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났다. 커피 한잔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말했다. '나 수술해' 그러면서 말하길 '전신마취를 하지만, 당일에 입원하고, 당일에 퇴원해' 그래서 내가 말했다 '맞아. 부분마취하는 거 넘 싫어. 중학교 때 수술할 때 부분마취한다 했을 때, 내가 제발 전신마취해달라고 졸라서 그렇게 했었지.' 내 말에 친구가 말했다. '그니까.. 수도 없이 했으니 넌 얼마나 지겹고 힘들었겠니.'
친구의 대답에. 잠시 멍했다. 아 그랬지. 수술 꽤 많이 했구나. 그리고.. 난 그때 너무 어렸구나. 수술을 할 때, 항상 엄마가 옆에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돌봄에 있어서 많이 서툰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걱정이 분노로 표출되곤 했다. 물론 내게 직접 화를 내진 않는다. 하지만, 아우라라고 하나. 기운이라고 하나... 내 옆에 있는 엄마의 기운은 화가 나있었다. 자식이 아픈 것도 힘들고, 본인의 형편도 힘들었겠지. 응급실에 간 적도 꽤 있는데, 갈 때마다 아프다고.. 엄마 나 너무아파.. 하고 말한 적이 별로 없다. 가는 내내 무거운 엄마의 기운에 눈치보며 어서 병원에 도착하기만을 바랬었다. 몸이 아파 집에 일찍 가야만 할 때, 집에 엄마가 있으면 이미 몸은 너무 아픈 티를 내지만, 괜찮아 하고 방에 들어가 눕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여러 번의 수술을 하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평균을 내자면, 2년정도 마다 수술을 했는데, 이젠 10년 정도 수술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비록 그 10년 사이에 보청기도 끼게 되고, 녹내장 진단도 받았지만, 그래도 수술을 하지 않으니.
친구가 하는 수술은, 내가 이미 어릴 때 경험한 수술이었다. 미리 경험한 사람으로써, 위로해주었다. 세상에 무수한 위험과 우연이 난무하지만, 만약 그것들을 다 제하고, 그저 평범하게 수술을 마무리한다면, 괜찮다고. 지나고보면, 더더욱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친구가 수술 후에,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 좋겠다. 그녀의 남편은 잘 받아주겠지. 그럴꺼라 기대해본다.
단순한 진리.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기쁘면 기쁘다.
이렇게 충분히 느끼고,
과하지 않게 딱 정량만큼 표현할 수 있다면.
모두가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의 켜켜이 쌓인
관계의 어려움은
반이상 사라지지라.
그러니까,
제발 니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잘 좀 살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