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탈출하기 위해서
무식하게 꾸준히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학창 시절 어른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란 말은 예외 없이 들어 봤을 것이다. 어른들은 왜 그 말을 할까?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공부하라는 말은 없고 그냥 열심히 하라고 한다.
내일모레 마흔 인 나도, 50대인 형님도, 30대도 20대도 자신이 달리 뭐가 되고픈지 잘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뭐가 되고 싶은지 이제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나마 자신이 뭐가 되고 싶은지 꿈이 뭔지 깊이 고민하고 인생의 회의감과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것도 10대이기에 가능하다. 그런 폭풍 같은 사유의 시간들이 흐르는 동안이라 할지라도 진정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기에는 찰나 같은 시간일 뿐이다. 눈치채기도 전에 지나가버릴지 모르고 그렇게 신호를 줬는대도 눈치 없이 지나간다. 그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국어는 언어다. 영어도 언어다. 그리고 수학도 언어다. 국어는 동포들 간에 소통하기 위한 언어이며 영어는 혹시나 마주칠 외국인들과 그나마 통할 언어다. 그리고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제외하고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논리적인 언어가 수학이다. 만일 우리가 이 세 가지의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것을 발견했을 때 빠르게 적응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공부는 일단 해두면 효과적으로 시간을 단축시켜 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취미가 된다. 그런 공부는 마치 저축과 같다.
뭔가 시도할 일이 있을 때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도구는 내가 알기로는 딱 두 가지뿐인데 바로 돈과 공부다. 돈이 좋은 이유는 공부한 사람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하고 싶어도 주저하게 만드는 것도 돈이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부릴 정도의 돈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똑같은 경험이 주어졌을 때 남들보다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공부가 얼마나 좋은 건지 재미있는 건지 안다. 그래서 더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공부조차도 무식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똑똑하고 영리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엔 이 똑똑하고 영리한 방법을 잘 가공해서 돈을 버는 세상이다. 일타강사, 온라인 강의, 유튜브와 전자책은 바로 스마트함을 판매하는 것이다.
99%가 모르는 비법, 1%만 누리는 부의 치트키, 알려주면 업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정보 같은 건 진짜 정보가 아닌 어그로성 카피가 대부분이지만 결국 사람이라면 클릭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은 범죄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착해서 사실을 부풀리는 걸 꺼려할 뿐이다.
그럼에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면 일단 무식하게라도 해야 한다. 언제나 시작하고 보는 것이 가장 빠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결국 쉬게 마련인데 쉬는 날을 이용해서 공부의 효율을 올려주는 연구를 하면 된다. 가령 하루 중 반드시 1시간은 산책을 하는 것이다. 이 1시간은 하루의 공부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찾게 해 준다. 주어진 시간에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더 길게 생각한다고 해결책이 생기지도 않는다. 보통 해결책은 자다 깨는 과정에서 우연히 번뜩하고 떠오른다. 이런 문제 해결 과정을 “마인드브레인”이라고 하는데 구글 검색을 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여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런 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그럼 진짜 똑똑이들은 어떨까? 만일 똑같이 하루 10시간을 공부하는 수험생 2명이 있다고 치자. 한 학생은 닥치는 대로 10시간을 공부하고 다른 학생은 일주일 계획표를 짜서 하루에 한 과목에 10시간씩 공부한다고 과정 해보자. 어떤 학생이 더 능률적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첫 번째 학생이라 할지라도 하루종일 효율적인 시간표를 만드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정작 공부는 두세 시간밖에 하지 않는 학생에 비해 났다. 계획을 세우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선 안된다.
타인을 탓하면 스스로 낮아지는 결과만 초래될 뿐이다. 사람은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중에 대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스스로를 탓하기보단 환경을 탓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속은 편할지 몰라도 발전이 없는 이 상태는 결과적으로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이다. 물론 세상엔 탓할 수밖에 없는 것 들도 있는데 그런 탓에는 순응하고 빨리 잊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고대 라틴어 명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라는 말이 있다. 가장 높은 가치의 선은 물과 같이 되는 것이라는 뜻인데 물은 항상 양보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 물은 결국 승천한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을까? 모두가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데 낮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는 걸까? 하지만 기억하자. 낮아지려는 노력이 높아지는 노력임을. 낮아진다는 것은 넓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높은 산 정상의 한 모서리가 되지 말고 대양이 되자. 모두를 제치고 가장 뛰어난 존재가 되려 하지 말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생각과 사유의 차이. 생각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포기를 낳는다. 반대로 사유는 나에게 통찰을 제공하고 사고를 확장시킨다. 생각은 끌 수 없는 저품질 라디오 같지만 사유는 찾아 듣는 고급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이다. 생각 좀 하고 살라는 말은 묵묵히 자신의 할 도리를 하고 사는 이들에겐 무용하다. 모든 “왜?”라는 물음이 호기심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5살 어린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은 왜 파래?”라고 묻는다면 어른은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다 큰 어른이 “하늘은 왜 파래?”라고 물으면 눈앞이 파랄 때까지 맞아야 한다.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1등 연주가, 1등 운동선수, 1등 사업가, 1등 투자자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1등은 2등 3등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 덕분에 자신이 1등이 될 수 있었던 탓이다. 1등이 대단한 건 맞지만 2등이 없으면 1등도 없다. 그러나 2등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2등 정도도 대단한 거다라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결과가 그렇게 되는 거지 2등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밟는 과정이 1등이 되겠다는 과정보다 치열할리 없다. 아름다울 리 없다.
당신이 안 되는 이유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다. 그게 아니라면 기껏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공부하는 법만 찾아보고 있어서다. 혹은 해결되지 못할 문제를 붙들고 해결책을 찾고 있어서다. 나를 개선하려 하지 않고 남 탓을 하기 때문이며 사유하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으로만 가득 찼기 때문이다. 1등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포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소가 안되면 질문을 바꿔 보는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일단 해야 한다. 왜냐고?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가난하지 않다고? 진짜 가난하지 않다고? 그럼 뭐가 가난이고 뭐가 부인지 한번 이야기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