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랑도서관 사서 Feb 29. 2020

여기가 어떤 도서관이냐고 물으신다면

청소년과 함께 마을 안에서 성장하는 기상천외한 도서관, 그리고 사서


공터가 뭔데? 뭐하는 곳인데?

지금까지 이런 도서관은 없었다...!  청소년문화의집과 도서관(화랑도서관)이 결합된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이하 공터)'는 노원구 공릉동에 자리 잡아 10년째 마을 사람들의 핫플레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데? 도서관이야, 문화의집이야?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말한다.

"그냥 공터라니까요!"


센터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시간이 조금 남아 전 층을 둘러본 기억이 있다. 전통적인 도서관 모습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곳은 도서관 천지가 개벽할만한 곳이었다. 어린이실 온돌 바닥에 엎드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아이들, 유스카페에서 천장이 뚫어져라 소리 지르며 노는 아이들, 도서관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는 아이들 등 그야말로 '틀을 깨는 도서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계단 벽마다 덕지덕지 붙은 도서관 행사 포스터들을 보며 이런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땐 몰랐다... 사서들의 피땀눈물대잔치가 열리는 곳이라는 것을...




센터장님께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매번 하시는 말씀이 있다.

"공터는 마을의 우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요..."

마을의 우물터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마을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우물터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역 사회 구성원 간 느슨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마을에 선한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한다. 이를 위해 마을의 기관, 단체 주민모임 및 다양한 어른들과 함께 '꿈마을공동체'를 구성, 마을의 의제나 행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색다른 도서관, 색다른 사서

그렇다면 도서관은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책'이라는 매체를 징검다리 삼아 마을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초대하고 지적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도서관 이용자 중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청소년을 도서관에 초대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청소년 동아리를 결성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중, 고등학교 때 도서관을 생각해보면 도서관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도서관에서 조금이라도 떠들면 공부하는 어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고, 데스크에 앉아있는 사서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사서 인력부족으로 인한 공익근무자, 공공근로자 등 전문 인력이 아닌 사람들이 데스크 업무를 보았던 것 같다.) 컴퓨터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서들은 딱딱하고, 자리에 앉아 놀고먹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 듯하다.

당신... 가만 안 둘 거야... 비공개 풀고 얘기 좀 해...

우리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환대'하는 자세라고 이야기한다.


           도서관이 환대한다는 의미는?


환대하다: [동사]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다.(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보통 환대라고 하면 사람이 사람을 반겨주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로 사용된다. 혹은 사서의 환대를 감정노동의 일환으로 여겨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환대라는 의미를 축소,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조금 더 폭넓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들이 도서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참여구조를 만든다.

환대받은 청소년이 친구들을 초대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은 분위기를 형성하여 누구나 센터를 '편안한'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외부 기관 혹은 사람을 먼저 찾아가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마을 청소년과 관계를 형성하고 안부 묻는 과정과 다양한 프로그램 및 모임을 통해 그들이 도서관의 운영과정에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렇게 오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청소년이 발길을 하지 않거나, 개인학습만을 위한 공부방 이용하듯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을 도서관에 마음 붙이고, 한 번이라도 발걸음 하게 하기 위해 인근 학교 정문에 게릴라 홍보를 나가기도 하며 얼굴을 익히고, 오가며 마주하는 청소년을 기억하고, 웃으며 반겨주는 과정을 통해 진짜 도서관 이웃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위의 과정을 통해 공터를 편안하게 느끼고, 잠시 쉬거나 머물다 갈 수 있는 곳, 언제나 자신에게 따듯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사서의 역할이다. 바쁘고 업무에 치이는 상황에서도 잠시 일을 미루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 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서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환대받은 청소년은 친구들을 데려와 또 다른 환대를 경험하고, 도서관은 새로운 청소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온갖 캘리그래피가 판치는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하는 수제 포스터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센터 벽의 포스터들 또한 사람들을 환대하는데 한몫을 했다. 잘 꾸며지고 깔끔한 공간이 보기에는 좋을 수 있지만 차갑고 사람을 위축시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불규칙하게 붙여놓은 포스터들을 통해 청소년이 조금은 '만만한'느낌을 가지고 자신도 여기에 낄 수 있다는 기분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청소년 활동가들은 멋들어진 타이포로 치장한 포스터가 아닌 사인펜, 색연필로 직접 그려낸 포스터를 센터 이곳저곳에 붙이며 사람들을 초대하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센터 외부의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가는 것 또한 환대라고 생각한다. 우리와 느슨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책방, 상점, 공공기관에 들러 인사를 하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사전적 의미의 환대를 넘어 적극적인 의미의 환대라고 볼 수 있다. 한시적인 관계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환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청소년 추천도서 목록을 만들고, 그들이 다양한 곳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한다 하지만 그들을 끌어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도서관에 우호적이고 사서와 도서관의 가치에 공감하는 핵심 모임을 구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래  청소년이 도서관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지속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산할 수 있는 매개자이자 사서의 서포터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청소년사서 친구들의 깜찍한 이용교육 초대장>.<

그렇게 구성된 청소년 그룹은 '청소년사서'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에 청소년의 시각을 투영하고, 자신들이 놀기 좋은 공간으로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고 있다. 물론 이를 도서관에서 반영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사서 역할은 필수이다.

이들은  센터에서 활동하는 독서동아리 모임 시간에 참여하여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참관하기도 하고, 청소년 및 주민을 위한 도서관 이용교육을 직접 준비하고, 손으로 만든 초대장을 돌리기도 하는 등 스스로 도서관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열린 도서관이라는 인상을 또래에게 심어주고 있다.


마을 주민들 또한 자연스럽게 센터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단순 이용을 넘어 적극적인 자원활동가로 마을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도서관일촌'에 속한  불리는 어머니사서, 어린이사서는 사서와 함께 도서관 운영을 돕고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도서관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보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 사이에서 사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마을 주민들을 연결하는 교량이 될 수 있다.



센터 이름에는 '청소년'이 들어가는데...

위에 쓴 글은 대외용으로 잘 포장된 글이고... 지금부터 솔직하게 업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직까지도 청소년과 도서관을 연결 짓는 일은 어렵게 느껴진다. 연락도 잘 안 되는 편인 데다 아무리 도서관을 많이 찾는 청소년이라도 그들에게 '책'이라는 것은 게임, 기타 유흥거리보다 지루한 대상임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시행했던 '공릉동 책친구 300' 프로그램에서 이 사실이 뼈를 제대로 때렸다. 중학교 1학년 친구들 300명을 대상으로 책을 선물한다는 내용의 캠페인이었는데, 발품을 팔며 청소년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오천 번 정도 되풀이 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학교 1학년 맞지! 너희 책친구 300 아니?"

"네."

"그럼 도서관에 와서 책 빌리고 책쿠폰 받아갈래? 이거로 서점에서 책 바꿔볼 수 있어!"

"ㅎㅎ괜찮아요..."

"..."


괜찮은(...)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책이 청소년에게 매력적인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도서관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 수서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종 출판사, 온라인 서점에서 청소년을 위한 도서 목록을 입수해 매달 청소년 도서를 구매하고 있지만 과연 청소년들이 이 책을 볼까? 싶은 생각이 슬그머니 들 때도 있다. 애초에 이 목록 속 책은 어른들이 마음대로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법한 책을 골라 넣은 것일 텐데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000번대부터 900번대까지 각 번호대 별로 청소년 도서를 골라 도서관 입구에 표지 전시를 해도 청소년들이 이것을 읽을지, 마음에 와 닿을지 불확실할 때가  많다. 청소년사업팀과 연계하여 3층 유스카페에 '계간책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2개월에 한 번씩 모두가 알면 좋을 법한 주제를 선정하여 책과 영상, 신문 기사 스크랩을 함께 전시하는 코너였다. 세월호, 미세 플라스틱, 유튜브... 의미 있는 주제들을 잘 엮어보았지만 청소년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청소년의 반응? 싸늘하다... 가슴에 무관심이 날아와 꽂힌다...

 3층에 오자마자 바로 유스카페로 뛰어들어가 게임을 하고 노래방을 찾는 아이들이 계간책장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뼈를 때렸다.(아마 지금까지 뼈 맞은 걸로 치면 전치 10주는 나올 듯하다.)

일련의 사례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청소년이 책과 더 친해질 수 있을지 신선한 방법을 찾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Teaser

회의하고 나면 항상 배가 고프다. 요즘은 9시간 중 10시간이 간식타임인 듯하다.

공터는 약 4개월 간 리모델링을 통해 새 단장할 예정이다. 독서실 같던 6층 열람실의 책상을 모두 빼고 컬렉션서가를 비치하여 독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청소년과 함께 도서관을 새롭게 꾸려나가려고 한다.  현재 컬렉션서가의 대가인 용인 느티나무도서관과 협업하여 우리만의 컬렉션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청소년도 공감할 만한 컬렉션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과 어떻게 도서관을 더 따듯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새롭게 바뀔 공터의 다음 발걸음을 기다려주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지도에 없는 길을 갈 때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