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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Lib May 20. 2017

다시, 나는 시를 쓴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 시인 서정시집과 함께


어릴 땐 겁도 없이 시를 몇 편이고 써 내려갔다.

줄 없는 공책에 가로로 줄을 딱 긋고는

제목만 찾으면 그때부터는 어려울 게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시는 써지지 않았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 대화편 <향연>(196e) , 아가톤의 연설 中 -

플라톤의 오래된  구절도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시인들의 재능이 마냥 부러웠다

이제 시 쓰기를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나태주 시인의 가벼운 이 책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시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맘에 드는 시 몇 편을 골라
종이 반으로 접어 기억해두자 했더니
장마다 금이 죽죽 생겨 책이 입을 못 닫는다

요사이 어두운 것만을 고민했더니
마음이 잔뜩 어둑해졌나 보다
풀꽃들이 숨어 있다고만 생각했다

'보기 흉한 꽃을 보듯 너를 보면 어뜩하냐'
태생적인 삐딱함이 고개를 들다가도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라니 달리 할 말이 있을 리가

꼬마 아이 말하듯 꾸밈없는 글말들 앞에서
이성은 도통 힘을 못 쓴다
토 달던 입, 문을 닫는다

마음이 절로 가볍다
풀꽃이 보인다
네가 보인다



어린 시절 이후로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했던 이유를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읽으며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됐다. 어릴 적엔 하나를 보면 마침표로 끝맺지 않고 물음표를 달고 새로운 것을 찾아 움직였다. 무엇을 보든 궁금증이 생겨 깊게 보고 한참 보고 돌려 보고 마치 꽃을 보듯 자세히 보았던 것이다.


이제 제법 많이 아는 나는 어떤 것을 봐도 놀라는 법이 없다.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시가 써질 리가 없다. 모든 것이 뻔한 세상에 뻔한 사람살이로만 느껴졌기에, 더 이상 나올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 내게 다시 '시'를 가져다준 것은 노작가의 아기자기한 글말들이었다. 그는 시를 통해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 거창함 따위는 없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펴보며 그 순간 느끼는 바를 적을 뿐인데, 아 그것들이 너무나 절묘하다. 내가 절묘함을 느꼈다는 것은 나 역시 그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내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마치 꽃을 보듯, 아름다운 것을 보듯.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그/녀를 보는 마음으로 호흡을 고르고 편견 없는 눈으로 내 세상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보고 싶지 않던 것들도 달리 보인다. 그제야 길게 늘어놓았던 내 글에서 사라져도 될 군더더기들이 보였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거침없이 펜을 굴렸다.


이렇듯 보잘것없는 시를 하나 쓰는 데도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다. 스스로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창조적 활동이 바로 시 읽기/ 시 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시는 우리를 다시 꿈꾸게 한다.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고 다시금 놀라게 한다.


플라톤의 오래된 구절은 틀리지 않았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에서 사랑이란 누군가와의 연애라기보다 사랑을 포함한 모든 창조적 활동의 원천인 에로스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강룡 지음,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29쪽)


연애를 하지 않아 시를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에로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시를 쓰며, 내게 머물렀던 에로스가 앞으로도 내 안에 늘 머물렀으면 싶다.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가지 않아도  꽃 속에서 늘 머무르는 나태주 시인처럼 그렇게 세상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  

다시, 시를 쓴다.


꽃을 보듯 너를 보다 수록
꽃을 보듯 너를 보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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