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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Jan 24. 2022

하청공장. 6화

하청공장을 찾아온 손님

오늘도 여전히 담배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무실.

한참 작업을 하다가 보면 낯선 이의 방문으로 흐름이 깨지곤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 날.

이런 날의 전날, 회사 모든 직원이 아주 분주히 움직인다. 그러니까 누군가 귀한 손님이 방문하니 전에 없던 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다. 뭐 이삿짐도 나르는데 청소가 대수야. 도대체 얼마나 귀한 손님이기에 이리도 일하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지. 손님이 귀해봐야 회사 사장에게나 귀한 것이지 나에게 귀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회사는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날이 1년에 서너 번 찾아온다. 아니 많을 때는 대여섯 번까지. 이 업계에서는 방문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잘 나가는 회사라는 증거다.


'근데 팀장 재떨이 또 치워줘야 하나'


대청소하는 날.

늘 그렇듯 모두가 왜 청소를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 

"높은 사람이 시키니까 해야지 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랫것들의 도리라서?"

"우리가 여기 청소하러 왔나!"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소리가 터져 나오는가 하면,

눈치 빠른 동료는 누구보다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간다. 나와 같은 말단은 누구보다 잽싸게 그저 한 손에는 빗자루 다른 한 손에는 걸레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빨라야 하는 사회생활. 나도 바로 눈치 빠른 동료 뒤를 따라간다. 집에서도 하지 않는 청소를 회사에서는 죽을힘을 다한다. 화장실 문 뒤에 비치된 빗자루 그리고 대걸레와 작은 손 걸레. 먼저 대걸레에 수돗물을 적셔 적당히 짜서 한 자루 들고, 손걸레도 물로 빨아 물기 떨어지지 않게 꼭 짠다. 이렇게 각자가 선호하는 것으로 적당히 골라잡는다. 뭐 다들 선호하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

 

수돗물로 걸레에 물을 적시는 동료에게 묻는다.

"그런데 내일 누가 온다는 거야?"

"너는 누가 오는지 알아?"

우리 모두 어디서 누가 오는지조차 알지 못한 체 청소부로 변신하는 날.


"팀장이 그러는데 디즈니에서 사람들이 온대."

"디즈니!"

"디즈니 누구?"

"디즈니 사장이래"

"그 디즈니?"

"어! 그 디즈니"

"진짜로?"

"대~~ 박!"



우리는 디즈니 사장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부터 빗자루와 걸레로 한 몸이 된다. 팀장이 온 사방에 묻힌 케케묵은 담배 쩐내도 없애야 하고 이리저리 널브러진 애니메이션 동화 봉투도 정리해야 한다. 뽀얗게 쌓인 먼지, 티끌 하나 없이 다 털어내라는 팀장의 명령. 


'사무실 제일 더럽게 쓰는 건 누군데' 


떨어진 명령이니 청소는 하지만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들이 온다고 해서 전 직원이 모두 청소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래도 그들 덕분에 잠시나마 쾌적한 환경을 맞이하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헷갈리면서 빗자루질은 이어진다.


하청공장에는 이렇게 1년에 서너 번 미국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다시 말해 내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원저작권을 쥐고 있는 집단의 방문. 그들의 작품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2D 애니메이션 회사는 거의 관행처럼 이어지는 그들의 이벤트. 보통 이렇게 한국에 오면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여섯 곳을 방문하는데, 아마도 그곳에서도 똑같은 광경이 벌어지리라 예상한다. 

디즈니를 필두로 소니 엔터테인먼트, 워너브라더스, 카툰네트워크, FOX, 니켈로디온.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를 주름잡던 기업이 주를 이룬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삼성, LG급 회사에서 대표가 온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 사장 입장에서는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쓸고 닦아야 하는 이유는 '디즈니'라는 것. 


우리와 같은 말단 직원조차도 디즈니 사장이 온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니까. 회사로서는 어마어마한 고객이나 마찬가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들에게서 일을 많이 수주받아야 하는 처지이므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디즈니는 말 그대로 꿈만 같은 기업이다. 그런 데서 친히 방문하겠다고 하니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다. 청소를 잘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네들이 일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아닐 터인데. 뭐 깨끗해서 나쁠 거야 없지만.  


미국의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대표급의 방문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프로젝트를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아주 찰나의 순간만큼은 뿌듯하고 자긍심이 끌어 오른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딱 여기까지다. 그들의 방문이 내 월급을 올려주는 건 아니므로.

그들의 방문은 혼자가 아닌 여러 명으로 구성되는데. 대표를 비롯해 감독, 메인 프로듀서, 코디네이터 등등. 작품에 관련한 인물이 많게는 10여 명이 우르르 몰려들 때도 있다. 과연 이 회사가 그들의 쇼를 100퍼센트 소화할 수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찾아온다. 2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매 달 네다섯 편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나 확인코자. 


방문 첫날. 동물원에 원숭이 보듯 서로가 서로를 쳐다본다. 우리도 이방인이 낯설고 그들에게도 외국인인 우리가 낯설기 때문이다. 


사장 옆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번역이 그들을 우리에게 인사시킨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샬라 샬라 샬라" 

귀로 파고드는 소리는 잉글리시. 영어 울렁증 때문에 순간 모든 근육이 경직되고. 상대방은 길게 말하지만, 대충 내가 누구라는 인사말 정도라는 건 눈치로 때려잡는다.

소심한 목소리로 

"나이스 미츄"  

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마이 네임 이스 xxx'까지 나와야 하거늘. 내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내 영어는 딱 거기까지다.


이렇게 그들의 시찰은 시작한다. 


그들도 우리가 준비한 응대에 환호의 답장을 보내듯.


"베리굿 베리굿"

"와우!"

손님 무리에서 퍼져 나오는 탄성. 분명히 립서비스다.



사실 이방인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 외에 한 가지 작업을 더 하는데. 


바로 모니터 띄우기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은근히 기분 좋게 하는 기법이다. 때문에 우리는 방문객이 바뀔 때마다 방문객의 입맛을 맞춰 그들의 작품을 띄우는 센스를 발휘한다. 우리의 사장님이 이런 노력을 알아줘야 하는데.


모든 모니터에 그들에게서 받은 하청 작업물의 결과물을 화면 꽉 차게 띄워놓는다. 물론 다른 회사의 작품도 제작하고 있지만, 이 날만큼은 방문한 회사의 작품만 띄워놓는다. 이건 전부 팀장의 지시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모든 모니터에 디즈니 캐릭터를 띄워놓는 작업.  

정말로 작업을 잘해서 '베리굿'이라는 건지 그냥 립서비스로 '베리굿'을 외치는 건지.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들며 베리굿을 외친다. 그 의미는 중요치 않다. 우리는 너희의 작품을 최선을 다해 만들고 있다는 메시지만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진 우리가 작업한 그들의 결과물을 보며 연신 외친다. 한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제일 간단한 영어로.


"베리굿"

우리는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청소와 모니터 띄우기로 우리는 "베리굿"을 받았다. 마치 초등학교 숙제 검사에서 '아주 잘했어요'라는 빨간 도장을 받은 것처럼 모두가 기뻐한다.


미국은 우리와 다르게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이 프라임타임 시간에 맞춰져 있다. 저녁 8~9시에 편성하는 애니메이션. 우리와는 천지 차이다. 한국의 수목 드라마 쯤되는 권위를 자랑하기에 그들의 방문이 어쩌면 우리에게 대걸레와 손걸레를 쥐게 하는지도.


그들의 방문이 정해지는 날.

우리의 손은 마우스와 헤어지고 빗자루, 걸레, 세정제와 데이트가 시작된다.


"야! 여기 재떨이 아직도 안 치웠니?"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치우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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