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4.
K는 내 글을 읽고 글에서 이토록 많은 화가 느껴지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 무렵의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자주 슬펐기 때문에. 어느 날은 복도에서 Y교사와 남자 친구가 웃으며 하이파이브하는 것을 보고는 돌아서서 울어버린 적도 있다. 그 친구는 나대는 성격이 나와 비슷한 애였고 Y교사는 기가 너무 세다며 나를 따로 불러 주의를 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와 나 사이의 차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 하나라는 게, 나는 숨 막힐 듯 억울했다. 내가 한 술 더 떠서 잘못한 게 있을 수도 있는 거라고, 아닐 거라고, 너무 우울한 쪽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나는 울음을 그쳐보겠다고, 혼자 계속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불합리와 불행들을 설명하려면 답이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고2 봄. 야구팬이라고 말한 내게 P교사가 경기 규칙은 알고 보는 거냐고 물었던 날. 야구 세계에서 내가 이등 관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P교사의 그 말이 내 위치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그 말이 나를 구렁텅이에 처박아뒀다. 언젠가 홈플레이트 위를 펄쩍펄쩍 뛰게 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다짜고짜 P를 떠올려야 했을 만큼, 그 말은 나에게 오래도록 머물렀다.
세월을 미리 예감이라도 한 듯 나는 곧장 불편해졌고 어딘가 도움을 청하기라도 해야겠다는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교무실에 가 친한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더랬다. P 선생님이 자꾸 수업 시간에 여자가 어떻고, 남자가 어떻고 하시는데, 제가 직접 말하긴 겁이 나요, 하지 말라고 좀 말해주세요. 내가 이야기하는 내내 앞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선생님은 잘 알아들었으니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일이 잘 풀렸다면 나는 이 일기를 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 반전은 여기. 이틀 후, 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 자투리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들었는데, 이건 같은 교사 입장에서 안 될 말이야, 우리(당연히 나는 빠져있는 그들의 우리.) 사이가 어색해지는 건 생각을 왜 안 하냐 이 말이야, 왜 직접 대응을 못 하는 거니, 너희 똑똑하잖아!
믿었던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 그건 그리 문제 되지 않았다. 내 어설픈 말들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고 느낀 순간이 억울할 뿐이었다. 정말로 직접 맞서지 않은 내 책임이 더 큰 것인가 고민하는 찰나가. 내 말이 결국 말 같지가 않았다는 분명한 사실이. 그 선생님이 최소한 나를 ‘익명의 건의자’로 감싸주긴 했으니 고마워해야 했을까? 그렇지만 시뻘게지는 내 얼굴을 반 애들 모두가 봤으니 익명 작전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마침 종소리. 쉬는 시간. 술렁거리는 교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부들거리는 나.
P는 교실 한가운데에서 끔찍한 말들을 뱉어놓고도 무사할 수가 있구나. 그리고 나는 고자질쟁이가 되어버렸구나. 그렇구나.
나는 세상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가슴을 퍽퍽 쳐가면서 말들을 손에 쥐고 책으로 도망쳤다. 책을 읽고 돌아보면 온통 엉망인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더 슬퍼졌지만, 그러자 떠오른 것들이 더 있었다. 제사상을 만들고도 식이 시작되면 방 문 밖에 있어야 했던 집안 여자들과, 그 속에 섞여 왜 우리는 밖에 있어야 하냐고 물으면 원래 그렇다고 대답했던 사람들. 예민하게 굴지 말고 그냥 웃으면서 좋게 넘어가라고 종용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게 못내 억울해서 엉엉 울던 내 어린 얼굴까지도.
그날부로 이전의 지난한 시절을 살던 나는 죽었다.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좋게 넘어가’야 했던 일들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의식 없이 따라 뱉은 참혹한 말들이 마침내 선명했다. 세상이 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내게 뚜렷해졌고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나를 물들이게 두었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져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씩씩거리며 일기를 쓰는 것 말고는. 그래서 나는 수십 장의 일기만이 남는 세월을 지나오고 말았다.
이보세요들. 내가 무어라 말을 했어야 하는가? 수업 공간을 운영하는 교사와 미성년자 신분의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 차이, 때문에 느끼는 중압감, 또한 여성인 저를 쉽게 시험하는 권력을 가진 남성인 상대방으로부터 느끼는 모욕*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인 저는 적절한 언어 자원을 찾지 못해 차별과 혐오와 같은 중대한 사안들을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해서 같은 지위에서 비슷한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타 교사인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더 정확하고 명확한 단어들이 그때 내겐 없었다. 나는 그저 대신 싸워줄 수 있냐는 애처로운 부탁만 할 수 있었을 뿐.
그렇다고 불편해, 속상해, 억울해, 그런 허술한 말들로 일기를 가득 채운 어느 날이 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날부터는 줄곧 같은 사람이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 마침내 구일삼**이 되었다.
*정희진,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 In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윤보라, 현실문화, 2015, 89-116.
**내 생일을 이루는 숫자들을 뒤집은 것이다. 다시 태어남을 의미. 필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