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턱 괴는 여자 2.

by 구일삼

글은 지난봄에 시작해 여름에 완성한 것이다. 처음엔 속에 있던 말들을 토하는 글이었다가 그다음엔 수신자 G 찾은 편지였다. 나는 봄부터 내내 여자로 사는 그렇게 다르고 힘드냐는 질문에 대고 길고 오래되고 질척이는 대답을 썼다. 삶에 대한 목격진술을 썼다. 10 정도가 들었다. 18 어느 문득 나는 내가여자여자애 그동안의 삶이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더랬다. 그때부터 덩어리 감각으로만 알고 있었던 같음의 이유를 자신에게 상세히 설명하느라, 그리고 무엇보다 G 설득하는 마음을 쓰느라 10 자가 들었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응애응애애에구머니나. 여자로 태어나버렸네. 아주 다르고 힘든 삶이 되겠군요, 어머니. 응애응애.

것은 아니었기에, 삶이 같은 이유를, 이유를, 이유를 스스로 찾아 나서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 수신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해 편지가 되었다. G이기도 하고, K이기도 하고, Y이기도 하고 A이기도 하고 B이고 C이고 D이며 동시에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과 세상이 수신자인 편지. 그러다 보니 초대장이 되었다. 시대로 함께 가자는 말을 던지고 내내 기다리는 글이 되었다. X 같은 세상! (중의적 표현이다.) 마음은 그렇게 말해도 손은 다른 말을 쓰게 되었다.


돌아보니 10 자가 전부 엉망이다. 사실 G 설득하려 했다는 것부터 글은 실패였다. G 내게 몰라서 그러니여자로 사는 얼마나 다르고 힘든 지를 알려달라고 했을 , 내가 잠시 고개를 숙여 틈을 만들었을 , 그냥 그대로 일어나 엿을 날리고 자리를 떴어야 했다.

1학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던 어떤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전학을 학교의 여자 화장실을 불법 촬영해 것이 덜미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새끼가 여기서도 짓을 했었을까, 밤마다 생각이 떠나질 않아 괴로웠어,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어플을 알고 있니, 그런데 카메라가 아니라도 금속 재질 모두에 반응을 한다는 직접 알아내고는 다시 캄캄한 기분이 되는 순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니, 자주 가는 지하상가 쇼핑몰의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범이 현장 발각되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딱딱해져서 소름 끼칠 여유도 없었는데, 화장실에서 와이파이를 켰을 이상할 정도로 이름이 있으면 카메라가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이라는 정보가 여자 친구들 사이에 돌아다니는데, 그게 얼마나 씁쓸한 일인지 알고 있니, .

그러나 나는 말을 했어야 했다. 사회 시간에 배운 아니니? 이렇게.

너는 내가 인생을 소재 삼아 납득시키게 했니. 기어코 그랬니. 불법 촬영 카메라를 모르는 것도 아닐 거면서. 여자가 죽임을 당하는 일은 뉴스에 담기지도 못할 정도로 많다는 모르는 것도 아닐 거면서. 나는 내내 뒤척이다가, 마침내 썼다. G에게 하는 길고, 오래되고, 질척이는 대답을.


여름에 완성한 글을 가을에 내놓을 , 나는 글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두근댔다. 서문을 써서 글을 포장까지 두었다. 내가 중산층 가정의 시스젠더*이기 때문에, 세상이 언젠가 합의한 오래인 이야기, 여자로 사는 것은 같다는 이야기를, 한참 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밖에는 없는 글을 잔뜩 꾸며두었다는 얘기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가지 젠더밖에 나오지 않는이상한세상임에 주의, 내가 하는 말로 다양한 삶의 모양들을 뭉퉁그리게 될까 두려우니 주의, 많은 당부들을 덧붙이고. 글이 누군가에게는 아직은 혁명일 있다고 자위하며.

다시 쓸란다. 이게 지금 결론이다. 글이 어느 다시 편지로 바뀔 있을까? 아직은 믿지 못한 채로 나는 초대장을 구겨서 일기장 안으로 다시 집어넣고 만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글을 내놓기를 원하는 걸까? 초대는 무리수였다는 결론을 쥐고도 나는 일기장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지나가는 모두가 읽기를 원하는 걸까? 젠더 갈등역차별이 X 같은 말들을 부숴버리고 싶어서? 아마도. 길고, 질척이고, 오래된권력 후예들은 내가 목격자이고 생존자라는 알기조차도 꺼리니까.

여성 혐오 그만하라는 말이 남자들을 모독하는 말이 되는 거냐

여자가 생존을 이야기할 남자가 기분을 이야기하는 갈등이고 대립이냐

권력을 넘기라는 말이 아니야. 나눠가지자는 말도 아니야.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하고 문명과 인권과 기타 등등과 멀고 부끄러운 덩어리를 버리자는 말이야.

세상이 누구에게 가혹한 똑바로 보라고. 부끄러운 권력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말자고. 미움이 아닌 사랑을 우리 답으로 선택하자는 초대가 아니라도.

새로운 세대의 시절들은 평안하기를 바라는 소원과 시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들에 대한 상상을 분명히 새겨 넣고. 소원과 상상이 쓸모를 다하고 조용히 땅에 묻힐 세상이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나는 써두었는데, 모든 것이 초대라는 허울 좋은 말은 절대 없어 다시 설득이 되고 말았다, 그런 느낌. 제발 저기로 가자고 간청하는 초라한 부탁.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글은 다시 일기가 되었다.

그리고 분명한 하나. 얼마만큼의 오염이 있었는지 얼마만큼의 타협이 있었는지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면서, 먼저 거기 있는 척을 하며, 주인 행세를 하며, ‘초대 운운하는 나를 참을 수가 없어서. 일기로 돌아갔다. 모든 .


그런데 나는 일기장을 펼쳐놓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실수일까?

마음을 알아줘, 소원을 알아줘. X 같은 세상! 뒷담화 . 나랑. 뒷담화밖에 없어 슬픈 이야기를. 실컷 . 슬픔이 얼마나 지를. 나랑.


처음부터 이건, G이기도 하고, K이기도 하고, Y이기도 하고 A이기도 하고 B이고 C이고 D이며 동시에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과 세상이 수신자인 편지가 아니었던 거다. 처음부터 그런 편지가 아니었으니 초대도 아니었던 거다. 처음부터 수신자는 따로 있던 거다. 일기를 훔쳐봐 사람들,






괴는 여자들에게.

모두 안녕.

나는 자신이 턱을 괴고 있는 같다고 느껴. 뭔가를 뚜렷이 째려보고는 있지만 딱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하거든. 이유가 되는 하나를 짚어내지 못할 정도로 길고, 오래되고, 질척이는 시간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

있지.

나는 천불이 나는 속에서 활자들을 꺼내 골고루 훑어본 다시 꿀꺽 삼켜봐.

. 마음이 채워지진 않더라도 영영 같진 않아.

앞으로의 답을 지켜봐 .

동봉된 나의 용기까지도.









*시스젠더란 뭘까? 그건 다른 일기장에 언젠가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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