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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니 Jun 10. 2021

어쩌다. 흐린 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주와 인사 후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나섰다. 지인의 할아버지 장례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주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던 적이 없어서일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내가 너무 무감정한 것일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양쪽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살아계시기에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라는 생각에 애써 털어냈다. 그 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그 날은 이른 아침부터 빗방울이 추적추적 기분 나쁘게 내리던 하루였다. 하루의 일을 미리 알 수는 없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슬픈 일을 빗방울은, 저 흐린 하늘은 먼저 알고 있었나보다. 일어날 일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울어주고 있던거였다. 그 날은 지독하게도 흐린 날이었다.


" 외할아버지 위독하셔. "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다가 오랜만에 카페에 공부하러 와서인지 평소와는 다른 시간대에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년 전부터 연세가 많아 노환과 병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던게 잘못이었을까, 괜찮아지시겠지 하며 안일하게 넘겨서 였을까 뒤이어 온 연락은 충격을 몰고 왔다.

"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대... "

 무덤덤하게 말하는 어머니의 말투에 오히려 더 실감이 났다. 그녀의 감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기에 아무말을 하지 못 했고 그저 여러가지를 준비해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것밖에 택하지 못 했다. 언제나처럼 괜찮아지고 웃으며 집에서 맞이해줄 것 같았던 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늦게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이미 친척들이 모두 와있었다. 그 곳에서 오히려 멀쩡해보이는 어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외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서로의 손만 꼭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을 뿐이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기에 손만 잘게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감정들을 감히 예상도 할 수 없었기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잘게 떨리는 손을 꼬옥 잡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장례 일정이 하루 밖에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장례식장을 방문했고 우리는 슬픔을 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또 보내고 다시 맞이하며 하루를 보냈고 후에 발인을 준비했다. 너무 덤덤해보이는 가족들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아닌 조문객으로 와서 하늘이 무너진 듯이 울고 가는 외가의 친척들이 상을 당한 것 같았다. 오히려 이모와 외할머니들이 그들을 위로했다. 조부모의 상이기에 내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나는 몇명에게 문자를 보냈고 그들은 힘든 하루를 보냈음에도 한걸음에 달려와줬다.

 늦은 시간까지 조문객을 맞이하다 3일차를 맞이했고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멀쩡해 보이던 어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외할머니는 한계였는지 발인을 준비하는 그의 시신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지막히 내 이름을 부르며 맞이해줄 것만 같은 그는 세월을 맞아 하나하나 늘어난 주름들 사이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누워있었다. 잠시 누워서 낮잠을 즐기시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차갑게 식은 그는 미동조차 없었고 흰 상복을 입고 무명천으로 감싸 관 속으로 사라졌다. 흔히들 하품은 전염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전염력이 강한 것이 눈물이다. 눈물 한방울 흐르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해보이는 어머니, 아버지들은 대성통곡을 하고 우리들은 눈물을 참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은 같이 울고 말았다. 




 잠시간의 화장이 끝나고 넋을 놓고 있던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그를 보내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조그만 도자기 하나뿐이었다. 작은 도자기를 품에 소중히 안은 외삼촌과 그 뒤를 따르는 우리들은 조상들이 모여있는 선산으로 향했다. 가끔 성묘를 위해 방문하던 곳으로 나무들이 우거졌지만 양지바른 그 곳은 평소와 다르게 쓸쓸함이 가득했다. 미리 파놓은 땅에 도자기를 넣고 우리는 돌아가면서 그를 뭍었다.

 "취토요. 취토요. 취토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의 위로 차디찬 흙을 덮었다. 양지 바른 그 땅 속에서, 부디 그 곳은 춥지 않기를 바라며 흙 속에 한번, 가슴 속에 한번...

 며칠 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3일장의 마지막 날에 그치기 시작하더니 선산으로 갈 때는 구름마저 걷히고 파란 하늘과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술을 깨물며 슬픔을 참던 우리 대신 울어주던 흐린 하늘은 묘지 앞에서 하늘이 떠나가라 울던 우리를 위로하듯이 그 위를 환하게 비췄다.

 지독하게 흐린 날의 마지막은 시릴듯이 푸른 하늘과 환한 태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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