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결Lib May 08. 2017

길 잃고서 당당해지기

다치지 않게 욕망하는 법


길을 잃다


어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당최 진지해져서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시작한 춤 동아리에서도 그랬다.


춤이 좋아서, 공연이 하고 싶어서 몸치인 걸 알면서도 참 겁도 없이 도전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거울 앞에서 나무인형마냥 삐걱거리는 내 모습에 화통이 터졌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도대체 누군가에게 암적인 존재가 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 걸 알게 됐다. 나로 인해 연습이 지체될 때면 안 그래도 쉽게 빨개지는 얼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점차 맘처럼 되지 않는 모든 일에 심각해졌고,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재능을 시샘했다. 한마디로 불행했다.


하지만 시작한 것도 내 선택이고, 그만두지 않는 것도 내 선택이기에 난 내 불행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이 한계를 극복해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쉼 없이 연습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해, 나는 마지막 공연에서도 실수했고, 잔뜩 굳고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를 마쳤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엔딩이 아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잔뜩 남은 아쉬움을 삼킬 수는 없었다. 한참을 달려왔는데 잘못된 길에 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던 매터,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중


시간이 조금 흘렀고 스스로 불행이라고 정의한 그 시간을 차분히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길을 잃고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길을 잃고서야 깨달은 것들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끝난 일은 주로 잊고 싶기 마련인데,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들이 자꾸 생각났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내가 잃은 것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데 얻은 것들은 거대해보였다. “이런 게 바로 기억을 미화하는 인간 뇌의 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분명 새로운 나를 알게 됐다.


우선, 손익을 따지지 않고 무언가에 열중, 몰입해보는 경험을 해보았다. 누군가 보기 때문에 준비하는 공연이지만 사실 누가 보는 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에 서겠다는 것은 순전히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 2분짜리 무대를 준비하는 일에는 2달이 필요하니 가성비를 따졌다면 인생 최악의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스스로에 집중했다. 마지막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실망스러워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난 춤을 더 좋아하게 됐다. 내면의 감정들을 표현할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오늘날, 나만의 방식을 알게 됐다는 건 큰 기쁨이다. 나사가 풀린 지금은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의 몸놀림에도 불구하고 춤 출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닌다. 어디 가서 “난 춤 못 춰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대신 “저 춤 굉장히 좋아해요”라는 말도 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고 자기표현이 뚜렷한 친구들을 만났다. 사람은 각자 다 다르지만 그 다름, 그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춤’은 표현 예술이기 때문에 춤을 좋아하는 동아리 사람들으로부터 놀라운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무언가를 준비했 것만으로 즐거운 일인데, 의리도 있고, 배려심 깊은 이 친구들과 여전히 연락하고 있으니 행운이 아닐 수가.   


셋째, 내 자신을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일, 그리고 누군가를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습관을 없애려고 노력하게 됐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연습하면서 더 즐기지 못하고 더 웃지 못한 것. 애초에 누구도 내게 심각해지라고 한 적도 없는 데 말이다. 취미가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공간이 동아리인데 그곳에서도 즐기지 못하고 혼자 심각해지는 일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달았다. ‘효율성’이란 잣대로 사람을 들여다보는 순간, 정작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데 소홀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어떤 일에는 효과적으로 움직이지만, 어떤 일에는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단정하는 바람에 그/녀가 가진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손해 중의 손해라고 생각한다.


회의론자 주제에 항상 해피엔딩을 쓰려 한다. ‘해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것들’이라는 식상한 주제는 덤이다. 즐거운 기대감으로 시작한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술술 풀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떤 일을 경험하든 순전히 자기화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든다. “내가 해냈다.”라는 성취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감정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 기억에서 의미를 찾는 일을 겁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의 인생을 공백 없이 채우는 방법이 아닐까.  


조던 매터,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中

작가의 이전글 혐오의 성지, 일베를 생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