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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도서관 사서 Feb 19. 2020

아빠는 왜 도서관에 같이 안 와?

#도서관 #아빠 #캠핑 #1박2일 #도서관은놀이터 #미래는노는자들의것

  어린이도서관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면, 책가방을 멘 채 뛰어 들어오는 어린이와, 엄마 손잡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아이들의 놀이터와도 같은 공간입니다.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겨울엔 따듯한 온돌이 있는 1층 어린이도서관은 엄마와 아이들, 초등학생 간의 수다 공간이며, 날씨를 이기는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오가는 이용자들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왜 아이들과 도서관에 오지 않을까?”


  격무에 혹사당해 지친 몸을 회복하느라 그런 걸까? 아니면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도서관이 아빠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공간이라서 일까?


  그렇다면 도서관에서 아빠들을 만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화랑도서관 사서들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도서관에 자주 오시는 이용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주말에 아빠들은 무엇을 하고 지내시는지, 자녀들과 어떤 놀이를 하시는지, 혹시 도서관을 싫어하시는 것은 아닌지 정말 소소한 질문까지도 도서관에 오는 어머니,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죠. 그렇게 구상된 프로그램이 바로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도서관에서의 하룻밤입니다.


  사실 처음 시작은 ‘엄마에게 짧지만 자유로운 주말을 선사해보자’라는 의도에서 기획을 하였습니다.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하시다 보니 그만큼 본인을 위한 시간이 많이 줄게 되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지요. 그런 엄마들을 위한 1년에 단 하루라는, 짧지만 소중한 주말을 위해 우리 도서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어른이(?)와 아이를 함께 돌보아 준다면 얼마나 도서관을 더 좋아해 줄까 하는 마음. 아빠도 아이와 함께 정말 특별한 하루를 경험해보고, 마을 속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짧은 시간이나마 체험하게 하여, 가족 모두에게 신뢰받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활동을 구상하고 접수를 받는 방식부터 참가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기획이 완성되었고,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참가자 모집 홍보를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호응이 있을까? 아빠들은 함께 즐거워해 주실까? 걱정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접수를 시작하면서부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분들(엄마들)이 반색을 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모집 인원이 순식간에 마감되었고, 한발 늦은 아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죠. 진행하는 저희들도 기쁜 마음으로 신나게 준비할 기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박2일 진행 당일!


  가족들이 모임 장소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엄마들의 걱정과 아빠들의 힘으로 편안한 하룻밤을 위한 짐을 잔뜩 들고 말이죠. 아이와 아빠를 배웅한 엄마들은 뭔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온 다른 엄마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습니다. 분명 오늘 처음 뵌 분들 같은데 서로 아주 친근하게 말이죠.

  15명의 아빠와 15명의 아이가 3개 팀으로 나뉘어 참여하게 되었고, 아빠들의 사이에 어색한 눈길과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아빠들 간의 미니게임, 아이들의 협동 게임 등을 참여하면서 아빠들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팀에 속한 아이의 친구들을 응원하고, 다른 팀의 아이들을 격려하면서 뭔가 아빠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과도한 몰입으로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해주신 아빠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를 다독이셨죠.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주먹밥!

 첫해는 도시락을 준비해드렸지만 둘째 해에는 아이와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체험을, 2018년에는 밥버거를 준비하였습니다. 도시락은 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양질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참가자들의 평도 좋았지만, 아빠와 아이가 함께 직접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보고, 서로의 음식을 먹어보는 과정을 통해 소풍이나 캠핑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녁식사의 준비는 공릉동의 꿈마을협동조합에 속한 어머니들의 손을 빌려 준비하여 건강한 재료와 조리를 보장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마을이 함께 준비한 아빠와 아이의 하룻밤이 여러분도 궁금하시지 않나요?


  도서관에서 1박2일 프로그램 중 가장 참가자들이 재미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활동은 ‘도서관에서 보물책 찾기’입니다. 아빠도 아이도 도서관에서 책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아 이를 재미나게 학습할 수 있는 체험입니다. 물론 이러한 교육은 매우 딱딱하고 지루하게 생각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아이와 아빠가 신나게 뛰어다니는 시간을 제공한 것 자체로 참가자 모두 즐거워했으며, 책을 찾는 방법, 다양하고 디테일한 소품들을 통해 진짜 보물을 찾는 것처럼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대팀의 진행 사항을 통해 각 팀별 경쟁심을 자극하도록 하여 팀 안에서 소통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기도 했죠.   

아빠들도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본 경험도, 아이와 함께 이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감회가 새로웠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보물책을 찾지 못했다는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릴 때는 저희 사서들도 아빠들도 당황했죠.


아이와 친해지는 방법 - 그림책 같이 읽기

아빠들을 위한 그림책 워크숍도 함께 운영했습니다. 그림책 읽기, 책 고르기, 아이와 함께 책 읽는 방법 등을 안내하고,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몇몇 아빠의 경우, 아이들 없이 모임을 가지게 되자 서먹한, 대화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처음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했지만,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아이에게 읽어주길 권하는 책을 고를 때에는 진지한 모습으로 즐겁게 선택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고른 책을 아이들의 앞에서 직접 읽어주는 시간에도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며, 듣는 아이들도 뿌듯하고 행복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림책과 멀어지게 된 아빠들도 오랜만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매우 보람 있었다 말씀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도서관을 캠핑장으로!

아빠들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시간은 어떤 때일까?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내서 아이들의 감탄사를 자아내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 우리는 도서관 및 센터 이곳저곳을 캠핑장처럼 만들어보자 하는 목표로 간단한 텐트를 제공해드렸습니다. 가족 간의 개별적인 시간을 많이 요청해주셨기에 여러 가지 한계와 공간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랑도서관이 이렇게 색다르고 멋진 공간으로 변화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익숙한 공간인 어린이 도서관에서 우리 아빠가 만든 텐트가 펴지고, 그 속에서 읽는 책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는 아이들의 평가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색다른 공간에서 뒹굴 수 있다는 점도 즐거웠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작은 변화이지만 생각지 못한 변화는 참여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죠.


처음 진행했던 “아빠와 함께 1박2일”은 다양한 체험과 게임들을 통해 아이와 아빠가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이후의 1박2일은 아빠와 아이가 서로 이야기하고 다른 가족들과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하였습니다. 아이와 도서관에서 재미있게 노는 법,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잇감 등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죠.


  이제는 주말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오는 어린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빠들도 어색해하지 않고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빌리러 어린이자료실로 쉽게 발걸음 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도서관은 아빠들에게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을 아끼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아빠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서관은 계속 변화해야 합니다.


 딱딱하고 정숙을 지켜야 하는 전통적 모습만을 떠올리는 이용자들에게 도서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기 이전에, 화랑도서관의 사서들은 먼저 마을에 질문하고 조언을 구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용자를 위해 도서관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말입니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다’는 인도의 도서관 학자 랑가나단의 말은 비단 도서관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마을과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많은 시설들은 그 지역의 특수성과 주민들의 욕구를 위해 변화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계속 성장해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공간적 한계는 있지만 주민들 마음 안에서 우리 센터는 그 의미를 쑥쑥 키워나갈 것이고, 우리와 함께 자란 아이들은 이곳을 더욱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찌는 듯 한 여름과,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도 이제 다 지나가고 새 학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마음처럼 우리 화랑도서관도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자 합니다. 조금 더 새로운 모습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이 곳은 언제나 주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여름이 오면 도서관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고자 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빠들을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엄마의 꿈같은 하룻밤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또다시 고민할 것입니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간다면 도서관은 조금 더 가까운 이웃으로, 안심하고 아이들이 찾아올 수 있는 마을 우물터 같은 공간으로 비춰지겠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하다 보면 한걸음 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살아볼 만한 세상에 가까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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