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10.
그렇다고 말들만이 상처가 되어 흉터로 곪고 있었는가? 당, 연, 히 아니다. 무려 ‘생존’을 두고 치열해야 하는 게 여덟 살 때부터의 내 삶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 나는 학교 주변의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됐다. 교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 길을 따라 쭉 걷기만 하면 학원을 바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주말에 교문 앞에서부터 학원 문 앞까지의 길을 엄마와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등하굣길을 익히는 연습 외에도 추가로 연습할 것들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거나 따라오라고 강요하면,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싫다고 하는, 뭐, 그런 것들.
아무튼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학원을 옮기게 됐다. 연습 때는 외우기 쉽다는 감상 말고는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던 길이 별안간 정말로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학원으로 향하던 어느 날, 길을 걷는 내 옆으로 어떤 남자가 따라붙었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내 이름과 사는 곳을 반복해서 물었다. 손 뒤로 무언가를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온통 검은 차림이라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고.
기분 탓일 거라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남자는 계속해서 말해달라며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빠르게 걸으면 자기도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것도 기분 탓일까?
학교 담장을 따라 난 길이었기 때문에, 스쿨존이라는 이름으로, 그 남자가 걷는 길과 내가 걷는 길 사이에는 펜스 같은 게 있긴 했다. 찻길과 학생들이 걷는 길을 분리해 놓은 그거. 그치만 차가 아니라 사람을 막고 있을 때의 그 펜스는 나를 전혀 지켜주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저 검은 옷이 이리로 넘어올 것 같았고 걸으면 걸을수록 펜스가 끝나는 지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여덟 번째로 사는 곳을 물었을 때. 정말로 펜스가 끝났다. 동시에 학원 문이 보였다. 나는 어디 사냐고 묻는 그 여덟 번째 물음에
몰라요!!!!!!!!!!!!!!!!!!!!!!!!!!!
하며 연습한 대로의 큰소리를 내면서 냅다 학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소리를 들은 학원 선생님이 문 앞까지 달려 나온 상태였고, 나는 그 품 안에서 밖에 누가 있다고 말하며 울었다. 날, 쫓, 엉엉, 아 왔어, 엉엉, 요. 선생님은 곧장 창문으로 밖을 확인했는데, 길은 텅 비어있었다. 그새 자리를 떴던 거다.
새 피아노 학원은 살던 아파트 주변에 있었고, 이번에는 교문에서 왼쪽으로 꺾은 다음 길을 따라 쭉 걷다가 횡단보도를 세 개 정도 지나쳐야 했다. 등굣길을 반대로 걸은 다음을 조금만 더 외우기만 하면 돼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교문의 오른쪽 길이 아니라는 것 자체로 괜찮았다. 오른쪽 길보다 왼쪽 길이 하굣길인 사람들이 더 많아서 엄마는 진작 이랬어야 했다고 미안해했다. 그 전의 학원은 학교랑 가까운 위치인가만 따져 살폈다고 자책하면서. 미안해야 하는 건 엄마가 아니었는데.
나는 이후로 오른쪽 길을 딱 한 번 더 걷게 된다. 한 친구네 집이 그 길을 지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은 지는 4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나는 친구 손을 꽉 잡고 걸어야 했다. 옆쪽은 보지도 못하고, 땅만 보고 걸었다.
나는 그때 잠깐 겪은 일 하나 때문에 한동안 성인 남성이 탄 엘리베이터는 타지도 못했다. 내가 타고 있는 와중에 성인 남성이 동승하게 되면 곧장 다음 층에서 내리곤 했다. 타이밍을 못 잡아서 내리지 못했을 때는 그가 어느 버튼을 누르느냐가 내 숨통을 쥐고 흔들어 숨을 쉴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했다. 그가 내가 누른 층의 바로 밑의 버튼을 눌렀을 때는 난 아무것도 못하는 주먹만 꽉 쥐고 겨우 버텼다. 아마 그 아저씨들 눈에도 다 보였을 거다. 눈에 띄게 자신을 피하거나 옆에서 덜덜 떨고 있는 어린 여자애가. 그럼 내가 피한 아저씨들은 기분이 나빴을까?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 많이 불쾌했을까?
솔직히 상관없다. 잠시 나쁘고 말 ‘기분’ 때문에 나의 ‘생존’을 양보할 수가 없으니까. 다시 돌아가도 난 똑같이 겁부터 먹을 거다. 왜냐하면 세상은 알아서 조심하라고만 가르치곤 했으니까. 여자애들은 험한 일 당하기 쉬우니 조심해라, 그게 다였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작태를 고쳐주겠다는 약속은 어디에도 쓰여있지가 않았다. 험한 일 안 당하게 알아서 눈치를 키워야 한다고, 미리 겁먹어두라고, 조심해야 하고 조신해야 한다고. 각자 알아서 살 길 찾으라는데 남들 기분 따위 알 게 뭐야. 내가 살려면 그래야 했다. 누구든 의심하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계가 무색하게, 어린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느꼈던가? 신경을 곤두세웠던 모든 시간이 부질없고 허탈했던가?
아니.
그냥 마음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게 다였다.
엘리베이터 하나를 타는데도 움츠러들어야 했던 그 여자애는 이제 공중화장실을 쓰기 위해 빨간 셀로판지를 가방에 챙겨 다니며 살고 있다. 변기에 앉기 전까지도 좁은 틈들을 살피느라 마음을 졸이고, 밤에 길을 걸을 때면 수시로 돌아봐 뒤를 확인하고, 아파트 단지를 도는 밤 산책도 망설이다 끝내 포기하고, 이어폰을 끼고 걷다가도 뒤가 ‘쎄한’ 기분이 들면 곧장 음량 조절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면서. 친구와 약속이 끝나고 조심히 들어가라며 챙기는 서로의 안부와 집에 도착하면 메시지 남기라는 확인이 그냥 인사치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나와 내 모든 친구들의 밤이 그저 평안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자주 울적해하면서.
작년에는 자주 가던 도넛 가게에서 도넛 다섯 개를 사고 하나를 서비스로 더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고맙다고 하지 않고 그냥 가게를 나와버렸다.
아가씨가 예쁘니까 주는 거야.
라고 말하며 계산한 봉투를 건네주는 얼굴을 보고 차마 따라 웃을 수가 없어서. 며칠 전에는 H와 택시를 타는데
좀만 덜 예뻤어도 안 태워줬을 낀데
하는 말을 들었다. H와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정적을 만들었다. 아마 착잡함을 소화라도 할 시간이 필요해서였을 거다. 일정이 빠듯하지만 않았으면 뒤를 돌아 다른 차를 기다렸을 텐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리고 차에 탄 뒤로는 그 사람이 더 말을 뱉을까 봐 가는 내내 쉼 없이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더 이상의 착잡함이 끼어들지 못하게.
내가 작년과 며칠 전에 겪은 이 일들은 어린 시절의 일들과 전혀 다른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여자애’가 자라서 ‘아가씨’가 되는 거거든.
청년이 아닌,
아가씨.
험한 꼴 안 당하게 조심히 다녀서 마침내 스물에 도착한 여자애는 청춘이 되어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다.
내 젊음은 ‘예뻐야’ 의미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로지 ‘예쁜’ 걸로 의미를 다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떠올려 보라. ‘청년’의 이미지에 ‘아가씨’들의 자리가 있는지. ‘아가씨’의 반대말이 있는지. 나는 식당의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을 아가씨라 부르는 소리에도 일일이 마음이 따갑고 서럽다. 젊은 남자는 그냥 청년이고 젊은 여자는 콕 집어 아가씨인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아줌마’가 되겠지. 주책맞고 경박하고 더 이상 예쁘지 않아 매력이 죽은 그런 존재로 다시 이름 붙여지겠지. 누군가에게는 ‘나의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가 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세상이 인정한 멋진 아줌마는 ‘몸짱 아줌마’밖에 없다. 관리를 잘해서 늘씬한 몸매를 유지해야만 나는 멋진 존재로 남을 수 있는 거다.
왜 내 생애는 ‘험한 꼴 안 당하게 얌전히 굴어야 하는 여자애’였다가
‘예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아가씨’였다가
‘예쁘려고 다시 안간힘을 써야 하는 아줌마’가 전부여야 하는 걸까?
남자들은 옷을 잘 입기만 해도 책을 가까이 하기만 해도 안경이 잘 어울리기만 해도 섹시하다는 말을 듣던데. 왜 여자들의 생애에는 새로운 국면이랄 게 없을까. 왜 우리는 새롭게 멋있을 수가 없지? 아, 이렇게나 재미없는 생애라니.
정말이지,
난 이대로는 인자한 할머니가 될 수 없을 거 같다.
내가 세상에 불만 많고 심술 맞은 할망구가 되어 있을 때 누군가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되어 ‘노신사’로 불릴 것이다. ‘노숙녀’라는 말은 길에서 자는 여자를 설명하는 단어로 등재되는 게 더 빠를 거 같고.
그래.
나는 아주 오랜 후에도 그 엉망복도의 한기를 맞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영원히 그 복도에 주저앉아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여자로 사는 바람에.
이유가 이거 딱 하나라는 사실이, 나는 겁이 난다.
무지하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