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합니다
이미 많이 유명한 책들이어서 소개하기가 쑥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책 소개해드리고 함께 더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1. 상실의시대
: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관심 밖인 사회나 시대 그리고 정치 같은 요소와는 담을 쌓고, 오롯이 자신 주변으로 펼쳐지는 가치관, 인간관계, 그리고 사랑에 집중합니다. 일본 운동권 세대 이후인 1980년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규정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오늘날 전세계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민들을 잘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절대적인 것 따위는 없다'와 같은 허무주의를 느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와 같은 삶의 생명력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성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에로티시즘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지만 사람과 사랑에 대한 묘사나 표현이 아주 애절하고 감미로웠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깎아내리기가 어렵습니다.
2.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PPT 잘 꾸미는 법에 대한 글은 많이 올라오는데 정작 발표문 또는 본문을 다듬는 법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PPT를 열심히 꾸미는 이유가 우선 발표에 집중시키기 위함이라면, 그 다음에는 의도대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깔끔하게 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에 본인이 글을 쓸 때 어떤 실수를 주로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은 여러
예시들을 통해 크고 작은 실수를 바로잡아 줍니다. 기본적인 내용을 제대로 익혀 '쓰는 일' 앞에서 기죽지 맙시다.
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선생님이 정치범으로 투옥된 시기에 쓴 편지글을 모은 책입니다.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글은 2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 50세가 넘어 쓴 글로 이어집니다. '감옥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감옥 안에서 아주 날 것의 인간살이를 목격할 수 있었다고 신 선생님은 말합니다. 감옥 안에서 그는 치열하게 생활해보기도, 느긋하게 관조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갈고 닦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0살을 넘겨 성인이 된 후에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스스로를 성찰하기를 게을리 합니다. 하지만 신 선생님의 수양을 바라보다 보면 그 말이 꼭 참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어가 종종 있어 해석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은 신 선생님의 다른 글 '담론'의 2부를 찾아 읽어보면 좋을 듯 싶습니다.
4. 모든 요일의 여행
: 돌이켜보면 완벽한 여행은 없었습니다. 일상에서보다 더 힘겨운 순간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화된 채로 가슴에 담긴 여행지에서의 기억들이 우리를 계속해서 설레게 하고 또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합니다. 그 감정이 소중한 걸 알기에 우리는 다른 여행자의 경험에도 쉽게 무장을 해제하고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중에 많은 여행기가 있지만 무엇을 먹는가, 무엇을 보느냐에 집중하기보다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이 책이 유독 마음에 들었습니다.
5.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 사실 이 책은 읽은 지 꽤 됐는데 다른 책과 달리 후기를 남기지 못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책입니다. 여성주의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건 <이갈리아의 딸들>이란 책이지만 여성주의가 살아있는 학문이라고 느끼게 한 건 이 책이었습니다. 소수의 몰지각한 사람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여성혐오가 여성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남성에게도, 여성 스스로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에 은은히 존재하는 분위기나 경향성을 짚어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여성혐오'는 그 중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많은 까다롭고 예민한 문제임에도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꾸준한 연구와 조사를 바탕으로 훌륭하게 언어화했습니다. 여성주의가 낯선 분에게는 다소 불편한 텍스트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불필요하게 불편함을 조성하는 학문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불필요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문제제기 없이는 대화가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여성주의자들의 노력에 함부로 돌을 던지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