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없는 세상을 꿈꾸며
지난 5월 17일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년 째 되는 날이었다. 그 날의 기억으로 여전히 쓰라리다. 하나의 사건에 불과한 '그 날'에 왜 그리 의미부여를 하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많다. 그로인해 남성 /여성의 젠더 갈등만 더 심하졌다고 한다. 그러나 강남역 살인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그리 가볍지 않다. 한국 사회의 젠더 부조리를 돌아보게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감수성 부족으로 인해 느끼지 못했던 모든 유/무형의 폭력에 더 예민해지고 더욱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계기가 됐다.
그 날을 기억하며 이 글 또한 쓰게 됐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강간'에 대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나를 뒤 따라와 갑자기 제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게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평생 모르는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던 적도 없고 엉덩이를 만졌던 적도 없다. 엉덩이는커녕, 손을 잡지도 않더라. 어디에서 일하든 여자 상급자가 아들 같아서 그렇다고 풀어진 단추를 채워주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명찰을 달아주지도 않았으며, 어깨를 주무르지도 않았다. 어쩌면 주물러 줬으면 나는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성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경험적 사례(여성의 남성 추행)를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화가 난다고 나에게 욕을 쏟아 부은 적도 없고, 때렸던 적은 더더욱 없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뉴스에서 본 것들이 아니다. 주변에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에게서 들은 얘기이고, 모두 여성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들(여성들)이 성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는 첫째, 그런 피해들을 야기할 만한 상황이나 환경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이런 '불운한' 일들이 이들에게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는 것, 둘째, 내 주변 남자 지인들에게는 비슷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고 물어봐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내 얕은 경험으로 여성이 느끼는 공포가 남성이 느끼는 그것보다 크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멀지 않은 곳에서, 아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경험한 여성 피해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많은 남성들 역시 여성들이 남성에 의한 위협에 더 취약하는 것을 인정해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랜 기간 여행을 다니기는 아무래도 남자들이 편하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잖아?"
지혜야. 밤늦은 시간에는 위험하니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와라.
자기야.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그리고 나 없이 택시 탈 때는 무조건 나한테 전화 걸어. 내가 안 받으면 통화하는 척이라도 하고. 그리고 택시에서 절대로 자면 안 돼!
<내게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고 가르쳐준 건 남성들이었다> 中
http://www.huffingtonpost.kr/choi-jihye/story_b_15719376.html
'강남역 살인사건' 이야기 역시 하지 않을 수 없는데, 6명의 남성을 돌려보내고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 죽인 것을 단순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피해자에게 묻지 않고 죽였으니 '묻지마 사건'이라는 것인가? 이 사건은 피의자에게 분명한 가해표적과 가해이유가 존재했던 여성(젠더) 증오/혐오 범죄이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잘못된 규정이 사건의 본질을 얼마나 흐리는지 알 수 있다.
묻지마 범죄는 피의자와 피해자와의 관계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범죄 자체에 이유가 없이 불특정의 대상을 상대로 행해지는 살인 등의 범죄 행위를 말한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그렇다면 피의자 김 씨는 왜 죽였을까? '강남역 살인사건'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강남역의 피의자 김 씨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식당 보조를 하며 생계를 어렵게 유지했다. 우리 사회의 약자였다. 사회에서 그가 느낀 감정들은 외로움, 불안감, 공포감이었다. 사회적 약자이자, 정신적 병자이기도 했던 그의 이력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범죄의 원인이 곧 '조현병'(정신분열증)이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곧 조현병 환자들을 더 강하게 격리,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 역시 본질을 흐리는 원인분석이다. 국내 범죄심리학 최고전문가인 이수정 교수는 "조현병은 범죄의 유발 요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범죄 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이라고 단정짓는 경우, 실제 다른 환자들이 고통 받는 경우가 생긴다”며 “(특정 병을 범죄에 연관 짓는 행위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병이 악성범죄의 원인이라고 인식되면서 조현병 환자들에게 또 다른 혐오의 화살이 겨눠지고 있다. 잘못된 겨냥이다.
김 씨에게 정신이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분열로 인한 순간적 폭발으로 인한 사건이 아니었다. 김 씨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나름의 합리적 기준과 자발적 의사를 가지고 있었음을 스스로 밝혔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여성들때문이었다. 김 씨는 조사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여직원이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평소 여성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씨는 고등학교 시절 한 여학생이 자신의 길을 막아서 지각한 적 있다거나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자신을 밀치고 지나갔던 기억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한국 사회에서 '루저'였던 그에게 좌절감을 준 주체들은 여성 뿐이었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약자'여야할 여성이 본인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본인의 강함이 여성에게 부정되어 '남자다움'에 상처입은 그 순간을 잊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도태되는 원인 역시 여성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성을 표적으로 삼은 것에 대해 “이러고 있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먼저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개별적인 편견들이 악의적인 망상으로 발전했고 그를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로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사회적 분노를 수월하게 표출하기 위해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을 골랐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인식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사건 방지에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성에게는 더 큰 불안감이 되어 다가온다. 왜 누군가의 사회적 분노를 해소하는데 있어 여성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피해자가 되어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것이 여성들이 강남역에 모여 연대했던 이유이다.
묻지마 살인의 대표적인 사례인 유영철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영철이 범행대상으로 삼은 것도 노인과 젊은 여성이었다. 그는 검거 후 젊은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한 이유에 대해 “여성이 함부로 몸을 굴리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아내와의 불화에서 오는 분노를 모든 여성에게 전가시켰다. 한편 자신의 경제적 비참함에서 비롯된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비교적 윤택한 삶을 누리는 노인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밤늦게 돌아다니는 젊은 여성과 부촌에 거주하는 노인부부가 주요 범행대상임이 알려지자 사회적 불안은 커져갔다. 유영철은 특정범주에 속하는 사람을 잠재적 위험에 빠트림으로써 자신의 불행에 대한 보상을 얻고자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그 특정범주가 매우 단순하게 한정돼 있다. 오로지 여성이었다. 김씨가 남성사회에서는 도저히 자신의 분노를 적절한 방법으로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사회적 약자였음을 드러내는 일면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여성을 위협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스스로에게 입증하려고 했다.
출처: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2022
오늘날 혐오/분노로 인한 범죄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 문제들을 단순한 병리적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이제 멈춰야 한다. 혐오감이 범죄를 낳았다면 그것에 주목하여 왜 그것이 탄생했으며,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 연구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 개인을 강력히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어떤 해결이 되지 못한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사회를 분열시킨다며 입막음하려는 목소리에 여성들은 분노했다. 문제를 직시하자. 특정 성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표적이 될 수 있었던 수 많은 여성들의 공포에 대해 생각해보자. 절박함이 그들을 강남역에 모이게 하고 포스트잇을 꺼내들게 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희생자 분에게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