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리 버스 365일 [아가씨의 맨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화장하는 여자

by 갸리

아가씨의 맨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여유 없는 하루의 시작. 그녀들의 손엔 화장도구가 들려있다.


오늘은 화장하는 여자에 관해서 신기하면서도 궁금한 몇 가지에 관해



버스나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를 누구나 한 번쯤은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여겨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가게 된다. 계속 그쪽으로 시선을 꽂아두자니 변태 아저씨라 여길 것 같은 느낌에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드문드문 힐끔 거리게 되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다. 화장하는 여자가 이쁘다거나 섹시하다거나 해서 쳐다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남자의 시선에서 화장하는 여자는 신기한 광경에 지나치지 않는다. 요즘은 남성들도 화장을 많이 하는 시대라 이상할 거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특히나 화장이라는 것을 결혼식 신랑 화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에겐 누군가가 내 앞에서 화장하는 모습은 당연히 신기하다.


그런데 참 의아한 것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자신의 겉모습이 깨끗하게 단장되지 않으면 집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물론 나의 와이프도 지저분한 모습으로 바깥출입은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여성 심리인 줄로만 알았던 나만의 착각인지 버스에서 정돈되지 않은 맨얼굴로 올라타 바로 화장에 들어가는 여성을 볼 때면 잠시 아리까리 해진다.


공사 시작!


오늘 또 지각이네! | make by ToonBoom Harmony


버스에 올라타면서 한 손엔 파운데이션(콤팩트)과 다른 한 손엔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 들어있는 듯한 튜브 형태로 생긴 1/3 정도밖에 남지 않은 크림 튜브가 들려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여성 화장품 파운데이션(콤팩트)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뚜껑을 열면 동글납작한 스펀지에 뚜껑 안쪽으로 거울이 달린 화장품.


자리에 앉자마자 파운데이션 뚜껑을 열어재끼고 다 쓰고 얼마 남지 않은 크림 뚜껑을 뽑아 바로 얼굴로 짜더니 조그만 거울을 보며 열심히 바른다. 기초공사의 시작인 듯하다.


이번엔 가방에서 색연필 같은 도구가 나와 눈썹을 그리기 시작한다. 조그만 거울에 제대로 눈썹을 그리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귀밑머리를 넘기며 이쪽저쪽으로 얼굴도 여러 번 움직인다. 버스의 덜컹거림으로 상반신이 이쪽저쪽 요동을 쳐도 그녀의 페인팅은 정교함을 유지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면 버스가 정차하는 순간은 작업의 속도를 올리고 버스가 움직이면 그에 맞춰 손놀림도 따라 움직인다. 정말로 고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정밀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마치 스태빌라이저 기능이 손에 붙어있어 무수한 떨림에도 제대로 위치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은 고사양 카메라에서나 볼 수 있는 손 떨림 보정 기능과도 흡사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다시 얼굴 마름질을 한 후 지름 3cm 정도 크기의 브라운 계열 작은 크림 통을 열고 손가락으로 찍어 바른다. 이 조그마한 크림 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나는 모른다.


이로써 얼굴 단장은 끝이 나고 다음 차례는 화려한 자태의 눈썹 손질 가위의 등장. 작은 포클레인을 꺼내는 느낌이랄까. 포클레인으로 흙더미를 다지듯 왼쪽 오른쪽 번갈아 눈썹을 짚는다. 아마도 오늘 아침 변신의 마무리 작업인 듯하다. 이렇게 단장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단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단, 5분이면 자신감의 파워를 올릴 수 있는데

왜 맨얼굴로 버스에 올라탔을까?


아침 출근 버스에서 만나는 맨얼굴의 여성들은 추측건대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얼굴 단장 타임은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특정 다수에게 맨얼굴을 들어내는 일은 괜찮은 것인가? 여성에게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인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5분이라는 시간이 불특정 다수에게 맨얼굴을 들어내게 할 만큼 그녀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세상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