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by 주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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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내 연락해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뤄 하지 못한 두 사람이 있었다. 작업실 한켠에 포스트잌으로 ‘00 통화’ 라고 적어놓을 만큼 말이다.

지난 주 그 중 한 사람과 통화했다. 해결하기 힘든 문제의 한 가운데 있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상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그 버거운 문제 앞에서, ‘괜찮아. ’ 라고 말하는 그 소리가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어제, 또 다른 한 사람과 통화를 했다. 지난 주중 내가 전화를 했었는데, 받지 않았었고, 그걸 기억하고 전화를 해줬다. 너무 늦게했다는 말에, 나는 해준 것만으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들은 소식은, 길을 잃게 만들었다. 고통. 그 고통의 깊이. 물론, 덤덤하게 말했고, ’가장 힘든 순간은 지나가고 있는 것같아‘ 라고 했다. 나는 또 속상하다고 했다.

두 사람 다, 전화를 끊고, 나는 펑펑 울었다. 그 고통이 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내가 해결할 수 없기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모두 빌어먹을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고 있다. 괜찮았던 관계가, 스물스물 고통으로 잠식해 버리곤 한다. 그게 상대방의 문제에서 비롯할 확률이 높다. 그게 살아온 날들의 모든 선택의 결과이고 말이다.

두 사람에게 좀 더 일찍 전화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뭐라고.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르지만, 그래도 좀더 일찍 했더라면, 그들에게 솜털만큼이라도, ’아, 내 곁에 한 사람 더 있구나‘ 라는 걸 안겨주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 고통이 솜털 만큼이라도 가벼워 지지 않았을까.

떠오르는 이가 있을 때, 망설이지 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는 고통의 순간을 지나는 그들을 위해, 솜털보다 더 무거운 위로가, 버틸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주님과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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