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갸리 Apr 09. 2018

라틴어 수업 [한동일]

숨마 쿰 라우데. 내가 최고다

De mea vita 나의 인생

라틴어 수업 시간,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숙제를 내준다.

"De mea vita" 우리 발음으로 "데 메아 비타" 뜻은 '나의 인생'이다. 라틴어를 배우는 수업시간에 '나의 인생'에 대해서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적어 내라고 한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인데 웬 작문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문학 수업도 아닌데 글을 써내라니. 뭐, 학생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교수가 왜 저런 숙제를 내줬을까 의문이 들었다.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처음 외국어 수업을 들을 때, 일반적으로 했던 수업은 예컨대 "나는 누구입니다."라든가 "나는 몇 살입니다." 등등 최소한의 자기소개를 외국어로 말하는 법을 가르치며 시작한다. 아니면 고리타분하게 칠판 가득히 문법을 써놓는다거나. 이것이 내가 처음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광경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나의 경우는 영어라 하겠다. 그 시절 영어 수업은 언어를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외국 말의 문법 구조를 머릿속으로 때려 박아 쑤셔 넣는 느낌이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웠다기보다 선생님 머릿속에 있는 영어 문법을 배웠다.



다시 한번 "De mea vita"를 되뇌어 본다.



이 책을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성찰'이라 하겠다. 라틴어라는 어렵고 복잡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서 맨 앞이다.

기억 고독 그리움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이문재 - [지금 여기가 맨 앞]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 나가야 한다.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지 자라기 마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진심으로 '성찰'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왔고 세월에 휩쓸려 별생각 없이 살았다. 아무런 계획도 미래 설계도 없이 현재 생활에 안주하는 허송세월을 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린나무는 곁가지를 뻗치면서 큰 나무로 커 나간다. 인간이 곁가지를 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찰'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곁가지가 생겨야 삶의 미래도 여러 갈래의 길이 생겨날 수 있는데, 나의 나무엔 단 하나의 가지만 존재했다. 반성하고 살펴보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되려 두려움이 앞섰다. 지나간 일이라고,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마음조차 없었다. 그런데,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라는 [지금 여기가 맨 앞]의 첫 구절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나무가 가지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내듯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 결코,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곳에서 다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고. 


[라틴어 수업]은 나도 이 저자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인생을 반백 년 가까이 살았어도 모르겠는 게 인생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후회는 없는 건지.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책.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내 인생에 곁가지를 칠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Summa cum laude. 숨마 쿰 라우데. (최우등)이라고 외쳐야 한다. 우리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