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성장을 촉진시키는 이정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어릴 때부터 항상 있었다. 작가 뭐 별 건가 싶으면서도 사실 지금처럼 열심히 글을 썼던 적이 없었다. 늘 끄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1시간 에세이를 쓰고 또 나머지 시간엔 소설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하물며 하루키도 아닌 사람이 그보다 짧게 글을 써서 작가가 되겠다는 건 애당초 글러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시간씩 글을 써보자고.
독서모임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청독 모라고 하며 인천 청라 독소 모임의 줄임말이다. 원래의 나라면 이런 이름은 쓰지 않겠지만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운영자가 이미 청독모로 이름을 정해두었고 딱히 브랜드 인지도가 있진 않지만 왠지 바꾸기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써왔다.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운영진에 참여했다가 2020년부터 모임장이 되어 버렸다.
모임장이 되었으니 이제 이 모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모임원은 아마도 10명 남짓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선택한 것은 콘텐츠 보강과 확정이었다. 파워 J인 덕분에 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쉬는 것도 계획 없는 것조차도 시스템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해보려니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내가 모임원들 보다 나은 건 독서량뿐이었다. 모임원들이 한 달에 1권을 겨우 읽을 때 나는 3권 이상은 읽을 수 있었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방을 시작했다. 평생 해왔던 음악생활 대부분을 “카피”라는 모방을 통해 공부해 왔는데 나는 왜 나머지 생활에서는 이 카피를 해오지 않았나 생각하면 지금도 원통하다. 지금은 벤치마킹이라는 미명아래 부지런히 베끼고 있다. 음악 할 때나 지금이나 모방에서 가장 많이 배운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더 이상 흡수할 것이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오리지널리티가 싹튼다.
처음 모방 대상이 바로 국내 최대의 북클럽인 "트레바리"다. 트레바리는 학기로 진행되는 29만 원짜리 고가의 북클럽이다. 인플루언서가 리더로 있으며 북클럽 참여자들은 3개월에 29만 원 정도의 문화비 지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가 3개월에 29만 원짜리 독서모임에 참여하냐 싶겠지만 트레바리는 현재 강남에 사옥을 보유하고 있다. 그 정도로 자금력이 확보되었다는 말이며 그만큼 수익이 창출된다는 말이다.
그런 트레바리에서 내가 차용한 것은 바로 학기제와 서평 쓰기 그리고 발제하기였다. 트레바리도 청독모와 같이 1개월에 책 1권을 진행하는데 마지막 차인 4주 차에 400자 분량의 감상문을 써오지 않으면 토론회에 입장이 불가하다고 한다. 각 클래스의 리더는 4주 차에 발제를 더불어 참여자에게 질문하고 답을 이끌어내며 약 3시간을 보낸다. 트레바리에는 문화비로 29만 원 정도를 지출하면서도 목표로 한 독서를 완료하고 오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장점이 있다. 항간에는 이성과의 만남을 위해 모이는 미팅형 모임이라고 하는데 헌팅포차에 기웃거리는 것보다 천배 만 배는 좋다고 본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이성과 잘 되는 것보다는 북클럽에서 만난 이성과 잘 되는 게 훨씬 좋지 않은가?
그러나 청독모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적용시킬 수 없었다. 4주 차 서평 쓰기는 참석률을 떨어트리기만 했다. 청독모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의 니즈는 어떻게든 책 좀 읽어 보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좀 더 독서력을 보강하고자 하는 나는 힘을 빼고 나의 청독 모를 사람 만나는 모임으로 만들고자 했다.
책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의 대화 주제가 무엇인지 들어보면 대략 구분할 수 있다. 책 읽는 사람들은 자기가 읽은 책이나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제가 다양하다. 그러나 독서하지 않는 이들의 주제는 너무나 한정적이다. 이성, 골프, 사업, 드라마... 등등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만나서 무궁무진한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지루하다. 그러나 독서모임은 다르다.
청독모는 매 월 한 권의 지정도서를 선정한다. 첫 달엔 문학을 읽고 그다음 달엔 비문학을 읽는다. 그리고 세 번째 달에는 고전을 읽는다. 그리고 이 모든 책은 베스트셀러 중에서 선정된다. 아무리 고전이라고 해도 어찌 되었든 지금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을 읽는다. 일단 어디 가서 아는 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독서모임의 최고 장점이다.
나도 제법 친구가 많지만 솔직히 내 실친 중에는 책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요즘에는 책 읽는 사람 자체를 만나기도 힘든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랑 같은 책을 읽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서모임에서는 일단 모르는 사람이어도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대화의 물고를 트기 쉬워진다. 일단 모이기만 하면 내가 미리 준비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아이스 브레이커가 되어 주기 때문에 아무리 수줍음이 많은 이들이라도 어느새 모임에 녹아들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콘텐츠를 더해 대화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 모임장인 내가 할 일이다.
2022년부터 새롭게 시작된 이 시스템은 지금에 와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1시간의 독서챌린지, 지정도서에 기반한 스몰토크, 지정도서에서 뽑아낸 키워드로 만들어낸 가벼운 질문으로 함께 하는 독서 잡담, 마지막으로 지정도서 마무리 대담으로 이어진다.
독서 챌린지는 말 그대로 1시간 동안 조용하게 독서를 하는 것이다. 모임원 서로가 불편한 감시원이 되어 주기 때문에 허투루 딴짓하기가 힘들고 옆 사람이 독서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열의가 생긴다. 거기다 타임 타이머를 이용해 얼마나 독서를 했는지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완급 조절도 할 수 있다.
1시간 동안 독서를 하고 나면 아무리 독서력이 부족해도 최소 40페이지는 읽을 수 있다. 그럼 그만큼의 독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내용보다는 그날의 경험을 공유하는 편인데 그날 1시간의 독서 경험이 어땠는지가 주가 된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면 어딘가 튀는 테이블을 사로잡는 말과 질문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진행된다. 어떨 땐 그 질문 하나만 가지고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가 2시간의 정모가 끝나기도 한다. 만일 너무 빨리 경험 토크가 끝났다면 미리 준비된 스몰 토크로 이어진다. 스몰토크 또한 내가 준비하는데 스몰 토크는 그때그때 맞춰서 주제를 정하고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씩 말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누구나 반드시 한 번은 말해야 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좋아해도 부담스러워도 모두 공평하게 말을 할 수 있다. 이렇게 1주 차와 3주 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이렇게 4주를 보내면 얼마나 지루 하겠는가. 그래서 만들어낸 콘텐츠가 독서 잡담이다. 2주 차에는 완독률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아직 시작도 못한 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정도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진행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 질문이었다. 예를 들어 김훈 작가의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김덕순이 양고기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면 키워드를 양고기로 잡을 수 있다.
질문 1. 당신은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중에 어떤 고기를 가장 선호하시나요?
질문 2. 양고기 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질문 3. 양고기 하니 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맛있는 고깃집을 추천하면서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위와 같은 질문들을 만들어 낸다. 가급적이면 어이없고 황당한 질문을 만드려고 노력은 하는데 쉽진 않다.
그리고 모름지기 독서모임이라면 지정도서 토론은 해줘야 한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에 토론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겁다. 목요일 저녁의 독서 토론은 부장님과 함께 하는 야근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완독에 서평이라고? 아이고 난 못 간다. 당연하다. 그래서 4주 차 토론은 제목을 가볍게 바꾸었다.
지정도서 마무리 대담 줄여서 지. 마. 담이다. 그 전의 제목은 지정도서 완독 토론회 였다. 느낌이 어떤가? 전자 쪽이 뭔가 가볍지 않은가? 대담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독서모임에는 이만큼 좋은 단어도 없다. 지마담 시간에는 각자가 읽어온 만큼 그 이유와 감상을 말한다. 완독 못해도 괜찮다. 완독을 못한 이유에 대해 듣는 것도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반이라도 읽어 왔으면 웬만하면 줄 그어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기 마련인데 그 문장을 가지고 대화를 있어나가는 게 이번 모임의 핵심이다.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뽑은 문장도 있고 그렇지 않은 문장도 있는데 문장들을 공유하며 문장을 선정한 이유를 듣고 질문도 주고받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사실 청독모는 시대를 거슬러간다. 종이책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 와서 보면 청독모는 독서모임이 아니라 독서 기반 대화 플랫폼에 가깝다. 영국의 펍이 그렇고, 프랑스의 살롱이 그렇다. 한국에는 펍이나 살롱 문화가 약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교류하기 매우 힘들다. 그래서 독서모임인 것이다. 그리고 동네 독서 모임이어야 한다. 진짜 북클럽은 강남과 홍대에서 할 수 있지만 청독모가 추구하는 것은 얼른 퇴근해서 가벼운 스웨트로 갈아입고 손에 책 한 권 끼고 걸어 나와 밤공기도 마시고, 이제는 비교적 익숙해진 사람들과 같이 책 좀 읽다가 맥주 한잔하면서 책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런 모임을 매월 4주간 1년 48회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꽤 많은 글을 쓰게 되었는데 a4 용지로 뽑아보니 180장이나 되었다. 이 정도면 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책을 내서 작가라는 소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첫 번째이고, 책까지 출간되는 독서모임이라면 좀 더 믿고 찾아와 주겠다는 홍보 목적이 두 번째다.
그렇게 한 20권 정도 만들어서 혹시나 구매하실 모임원들에게 판매도 하고 주변 지인에게도 나누어 줄 생각을 했는데 예상외로 퇴고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게다가 판형, 저작권 문제에다가 컬러로 들어갈 시 두배로 증가하는 인쇄비 등으로 해서 a5사이즈로 바꾸고 폰트도 무료 폰트에 사진까지 다 빼버렸다. 최종적으로 280페이지의 책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이제 인쇄만 하면 되는데 인쇄소를 컨택하려다 보니 별게 또 눈에 다 들어왔고 지금은 출판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출판 정보를 알아보고 있다. 진작에 나왔어야 할 책인데 벌써 3월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 10권 정도 제본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실물 책 만들기 하다가 결국 출판을 염두에 두게 되었고 심지어 지금은 출판사까지 차릴 기세다.
결국 출간은 하지 못했다. 서평집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것까진 확인했는데 몇 권을 살펴보니 작품을 인용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했고 진짜 개인의 생각만 담은 게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대문호의 글 정도? 였다. 달리 말하면 이동진 영화 평론가라 할지라도 영화 내용을 스포일러 한다거나 출판물로 비판한다면 각종 송사에 말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을 염두했던 작품의 절반이 인용문이어서 저작권에 많은 문제가 있었고 얼마 안 가 시대에 묻히고 말 유행 도서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에 대한 내 에세이는 나로서는 제법 아깝다고 생각도 들지만 언젠가 고전이나 혹은 특정 장르에 대한 에세이들만 따로 모아서 에세이집으로 내 볼 생각은 하고 있다.
기본 100만 뷰는 넘어가며 이제는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유튜버가 되어버린 빠니보틀과 곽튜브의 여행 영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정말 좋은 콘텐츠는 결국 많은 이들이 봐주는 것이다. 작가라는 고매함 따위는 밟아 으스러트려 버려야 한다.
좋은 글은 결국엔 읽히기 마련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좋은 글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글일 것이다. 규칙도 형식도 멋도 다 내려놓자. 세이노가 말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고객들 스스로가 자기 주머니에 돈을 꺼내 내 주머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라고. 좋은 작가라면 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이 사람의 책을 무조건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나머지는 출판사의 몫이니까 출판사도 잘 만나야겠지만…
당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방을 나쁘게 보기 때문이다. 모방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성장을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독서와 공부도 선인들의 지식을 답습하는 것이니 모방과 같다. 모방 카피 밴치마킹 오마쥬 다 같다.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한다면 모방이 먼저다. 그대여 모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 이용해라.
나쁜 건 오리지널리티 없는 모방 수준에서 마치 자신의 실력인양 자신의 작품인양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방품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사람들은 반드시 원작을 찾아낸다. 그러니 모방품을 내 것인 양 여기지 않으면 된다. 자신이 철저히 모방가임을 잊지 말고 처절하게 모방하라. 그다음은 알아서 된다. 모방품이 하찮아 보일 때까지 모방한다면 그때 특이점이 온다. 그때 비로소 오리지널리티가 등장한다.
한 가지 알아두자. 세상 모든 과학자들은 발견을 하지 발명을 하지 않는다. 이과의 태도를 가지지 못한 문과들이 발명이니 뭐니 호들갑을 떤다. 다시 말하지만 문과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90%는 수학을 못해서 문과가 되었을 뿐이다. 이과는 선택이고 문과는 떠밀림이다. 알고 보면 그들은 이과도 문과도 아니고 그냥 "특기 없음"이다. 획기적인 무언가를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 형태 형체도 불분명한 것이 마침 목표인양 꿈꾸지 말고 당장 눈앞의 걸레질이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할 수 있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로켓을 재활용할 수 있었던 건 페이팔이라는 희대의 결제시스템으로 온라인 거래를 편리하게 만든 전적과 모방력이 있기 때문이다. 겁내지 말고 모방하고 또 모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