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는 찰나

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26편 : 59부, 60부

by 구일삼

비담이 덕만과 여생을 함께하며 자신의 모든 권력은 그에게 바칠 것이라는 사실이 휘하의 귀족들에게 비밀스럽게 알려진다. 비담의 이러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귀족들은 비담을 덕만에게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수를 생각하는데, 이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덕만과 비담은 전혀 알지 못하는 바였다. 그 수라는 것은, 즉 음모라는 것은, 궁에 당도할 당나라 사신에게 미생이 접근해 조정에서 덕만을 모욕해 달라 말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 오서는 신라가 자주 침공을 당하는 것이 여인을 임금으로 삼고 있어 이웃 나라들이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문하시면서, 친족 중 한 사람을 보내 신라의 왕으로 삼고 군사도 보내 호위케 하는 것이 어떠한가 여쭈라 하셨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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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정. 다른 무엇보다도 슬픔이다. 당 황제 이세민이 이런 식의 말을 사신에게 들려 보냈다는 것은 실제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데, 천삼백 년 전 덕만의 표정도 딱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되어 개인적으로 무척 가슴 아파하는 장면이다. 작중에서는 이 발상이 미생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더없이 안타까운데, 여자들을 여자라는 것으로 물음하는 이 치사하고 역겨운 모욕은 미생의 누이인 미실의 일생도 짓누르고 있던 상처였기 때문이다. 지금 미생과 당 사신이 최초로 덕만이 ‘여왕’ 임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덕만은 즉위 이후로 내내 답이 없는 질문들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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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철 농기구를 생산하여 농경 발전에 이바지하고 황무지 개간 사업을 탄탄대로로 이끌어 땅을 가진 백성들을 늘리는 것으로 민생의 안정에 몰두해 온 왕이다. 삼한일통의 기본이자 기반을 백성이라 보았고 또 전쟁이란 결국 안정한 민생 기반을 가진 나라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삼한일통은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르는 체력전이다. 책략과 병력의 싸움이 아니야. 그 체력이란 오로지 백성에게서 나온다.”라는 그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통찰이다. 또한 민생 기반을 다진 뒤에는 그간 병력 증대에 소홀했던 것을 인정하고, 삼한일통이라는 대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위해 전시 체제에 돌입, 무력 증진에 힘쓰며 신라의 군주로서 철저한 준비를 해온 것이 지금의 덕만이다. 특히 가야 세력을 마침내 흡수하는 것으로 가야의 기술력이 국방력에 더해져 신라로서는 큰 이점을 보게 됐다. 즉, 이 ‘여왕’은 민생과 무력 모두를 다잡아 삼한일통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전부 알려주는 표정. 매번 낫기 전에 찔려오는 상처.

“그것이 황제의 말이라면 짐은 당과의 외교를 단교하고 모든 관계를 끊을 것이오. 너희들의 말이라면 대역의 죄를 물어 참할 것이다.”

이전에 미실이 ‘천하를 찬탈’하고자 했을 때 당 사신이 찾아와 같은 모욕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지. ‘변방의 오랑캐 계집년’이 감히 대의를 떠든다며 당 사신이 미실을 욕보였을 때, 그때의 미실은 이 발언에 휘말리지 않고 외교적으로 상황을 풀어 사과와 협상 종결을 받아내었다. 지금의 덕만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원칙 중 하나는 협박에 냉정하게 대처하고 그걸 역으로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저들이 말하는 내용을 가지고 반박하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 말려드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주도한 내용을 가지고 논쟁해선 안됩니다.”

그리고는 당 사신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덕만은 시위부령 알천을 시켜 사신들을 조원전에 가두라 명한다. 미생을 비롯한 귀족들은 상황을 너무 쉽게 보았음을 깨닫고 아차 하는 표정을 한다. 알천은 당 사신이 빼돌리려 한 ‘어우선’을 가로채고 이것이 춘추에 의해 해독되어 덕만에게 그 내용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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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사신은 여왕불가론을 신국의 조정에 주창하고 우리는 귀국 당의 요청대로 3만의 병사를 대고구려 전쟁 시 지원한다.’






이 밀약에 적힌 이름은 비담의 것. 비담의 이름을 허락 없이 갖다 쓴 귀족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비담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고 한 배를 타라고 요구해 온다. 너의 집무실에서 맹약서를 보았고, 여기에 화가 나 참을 수 없어 일을 꾸며 너를 왕으로 만드는 것까지 ‘우리’는 모두 합의했으며, 이미 너의 이름이 오우선에 적혀 덕만에게 전해져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비담은 분노하지만, 정말로 덕만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려움에 떤다. 처벌을 받게 될까 두려운 것이 아니고 덕만에게서 ‘버려질까 봐’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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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은 당장 덕만을 찾아가 해명한다. 덕만은 오우선을 보여주면서 모르는 척, 단지 당 사신이 뇌물을 주려고 한 듯하다며 비담에게 이를 보인다. 이는 왕으로서 그를 먼저 판단해야 했기 때문인데, 비담은 서운해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모든 것을 밝힌다.

“밀약서입니다. 제 이름으로 사신단에 전달된 밀약 문서입니다. 제가 폐하께 약속드린, 폐하 사후에 모든 정무에 손을 뗀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미생공과 하종공, 주진공, 수을부공 모두가 알아버렸습니다. 그 내용이 저들에게는 위기로 느껴졌었나 봅니다.”

춘추가 이에 반박한다.

“해서 그 자들이 일을 꾸몄고 상대등과는 무관하다?” “오우선엔 상대등의 이름이 버젓이 적혀있었고 그것을 빌미로 사신단은 폐하께 모욕적인 언사를 했소. 헌데 음해일 뿐이다? 그것을 믿으라?”

거침없이 비아냥 거리는 춘추의 말을 끊고, 덕만이 대신 답을 한다.

“짐은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비담은 이 믿음에 보답하고자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으니 ‘그들을 제압하고 일을 수습할 것’이라며 맡겨달라고 말해 보인다. 이후 그는 사랑을 가지려 정치력을 동원해 온 세월, 사람 하나를 보고 달려오느라 차마 보지 못한 뒤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제야’ 자신의 세력 하나하나를 가늠해 보니, 대부분이 자신의 이름을 뒷배 삼는 것을 공통으로 염종에게 장악당했음을 확인되고야 마는 것이다. 심지어 귀족들은 염종의 관리 하에, 덕만에게 빼앗긴 사병들을 대신할 새 사병들을 몰래 키우고 있었다. 아득해지는 기분으로 비담은 상장군인 유신의 병력을 빌려 이를 전부 습격해 해결하려 하지만, 귀족들이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말았다.

발신인 불명의 예언이 배를 타고 서라벌에 도착한다.

‘서국호세존 신국호제존.’

극락정토의 부처 이름을 가진 자가 신국의 왕이 된다는 뜻인데, 비담의 이름이 구름 낄 담(曇) 자를 가지고 있으니, 비담이 왕에 오른다는 의미의 예언이 도착한 셈이 된다. 누가 보아도 권력을 위해 백성을 현혹해 온 미실 세력의 조작 전문가 미생의 짓. 이는 곧바로 신국의 본을 흔들고 왕을 모독한 죄로서 명명되고 범인 색출에는 춘추가 나서게 된다. 심증은 모두 한 곳을 가리키지만, ‘명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춘추는 비담이 상대등이 되고 대외적으로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계승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 진상 조사를 통해 귀족들을 압도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진상 조사 중 춘추가 화살을 맞는다. 범인 색출이 가까워져 오자 무리수가 던져진 것이다. 이제 비담 세력은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춘추는 왕의 후계가 될 자, 심지어 미실의 사람에게서 독화살을 맞아 죽은 천명의 아들이다. 그런 그를 노려 화살이 날아오다니, 이런 모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덕만은 당장 편전 회의를 소집한다. 비담의 세력은 시치미를 떼며 ‘사고’가 일어났지만 춘추가 무사하여 다행이라는 말을 뱉는데, 덕만이 분노한다. 그는 이번 일은 ‘사고’가 아니며 춘추에 대한 ‘시해 시도’였다고 정정하고, 진상을 밝혀 엄히 처결할 것이라 비담 세력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중요한 것은 덕만이 이 편전 회의에 비담은 참석지 말라 명했다는 것이다. 즉, 이 선전포고에 비담은 포함되지 않은 채이다. 이는 덕만이 비담을 믿고, 비담의 세력이 벌인 일을 비담과 분리해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전에 춘추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

“비담은 나의 명으로 모든 악역을 맡아왔다. 나를 위해 악역을 맡아왔고 이번에조차 스스로 악역을 맡겠다 한다. 나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비록 내가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치이기에, 왕인 나를 연모하기에 그의 연모는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야.”

덕만은 비담이 일을 스스로 해결해 자신의 믿음에 부응하려고 애를 쓰는 것, 기대를 넘어 잘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과해지고 있는 것을 전부 알고, 그 전부를 안쓰럽게 여긴다. 해서 그는 왕의 얼굴로 비담 세력에게 최후통첩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담과 그들을 분리해 보고 있음을 알리고, 더 이상 혼란을 만들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는 얘기다. 특히 이 시점은 덕만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때이다. 덕만과 비담,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있지만 왕에게는 더없이 연약한 시기였다. 덕만에게는 이미 쌍생의 증거로서 빼돌려질 때 폐가 불에 다쳤다는 이상 조건이 있었는데, 승계가 구체화되어야 하는 시점에 가중되는 혼란들이 왕의 건강에 악영향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만은 정인을 위해 나선다. 굳게 서서, 비담을 자신의 뒤로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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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춘추에게는 필히 거슬릴 터. 그에게 있어서, 비담이 대외적으로 비호하고 있는 세력은 바로 그의 조부, 부친, 모친을 전부 죽인 세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담이 상대등에 오르며 춘추와 후계를 경쟁해야 하는 정적이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이에 춘추가 책략과 수에 능통한 자답게 비담의 마음을 흔들기에 이른다.

“폐하께서 궁을 떠나시면 낙향하겠다 그리 서약했었지? 그거 안 될 것 같애. … 너희 어머니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죽었지. 그리고 이제 그 자식이 날 죽이려 해. 가만히 앉아서 죽어야 할까?”

춘추 역시 비담과 그의 세력이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이번 기회에 정적인 비담까지 같이 해치울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와 춘추를 간교하다 볼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춘추는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섬뜩하게 만드는 대사가 나온다.

“저기, 나 비밀이 하나 있는데. 알려줄까? 난 머리는 빠르지만 몸이 빠르지 않아. 해서 사람들이 보기엔 더디고 느리고 둔하게 보여. 근데 말이야. 난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 예를 들면, 뭐 사소한 거긴 한데…. 대남보는 왜 실종됐을까?”

대남보는 미생의 아들, 미실의 조카이자, 천명에게 독화살을 쏜 장본인이다. 춘추가 처음 수나라에서 신라에 당도했을 때, 그는 죽을 각오로 용서를 빈 대남보를 용서했다 밝히고 미실 세력에게 의심받지 않았다. 상황과 판세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미실의 난이 일어나고, 그것이 종결되어 덕만이 즉위하고, 또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그러고 보니’ 미실의 난을 마지막으로 대남보가 극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즉, 시청자들을 포함한 모두가 큰 서사에 대비되는 자잘한 일들을 잊었을 때, 춘추라는 캐릭터만은 늘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의 복수 대상을 늘 주시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는 춘추의 이 대사를 통해, 그가 치밀한 인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비담은 “너 많이 컸다. 옛날엔 나 무서워서 쩔쩔 매고 그랬는데. 그치?”라며 그의 기를 누르려 하지만 춘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 너 옛날엔 정말 무서웠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왜? 옛날에 넌 가늠할 수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그런 사람이었어. 원래 공포란 알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거거든. 근데 말이야. 이젠 다 빤히 보여. 지 세력을 주체 못 해서 쩔쩔 매고 연모에 눈이 멀어서 앞일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니까.”

사람을 목표로 하는 건 위험하다, 미실의 마지막 연민이 정확히 지금 비담의 꼴이 되었다. 나라를 가지기 위해 사람을 얻고자 한 미실과 덕만은 그들을 헤아리고 다스려온 것이지만, 덕만을 얻고자 정치를 동원하고 권력을 불려 온 비담은 그 자체에만 집중했지 내부는 전혀 살펴오지 않았다. 춘추의 말대로, 연모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해서 덕만의 마음을 얻은 뒤 돌아본 자리들이 이렇게 엉망이었을 줄은 몰랐던 비담은 당황해 휘청이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적은 비담을 흔드는 데에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 다시, 그는 연모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러나 춘추의 다음 말이 남아 있었다.

“폐하께서 정말로 너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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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강조했듯 춘추는 정적 비담이 자신의 왕위 계승에 걸림돌인 상황이다. 그리고 이 위기에서 아예 비담을 무너뜨릴 틈을, 그는 알고 있다. 비담은 덕만의 신뢰와 덕만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세력이 더 얼마큼을 날뛰어도 비담이 스스로 자멸할 리는 없다는 것을, 춘추는 분명 알고 있다. 때문에 그는 다른 것도 아니고 ‘덕만’을 운운하는 것이다. 이 잔인한 일격은 비담을 잔뜩 흩뜨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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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비담. 너는 이 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 폐하에 대한 연모가 진심인 것도 안다. 허나 너와 너의 세력들은 모두 대업에 걸림돌이다. 사라져야 해. 비담. 너에겐 안된 일이다만 단지 정으로 움직이는 자에겐 역사는 아무 자리를 남겨주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방법으로 패도를 걷는 자비로운 지금의 왕과는 달리, 춘추는 자신의 그릇에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을 소거하는 방법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덕만이 징검다리가 되어 이루어질 삼한일통이라는 대업의 주인은 결국 태종무열왕, 춘추가 될 것이었다. 춘추가 대남보를 제거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복수를 한 것이라면, 그의 패도는 비담의 마음을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한편, 비담 세력은 왕이 비담을 제외한 자신들만을 편전 회의에 소집해 한 것이 마지막 경고, 혹은 선전포고라는 것을 알아들은 참이다. 그리고 정면돌파밖에는 답이 없다고 판단하여 본격적으로 비담을 왕으로 올리기 위한 정변을 준비한다. 하지만 상대등인 비담의 이름이 곧 이들의 명분인 것인데, 비담은 정변에 참여할 리가 없다. 속수무책인 상황 속에 비담 세력의 귀족들이 답답해만 할 때, 염종이 비담공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 역시 춘추처럼, 덕만에 대해 지껄일 참이다. 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연모를 했다고 비담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덕만 역시 정변을 예상하고 비담을 제외한 일파들의 추포를 준비한다. 춘추는 왜 비담을 분리시키는 것이냐 불만을 내보이지만 덕만은 이를 끊어낸다.

“이번 일들에 비담 관계하지 않았다는 것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도 춘추가 비담은 제거하지 않는다면 장래에 위협이 될 것이라 덕만을 설득하려 하는데, 덕만은 여전히 단호하다.

“비담이 두려운 것이냐. 그래? 이제 비담은 그 세력을 잃게 될 것이다. 무슨 위협이 되겠느냐. 뭐가 두려워서 죄 없는 자를 쳐내야 한단 말이냐. 내 명 없이 비담을 건드리지 말거라.”

이날 낮, 비담은 왕에게 가 자신을 숙청하라 청하였다.

“폐하. 소신은 모든 각오가 되어있사옵니다.”

이미 덕만에게 편한 길이 되어주고자 한 비담이다. 그는 자신이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화를 입어도 상관없으니 왕으로서 세력을 통제하지 못한 신하를 처벌하라 이른다. 하지만 왕은, 아니, 덕만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각오가 되지 않았다. … 널 추화군 전선에 산성을 쌓는 책임자로 명할 것이다. 당장 떠나거라. 허면 내가 서라벌의 일들을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서 다시 부를 것이야. … 네가 서라벌에 있다면 어떻게든 얽히게 된다. 가 있는 동안 모두 처리할 것이다. 내가 해결할 것이야. 잠시 여론이 들끓겠지만 무마될 것이다. 그리고 널 부를 것이야.”

그리고 덕만은 비담의 손에 반지를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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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대신 자신의 뒤에 숨으라는 말을 하는 왕. 비담은 그런 정인에게 짐이 될 수 없다고 느낀다. 추화군에 가 있겠다 답을 하지만, 비담은 속으로 덕만의 심려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다짐한다. 해서 그날 밤, 세력의 관리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일을 꾸며 온 염종을 살해하고자 칼을 꺼내든다. 그는 산속에서 염종의 수하들과 검투를 벌이고, 그들을 전부 죽인 후 염종의 목을 치기 직전이었다. 나무 뒤에서 비담에게로 독침이 날아온다. 비담이 그것을 피하고 독침을 쏜 자의 복면을 벗겨 보는데, 그것은 비담도 얼굴을 알고 있는 국왕 직속 시위부 소속의 무사였다. 당연히 이는 전부 염종이 음흉한 미소로 준비했던 계략이지만, 춘추에게 덕만이 네게 진심을 주고 있는 것 같냐는 물음을 들은 후인 비담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그는 덕만이 사랑을 속삭이던 순간들을 되뇌어보지만, 이내 길을 잃는다.

“누구의 명이냐. … 말해. 누구의 명이냐고. 누가 시켰어! 말해, 어서. … 대답해, 누구야. 말해…. 말하라고, 이 새끼야!”

염종과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은 시위부 무사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결한다.

“… 신국의 적을 척살하라. 신국의 적을 척살하라! … 여왕 폐하 만세.”

덕만이 춘추에게 비담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호한 명을 하던 그 밤 그 순간, 비담은 덕만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진실로써 받아들이고 만다. 이는 춘추와 염종의 합작, 그리고 비담에게 버려진다는 감각을 알려준 미실과 문노의 합작인 셈이다. 날 죽이려는 게 누구인지, 진평인지 서현인지, 당장에 죽더라도 그것이 중요했던 덕만의 어린 얼굴을 기억하는지. 두 사람의 처음이 그런 덕만을 비담이 구해주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비담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게 두 사람의 마지막이 시작되고 말았다. 걷잡을 수 없이 큰 상처를 입게 된 비담은 곧장 정변에 합류한다. 그리하여 ‘비담의 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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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찰나가 되었다. 남은 영원을 전부 걸고자 했음에도. <27편(마지막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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