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잠깐의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한 때
버스에서 한 번쯤은 버스 사고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타고 있는 버스의 사고든, 다른 자동차끼리의 사고든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풍경은 낯선 그림은 아니다.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 소리부터 지르고 봐야 하는 것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라고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일단 한 번 지르고 본다. 자신의 정당함을 큰소리치면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 듯. 뭐 옛날에야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은 덕을 본 것도 사실이었던 시절이 있다. 그런 경험담이 입으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며 지금까지도 화부터 내고 쌍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지하철 9호선 공사를 근 1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는 석촌역 부근. 특히나 근처 터널의 싱크홀 사건으로 시끄러워 지금까지도 공사가 이어진다. 이 근처 도로 상황은 잦은 공사로 인해 차선에 여유가 없이 비좁은 환경의 연속이다.
바쁜 출근 시간을 벗어난 햇살 뜨거운 그나마 한가로운 오후 2시.
2차선 도로에서 2차선 버스 정류장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이미 버스 앞 대가리는 정류장 쪽으로 꺾여 정류장으로 들어가던 중). 나의 차선을 버스에 뺏길 수 없다는 트럭 운전사의 오기. 갑자기 버스 뒤에서 ‘빵빵빵’ 쉼 없이 경적을 울리며 고물을 잔뜩 실은 트럭이 정류장 쪽으로 파고들었다. 원칙대로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해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야 하는 상황인데 뒤에서 폭주하는 트럭으로 정류장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버스.
결국, 아슬아슬하게 버스와 트럭은 부딪힐 위험에 벗어나 가까스로 스쳐 지나갔다.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마침 신호에 걸린 트럭이 앞에 멈추자 버스 기사 아저씨가 바로 뒤에 버스를 멈추고 내린다.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은 별문제 없으니 그냥 가볍게 끝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버스 기사 아저씨와 트럭 운전사의 말싸움이 조금은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뒤에 있던 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기 시작한다.
당신들의 사고야 어쨌든 나의 앞길을 막지 말라는 뒤차들의 경적은 합창한다.
기어이 참지 못한 아줌마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입을 뗀다.
"아저씨! 뭐해요? 빨리 안 가고. 여기 사람들도 급한데."
그제서야 버스 기사 아저씨가 씩씩대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줌마의 두 번째 펀치가 비수를 꽂는다.
"아저씨도 잘한 거 없어요.”
그 상황이 너무 억울한 아저씨도 승객들에게 호소하듯 말한다.
"저 트럭이 버스 백미러를 치고 가서 백미러가 틀어졌어요.” 지난번에도 똑같은 일을 당해서 기사 아저씨가 비용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 이 상황을 다시 돌려 보면 버스 기사 아저씨 입장에서 충분히 열 받고 화날만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정류장에 정차해야 하는 것이 버스의 본업인데 누군가의 방해로 정류장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버스만 상처를 입은 상황. 솔직히 아저씨가 뛰어 내려갔을 때 나라도 쫓아 내려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 승객의 안전을 위험하게 만든 트럭 기사가 얄미워 기사 아저씨가 승객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데도 싫지는 않았다. 직진하는 차선이 우선이라는 것은 알지만, 법을 떠나서 많은 승객이 탄 차량에 위압을 가하는 행위가 먼저 잘못이라 생각한다.
"아저씨도 잘한 거 없어요.”라는 아줌마의 한마디가 왠지 더 삭막하게 느껴진다. 물론 버스 기사 아저씨의 독단적인 행동(승객에게 아무 말 없이 운전석에서 벗어난 점)이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아줌마도 그 상황을 알고 있을 터인데. 오직 자신의 상황이 더 중요하니 싸우지 말고 버스를 움직이라는 한마디. 뭐 이 말이 틀리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결과보다는 벌어진 상황을 인지해서 조금은 여유 있는 대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랑이를 벌인 시간은 고작 5분 남짓. 사람에 따라선 길게 느낄 수도 있는 시간이라 누가 옳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도
"아저씨도 잘한 거 없어요.” 보다는
"아저씨 잘하셨어요.” 는 아니어도 “아저씨가 참으세요.”라고 한마디 하는 것이 승객을 안전하게 데리고 갈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잠시 잠깐의 여유로운 마음이 때로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