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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Apr 05. 2018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벚꽃 휘날리는 4월에 더없이 좋은 이야기

벚꽃 휘날리는 4월에 더없이 좋은 이야기


석촌호수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우연히도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쿠라(우리말로 벚꽃)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말하는 클래스메이트에게 다음처럼 말한다.


우리는 단지 그날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것뿐이니까. 그 말에 그녀는 나를 꾸짖었다. "아니, 우연이 아니야.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와 내가 같은 반인 것도, 그날 병원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야. 그렇다고 운명 같은 것도 아니야. 네가 여태껏 해온 선택과 내가 여태껏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했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난 거야."


맞다. 벚꽃이 피던 날 내가 이 책을 우연히 읽은 게 아니라는 것.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도 벚꽃이 보고 싶어 벚꽃을 보러 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고, 제목에 끌려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나의 의지에 따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선택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살면서 '우연히'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책의 여주인공 사쿠라의 말에 조금은 창피한 감정이 든다. 이제 고교생인 여자아이의 말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하여튼 내가 이 책을 벚꽃이 피던 날 읽은 것이 '우연'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아깝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은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느낌이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그림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체킹 하는 플립 북을 넘겨보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소설책인데, 극장에 앉아서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어린 남녀의 이야기가 살아 움직였다. 오래간만에 졸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아저씨 세대 인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열일곱 살 아이들의 로맨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청소년의 풋풋한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 내내 일명 '클래스메이트'라 불리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오직 사쿠라의 입에서 클래스메이트라고만 불린다. 그 또한 여자 주인공 사쿠라를 '사쿠라'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너'라고 호칭한다. 보통 일본에서 학교 친구들끼리는 이름에 '짱'을 붙여 부르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그녀를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그의 성격을 조금은 알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이 싫지 않고 비가 가진 폐쇄감이 자신의 내면과 잘 어울리는 날이 많다는 클래스메이트. 이에 반해 사쿠라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고 발랄한 성격이다. 작가는 인물의 내면 묘사를 통해 이 소설이 단순히 고교생의 로맨스를 다룬 애정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클래스메이트를 사회성이 결여된 성격의 소유자로 설정함으로써 정반대 성격의 여자 친구로 인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이야기 속에서 클래스메이트 즉 남자 주인공 내면의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사회와는 담을 쌓은 듯한 인물. 어찌 보면 개인주의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의 모습이 안돼 보인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포기한 채 살아왔다든가. 가족 이외의 모든 인간관계를 머릿속 상상으로만 완결시키는 인물이다. 타인과 관계 맺는 걸 싫어하는 인물. 당연히 여자 친구를 한 번도 사귀어본 적 없는 인물. 클래스메이트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흥미로웠다. 



이 소설의 한 문장 에센스

단연코 제목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다음 문장을 소개하고 싶다.


"그녀를 만난 그날, 내 인간성도 일상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소설에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두 사람의 사랑이 교집합을 이루는 순간이다. "나는 실은 네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 싶었어."라고 말하며 우리의 관계는 이런 흔해빠진 단어로는 모자란다는, 끝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말한다. 작게 보면 사랑한다는 의미를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문장에서 두 청춘의 풋풋한 사랑이 느껴진다면 위에서 말한 문장은 이 책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나와는 다른 인간을 만남으로써 또는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인간성도 일상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변할 수 있다는 것.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끝으로 인간이 살아간다는 의미,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남자 친구인 클래스메이트가 아닌, 바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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