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 봐."
여행을 하다 보면 길 위에서 무수한 인연들과 흩어진다. 방금까지 가장 깊은 내면을 꺼내든 사이와 언제 만날지 모를 기약 없는 안녕을 얘기할 때면, 저마다의 인사말을 갖는다.
방비엥 할리스 사장님은 인연이 닿는다면 또다시 만나자고 말했고, 루앙프라방 호텔 직원은 내년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시작되는 것부터 끝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매번 신기하다. 사실 매듭지으려 한들 인연에 끝이라는 게 있나.
길 위의 인연들 중 남미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된 인연들과는 7년에 접어든다.
지구 정반대 편까지 함께 겪은 사이라서인지 한국의 끝과 끝은 우습다는 듯 자주 만났고, 그 모든 시간이 감히 행복했다.
우리는 실없이 웃었고, 작은 것들에 진지했다.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딪히기도 했고,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며 서로를 사랑했다. 서로가 사랑했기에 서로를 이해했을 수도 있겠다. 거리를 뛰어넘을 만큼 때론 가까웠고 가까운 마음만큼 서로가 멀어져도 괜찮았다. 100을 채우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100을 뛰어넘었다.
그들은 내게 인연에 힘을 많이 쏟는다고 종종 말했다.
그랬던가.
사실 7년이 지난 요즘에야 그 말을 조금씩 실감한다. 모든 인연을 하나하나 이 악물고 움켜쥐었을지 모른다.
이제야 인연을 부여잡는 게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모든 마음이 같지가 않다는 걸 알고선 오히려 나 사용설명서를 들이민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깐 감당하지 못한다면 다가오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온 힘을 다한 사랑이 떠나는 상실을 감당할 용기는 여전히 없다. 내가 사랑을 주면 준 만큼의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다.
글을 쓰고 다시 읽을 때면 남기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덜고 덜어도 너무 많은 것이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이겠지.
인연을 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적당히 힘을 빼야 오히려 알맞은 것들이 많다. 아무리 놓아도 나는 결국 네 옷깃을 붙잡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인연이라면 다시 길 위에서 마주하겠지.
오늘은 이어폰을 꽂지 않고 도시를 거닐었다. 날 것의 소리들이 머문다.
영원을 얘기하지 않아 감히 우리는 영원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