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청공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갸리 Apr 15. 2021

하청공장. 4화

공장 안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청각과 후각을 후벼 파는 소리와 향기. 



밖에서 바라본 공장은 하늘 높이 솟은 굴뚝도 없고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도 물론 없었다. 매끈한 대리석으로 포장한 건물. 상당한 실력을 갖춘 건축가가 설계한 건지 일반적인 사각형 빌딩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3층엔 멋진 테라스. 각 층은 커다란 유리창이 벽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변 성냥갑 같은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디자인. "참! 소박하기도 하지" 멋진 사무실에서 근무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남달랐다. 보통 작은 규모의 회사는 근무환경도 열악하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또한 오래돼 낡았거나 퀴퀴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이 공장에 들어오기 전, 면접을 봤던 많은 회사가 그런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일말의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공장은 건물 전체를 사용한단다. 허름한 건물. 사무실 하나. 작은 공간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아닌 제대로 갖춘 번듯한 회사. 외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급스러움. 그때만 해도 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육성한다는 정책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라 이 회사는 그 흐름을 잘 탄 듯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필자의 머릿속에 섣부른 생각이 깃들었다.


애니메이션 = 미래 성장동력



지금이라면 각광받는 4차 산업 그 이상의 의미라고 할까. 뭐 어릴 때니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착각. 설익은 햇병아리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그때는 이 등식이 허언은 아닐 거라는 확신을 했다. 그만큼 이 공장의 외형은 필자에게 대단한 인상을 남겼다. 겉모양으로 판단했던 젊은 날의 추억은 딱 여기까지. 하여튼 멋진 건물이었다.  


공장에 나온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겉과 속은 다르다는 진실과 마주했다. 모든 규칙과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이상적인 회사라고 굳게 믿었다. 그 또한 건물 탓이다. 기대가 깨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팀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 자주 소리쳤다. 성질이 참 괴팍한 캐릭터이다. 작업을 하다가도 그 한 마디 외침에 팀장의 자리로 달려간다. 능력과 자질로 뽑힌 인력 이건만 부름을 당할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은 왜 일까. 모두가 그랬으니 사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불려 간 그 책상에서 제일 눈에 띈 건 커다란 '재떨이'.


영화 '넘버 3'에서 재떨이로 유명해진 박상면이 손에 들고 있던 그 유리 재떨이와 똑같은 물건. 재떨이를 들고 있던 박상면은 정말 무식해 보였다. 그 재떨이와 팀장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박상면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라면 영화 속 재떨이는 깨끗하다는 것. 팀장의 재떨이도 같은 유리 재질인데 투명하지 않았다. 투명은커녕 그냥 더러웠다. 더럽다는 표현은 조금 아깝다. 안에는 피다 버린 꽁초들과 니코틴 타르로 범벅이 된 시커먼 잿더미, 그리고 누리끼리한 가레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다. 꽁초는 고봉밥처럼 산더미를 만들었고 팀장은 항상 그 위에 침을 뱉으며 마무리를 짓는다. 입술 아래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누런 가레. 시장에 가면 파리를 내쫓는다고 걸어놓은 끈끈이처럼 가레는 길게 아래로 늘어져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필자에게 그런 모습은 정말로 불쾌함의 그 자체였다.


팀장의 자리에서는 항상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밥 짓는 구수한 연기라면 기분이라도 좋아질 터인데 골속으로 파고들어 뇌를 마비시킨다. 지금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이 매일매일 상영되었다. 회사 사무실 책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그 자리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를 때면 항상 더러운 소리도 뒤따랐다. 담배를 비벼 끈 후 "가르르 캭" 하고 가레를 내뱉는 소리. 담배 연기보다 '더' '더' 싫은 건 그 가레 뱉는 소리가 귀로 들어왔을 때이다. 후각도 고통스럽지만 청각을 괴롭히는 노이즈를 견디는 것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사무실은 항상 연기로 가득 찼고 덩달아 따라붙는 "캭", "퉷" 소음. 화려한 외관과 달리 속은 연기로 찌들어 담배 쩐내가 진동했고 바닥에는 꽁초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런 팀장의 영역은 점점 더 광범위해져 갔다. 마치 강아지가 산책 중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하듯 팀장도 그러했다. 직원들의 자리로까지 담배를 물며 다가왔다. 영역 표시는 떨어지는 담뱃재가 대신했다. 깨끗하던 책상은 어느새 잿빛 가루가 차지한다. 상대방은 어떻든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직원의 자리에 앉아 지시를 내리며 이렇게 내뱉는다.


"야! 어떻게 재떨이 하나 없냐!"


당연한 거 아닌가.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재떨이가 없는 것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재떨이는 있어야 한다는 논리인지. 담뱃재를 털어야 하기에 필자에게 자기 자리에 있는 재떨이를 가져오라고 한다. 어쨌든 상사의 명령이기에 할 수 없이 수행한다. 정말 잡고 싶지도 않은 그 재떨이를 공손히 가져다주면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재떨이를 쥐고 꽁초를 비벼 끄며 끈적거리는 침과 가레를 내뱉기 일쑤였다. 재떨이가 없을 때는 커피 마시고 남은 종이컵이 꽁초와 가레가 들어가는 장소였다. 그런 종이컵들은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팀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니 직원들 사이에도 슬슬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그동안 밖으로 나가야만 했던 애연가 집단. 그들의 실내 흡연도 머지않음을 직감했던지. 사무실 밖에서 피던 집단이 슬슬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 시작하더니 끝내는 자신들의 책상에서 라이터불을 댕기기에 이르렀다. 연기 굴뚝 기둥이 하나둘 씩 늘어갔다. 이상한 건 아무도 제지를 가하는 사람이 없었다. 실내에서 왜 담배를 피우느냐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분위기는 이미 흡연가들에게 기울었다. 애연가 무리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졌다. 추운 겨울 담배 한 대를 피기 위해 굳이 나갈 필요가 없게 되었고 사무실은 그런 이상한 패턴으로 변해버렸다. 이 부서에서 군주나 다름없는 팀장의 묵인 하에 공장에서는 더 많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무실이 정말로 공장이 돼버린 현장에서 없던 두통도 생겨났다. 애니메이션 제작 한 편이 완료될 때쯤이면 나의 기관지와 폐 속은 니코틴과 타르 냄새로 온통 오염되고 말았다. 아니, 매일매일이 오염된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청각과 후각을 후벼 파는 팀장의 담뱃불은 꺼지지 않았다.

직원의 열기로 가득해야 할 공간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면서.


"가르르 캭"

"캭", "퉷"


아! 아아! 듣기 싫어!


매거진의 이전글 하청공장 컴퓨터. 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