 했다.
네이버 최근 검색어에는 '난임'과 '임신 잘 되는 방법' 그리고 '태몽 해몽'이 사라지지 않았다.
배가 볼록한 임신부들을 보면 질투가 나기 시작해 일부러 시선을 거두었다. 하나도 부럽지 않다는 듯이.
그 당시 나에게 임신이라는 몹쓸 단어는 나를 슬프게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2년이 다 지나갈 즈음, 나와 남편은 임신 준비를 쉬기로 했다. 이건 마치 본 수업뿐만 아니라 예습, 복습까지 철저히 하는데 시험만 보면 빵점을 받는 전교 꼴찌가 된 느낌이었다. 정말 막막했다. 그럼에도 시험관 시술에는 방어적이었다. 여전히 실패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정말 한 순간에 그렇게 되었다.
어떤 계기도 없었다. 그냥 출근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얘기했다.
여보, 우리 난임 검사 한번 해보자.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다 못해 고민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갑자기 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정말 그냥 확 나온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때가 됐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 아들을 만나려고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IVF(체외수정)라는 의료 기술이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한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난 평생 배 아파 낳은 아기를 안아보지 못 한 채 그 느낌을 상상이나 해가며 이루지 못할 꿈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여생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나의 난임을 받아들이며 한 걸음 나아갔다.
그렇게 나와 내 남편은 내 아기를 만날 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효리의 저 한 마디에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만큼 간절하지는 않나 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가질 필요가 있나?'
'나도 이효리랑 같은 생각으로 사는데, 한심하다는 투로 얘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는다.'
'사람들이 하도 떠들어대니 임신 생각 없지만 그냥 난임이라고 둘러대는 것 같다.'
'시험관이 뭐 어때서? 저렇게 말하는 건 다리를 다쳐도 목발 안 쓰고 걸을 거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다. 시험관 시술은 임신 방법 중 하나일 뿐인데, '
내 남편 또한 그 방송 내용을 다룬 기사를 나에게 얘기해 주었는데, 좋지는 않은 투였다.
어쩌면 시험관 시술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남아있는 사람들과 여러 번의 시술을 통해 여전히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겐 절대 좋게 들렸을 리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루고 싶은 사람과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는 사람을 나누는 것은 절박함일 터.
이효리는 아기가 생기지 않더라도 모든 존재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살고 싶다고도 얘기했다고 한다. 마음이 큰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마음먹을 수 있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삶의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부부의 의견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난임 검사를 받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오히려 쉬워졌다. 아니, 관대해졌다. 그리고 기대가 샘솟았다.
이렇게 오래 걸린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을 것이다, 분명 잘 될 것이다.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러나 절대 아니었다. 나의 마음 먹음은 고작 점 하나에 불과했고, 굳은 잉크로 꽉 찬 볼펜을 가지고 종이에 몇 백 번을 찍어대고 허공에 몇 번을 털어내야 찍힐 듯 말 듯 애태우는 점이었다.
돌고 돌아 힘겹게 시작했으니 그냥 끝낼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우리는 한껏 움츠린 채로 시험관 아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사진ㅣ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