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토남녀만을 예찬하는) 니체는 죽었다

'마흔에 읽는 니체' 북 리뷰

by 글쟁이 결변


흥미를 위해 제목을 다소 호전적으로 적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입니다. 사실 그의 철학 서적은 대부분 압축적이고, 격언이나 경구(아포리즘) 방식으로 적혀 있다보니 읽기가 어려워 중도포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독서모임의 다른 회원님이 잘 골라주신 덕분에 '마흔에 읽는 니체'라는 설명서로 비교적 손쉽게 그의 사상을 쫓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주장하듯이 저자 장재형님이 정리한 ‘니체의 사상’은 초인에 대한 지나친 예찬 위주의 내용을 담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니체의 잠언을 선해 하면서, 다른 흔한 자기계발서들과 차별점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니체 이론의 명과 암을 모두 소개하면서 니체 이론이 현대 사회에 끼친 다양한 영향들을 소개해주었다면, 니체 사상과 문학을 더 깊이있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니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기독교가 지배적이었던 유럽 철학 사상을 망치로 깨부술 만한 급진적인 사상들을 쏟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초인(우버멘쉬)이라는 인간상은 제가 지향하는 인간 유형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인지 니체의 격언을 인용한 켈리 클락슨의 노래인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이라는 노래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 노래의 제목처럼 나를 죽이지 못할 정도의 고통은 나를 더 성장 시킬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난에 대응하고자 했었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즐기고 그 과정 속에 겪는 고통엔 둔감해지자.”고 되뇌었습니다. 니체의 공격적인 문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이야기 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가 당시의 일률적인 철학 기조를 이탈하는 일이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고 상상해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으면서 니체의 사상 및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머리 속에서 왕성히 움직였습니다. 읽는 내내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꿈틀거렸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보니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비판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니체의 사상은 도덕 관념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통해서 이제까지 자신의 삶을 이끌어 왔던 가치를 전복시키자고 주장합니다. (저자와 같은) 니체주의자들은 니체가 기존 도덕 관념들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니체가 기존 도덕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기 위해서" 비판한 것이지, 기존 도덕을 아예 없애기 위해서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생각을 선해해서 생각해보며느 니체는 사람들이 억압적인 도덕 관념에 얽매이기 보다 ‘자기애’ 그리고 '운명애(Amor Fati)'에서 시작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에 몰입하다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무조건적인 이타심나 희생정신은 설명은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니체의 이론에 따르면 추상적 도덕관념들에 대한 순종자들이었던 마더 테레사와 나이팅게일, 그리고 (고문을 견디면서 애국심과 같은 추상적 가치를 지키려 했던)순국선열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지게 됩니다. 저는 비종교인이지만, 이유 없는 나눔과 이음,베풂과 박애정신과 같은 종교의 교리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도 세속적인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자신보다 타인을 앞세우는 희생정신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귀한 가치들에 대한 전파가 종교의 방식이든, 교육의 방식이든 (귀득권의 존속을 위해 때론 악용되더라도) 여전히 중요하게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도덕관념들을 ‘병든 이타심’으로 과소평가하는 니체의 사상은 제게 거부감을 일으켰습니다. 희생과 사랑, 나눔과 배려를 강요하는 문화적 쇠뇌가 과연 부정 되어야만 할 현상인 것인가? 어쩌면 이같은 도덕규범이야 말로 우리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하는 가치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제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인 무규범 사회에서 '도덕규범’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극단적 이기심에 우선 입각해 움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도덕규범에 대한 교육과 전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적 통제가 없는) 상태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문명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맹목적인 도덕규범 숭배가 인간의 개성을 잠식할 수 있다는 비판한다는 니체의 생각에는 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갑답게 하는 도덕관념의 필요성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니체의 이론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니체의 사상은 인간 군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았나?


니체가 예찬하는 인간 유형은 결국 시련에도 쓰러지지 않고 불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초인 또는 strong man입니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니체의 사상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니체는 니체 사후에 있을 나치와 홀로코스트, 인간실험에 대해 긍정한 적도 없고, 긍정할 리가 없는 철학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사상이 후대에 있을 나치 사상의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이처럼 니체의 초인에 대한 예찬은 자칫 ‘약육강식’이 사회의 이상적 상태라는 잘못된 이념의 방어막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만 약 5천만명입니다. 초인 5천만명이 사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저는 왜인지 조금 끔찍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일률적으로 '강함'만을 지향하는 사회이다보니 개성과 다양성은 말살 되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다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강약을 정신력의 강도로 판단하는 세상에서는 다양성이 설 자리가 부족해집니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인간은 초인과 거리가 먼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적으론 강할 수 있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이 나약하다고 평가 받는 이유는 사실 자신보다 남을 우선시하는 압도적인 이타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부정적인 생각에 치우쳐 있거나,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은 초인과 같은 의지만 갖는다면 누구나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기질적 또는 유전적 요인으로 남들보다 유약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테스토스테론’이란 성호르몬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 있어 과감성이나 도전정신들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유전적 성질로 알고 있습니다. 니체의 척도로 볼 때, 테스토스테론 성호르몬이 남들보다 많이 분비되는 이른바 '테토남녀'는 우리 사회에서 초인(우버멘쉬)이라고 칭송 받기에 너무 우월한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한편, 그렇지 못한 이들의 기질은 유약하고 개선해야 될 것처럼 보여지기 쉽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 현실은 니체의 사상과는 조금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인적 리더쉽이 저물고 팔로워십 리더십이 각광받는 시대가 찾아 왔습니다. 사회 공동체를 이끌었던 초인들 중 일부(물론 그들 중 다수가 성공하기도 했지만) 숱한 실패를 경험했고, 새로운 리더들에 대한 선호가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리더들 중에는 초인이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하고 유약한 리더들도 존재합니다. 이런 유형의 리더로는 '런던벵글뮤지엄'의 대표님인 이효정(료)님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니체의 사상 중 초인의 대한 예찬론은 인간 군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삶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여 있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현재 절망스럽고 후회스러운 날이 많다 해도 걱정과 후회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불확실과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이야말로 사실 인간이 태어난 모습 그 자체이고, 걱정과 후회 없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니체의 생각을 잘 이행하는 사람만이 초인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은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니체의 말씀도 결국 다른 종교의 가르침처럼 맹신되어 교조적 방향으로 흘러선 안될 것입니다. 불안과 걱정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을 단순히 개인적 의지의 차원에서 들여다 보면, 불안과 걱정을 만드는 사회적 또는 병리학적 원인들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정신의학과 같은 학문은 ‘걱정’과 같은 취약한 인간의 본질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깊이 연구하고 있고 계속해서 진보해나가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저는 니체의 사상은 인간군상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바라보기에 자칫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와 발전을 방해하는 관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니체의 원문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설명서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저는 이번 독서는 이러한 비판적인 생각들에 잠겨 고민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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