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복도와 밤 (1)

턱 괴는 여자 7.

by 구일삼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좌절은 H 보듬는 것이었고 모든 용기는 애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H 나와 함께 처참하면서도 눈물을 흘러가게 내버려 아는 사람, 다른 새벽을 준비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때의 모든 날이 용기인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2주마다 집에 가는 기숙사 학교였다. 집에 가지 않는 주의 금요일 저녁에는 간식이 나왔다. 나는 그걸 배불리 먹고 주말 공부를 준비하는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주말에 모의고사와 다시 훑어볼 교과서를 대충 적어두면서 밤엔 잠들 준비만 남아있는 기분을 만끽하기. 어른이 되기 싫을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지요?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는 뻔한 말고요. 이런 말들을 아빠 생신 편지에 써넣는 나이를 상상도 하지 못했을 . , 이건 다른 얘기고. 아무튼 어느 ,

간식이 남아서 주말에 나머지를 먹을 생각으로 그걸 들고 교실에서 기숙사로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담임 선생님께 제출해야 하는 종이가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길을 다시 돌아가서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 자리에 종이를 두고 나왔다. 두고 나오는데,

맞은편 자리의 다른 교사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한마디를 뱉었다. 몸이너무크다너. . 몸이, 너무, 크다, . 그리고는 끊임없이 덧붙였다. 살이 이렇게 쪘어. 원래 이랬잖아. 수업을 네가 앉아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이래. . , . [echo]

어떻게 대응을 하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는지는, 누군가 악을 뜯어간 한쪽처럼 사라진 기억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제발 어정쩡한 웃음을 흘리지 않았기를 바라곤 한다. 괜한 대답으로 몸이 웃음거리가 되는 데에 한순간도 스스로 동조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나는 자주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고, 그때마다 방으로 올라가 엉엉 울던 모습이 떠올라 숨이 막힌다.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보려 했지만, 그게 리가 없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눈물이 터졌고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침대 위에 앉아 계속 울었다. 3 되고 나서 급작스럽게 살이 찌긴 했다. 공부하느라 앉아만 있는 시간은 배로 늘어났고 나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때 나한테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입시를 무사히 통과하는 최우선인 그런 뻔한 시기였으니.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교무실, 거기서 몸뚱이 하나에 조롱과 지적이 쏟아지는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을 울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했다. 사실 처음 번은 정말로 안에서 밀려 나와 변기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다음 번은 모두 엉터리였다. 나는 갑자기 좋지 않은 속을 양껏 이용했다. 방금 먹은 간식을 토한다고 살이 전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모른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아주 미련하게. 그러자 억지로 삼킨들이 전부 나왔다.

소화된 없었던 거다.

울음을 그치고 나니까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냥 이대로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에 나를 데리러 와달라고 말했다. 엄마가 이유를 물으면 그냥 아파서 그렇다고 하려 했는데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참지 못하고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이제 엄마는 정말로 이유를 물었고, 나는 토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엄마는 횡설수설한 이야기 안에서 정확한 화를 냈다. 함부로 외모 지적에, 품평에 무슨 짓이냐며 학교에 찾아가 항의하겠다고 했다.

Q. 그런데 내가 무어라 답했을까?

A. 문제를 크게 만드는 부담스러우니 그냥 참겠다고 했다. 웃기지.

Q. 그랬을까?

A. 말했잖아. 입시 통과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 그런 뻔한 시기였다고. 그때는 여름이었고 학교 교사들에게 추천서를 맡아달라고 하거나 자소서 첨삭을 부탁하는 시기였다. 물론 새끼한테 추천서나 자소서 확인을 부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걸고넘어졌을 다른 교사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변할지가 두려웠다. 입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나는 고작 몇마디말가지고교사에게반항하는불순한학생혹은건강을염려해준선생의호의를무시한무도한학생이 수도 있는 거였다. 세상이 누구의 절규를 외면하고 누구의 변명은 들어줄지, 나는 저사람수업시간에성차별발언좀그만하게해주세요라는 말이 거절당했던 전년도의 경험으로 미리 알고 있었다. 그렇게 겁을 먹고 말았다.

그래서 한바탕 울고 피차 어두운 밤에 묻어버리면 그만이라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고작 이런 이유라니, 우습지. 그땐 틀림없이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밤을 지나온 다음에는 종종 헷갈렸다. 어떤 날엔혹시 계산 안에 넣은 맞다고 생각했고 어떤 날엔 결정을 후회했다. 하지만 어떤 결론을 내고 잠에 드는가에 관계없이 하루를 통째로 뜯어내질 못해 가끔 곱씹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우울했다.

정의의 사도인양 페미페미 거려놓고 불이익이 무서워서 숨어버리다니. 크크. 고작 이런 이유가. 우습니? X. 슬퍼. 나와 같은 이유로 컴컴한 묻힌 눈물들이 세상에 한참은 많으니까. 근데

근데 네가 알겠냐.

.

.

.


<8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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