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록의 결 10화

[기록의 결] #10 기록은 감정을 흘려보낸다

머무는 생각, 감정 너머에서

by 결이

처음에는 그저 생각을 옮기고 싶었다.
너무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항상 말로 전하지 못한 감정들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걸 꺼내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 ‘기록’이었다.

말은 사람을 만나야 완성되지만
글은 그저 마음만 있어도 쓸 수 있으니까.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
나를 나에게 꺼내놓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의외였다.
한 문장씩 적을수록
감정이 가벼워졌다.
마치 머릿속에서 무게를 차지하던 생각들이
단어 하나하나에 눌러 담기며
서서히 내 안을 비워주는 것 같았다.

글이 정리를 해준 게 아니라,
글이 흘러가도록 놓아준 덕분에
정리된 마음이 남은 거였다.

글을 한 편씩 올리면서
나는 ‘기록’이라는 말의 무게를
처음으로 체감하게 됐다.
그건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천천히 매만지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
그날의 기분,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말투와 감정들.
글을 통해 남기지 않았다면
잊히는 게 당연했을 마음들을
이제 나는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글이 누군가에게 닿지 않더라도,
그건 상관없다.
이미 나에게는 충분히 도착한 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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