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궁전 구경
5일 권 가격이 몇 달 전의 두 배?
아침에 과일과 콘프레이크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근무를 나섰다. 그러나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 소피아 성당 앞에 기다리는 줄이 길어서 망설임 없이 궁전으로 갔다. 그런데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다. 광민이 궁전과 소피아 성당만 입장하는 것으로 하자고 했으나 난 왠지 5일권을 사서 여유 있게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입장료가 워낙 값이 비싸졌고 (1년 사이 세배 정도) 5일권도 잘츠부르크보다 비싸서 많이 망설여지긴 했지만 어차피 호텔도 안 가서 주거비가 줄어드니 좀 써도 괜찮겠다 싶었다.
궁전에 가는 길에 예쁜 물건을 많이 파는 화려한 가게들이 많다. 그중에서 2층 창가에 전망이 좋아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려 보기로 했다. 아래층에는 한 곳에서 판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화려한 곳이라 좀 비쌀 거라 예상했는데 메뉴판을 보니 의외로 싸다. 터키 차는 4리라 터키 커피는 9리라다. ( 그리스나 터키뿐만 아니라 유럽에선 차 가격이 1유로 내외로 다른 물가에 비해 매우 싼 편이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스탄불 여행 계획을 의논했다.
현지 물가로 빵 한 개에 1리라이고 한 끼 식사가 될 케밥이나 샌드위치 종류가 5~7리라인데 패스 가격이 185리라면 너무 비싸다. 몇 달 전만 해도 85리라에서 125리라로 올라 사기를 망설였다는 불로거의 글도 있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패스가 너무 유용했고, 아테네에서 아쉬웠다며 내가 무리해서 5일 권을 사자고 했다. (그러나 사실 지나고 보니 광민의 판단이 옳았다. 그래도 고고학 박물관을 비롯해서 구석구석 볼 수 있었으니까 위로를 삼아야지.) 대신 난 다른 비용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 시가의 시장엔 기본 식재료가 싸서 잘하면 잘 먹으면서도 돈을 많이 아낄 수 있다. 하지만 광민은 부탄가스를 구입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128리라를 쓰게 만들었다. 라면이 30리라인데 도미 두부찜이라는 괜찮은 요리가 55리라 인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같은 값의 김치찌개는 돼지고기가 귀한 지역이라서 인지 가끔씩 보이는 정도에 건더기도 허술하다. 서비스 비용과 물까지 계산해서 128리라가 청구되었다. 서비스 비용과 물 값이면 둘이서 간단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이 집에서 부탄가스를 구입하는 곳을 알아내어 사던가 부탁해서 구하려고 사장님을 만났고, 우리 얘기를 듣더니 지금 가게에 있는 것 중에 일부를 우리에게 파시겠단다. 12개를 포장해서 가져왔는데 그 값이 385리라 거의 10만 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그리스에서 우리가 샀던 가격의 세 배가 된다. 우리는 미안했지만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그 돈이면 음식을 사 먹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궁전 구경
톱카프 궁전이란 이름은 궁전 대포라는 뜻의 톱(top)과 문이라는 뜻의 카프(kapi)가 만나 만들어진 이름이다. 대 제국을 정복한 정복자에게 아주 걸맞은 이름이다. 신의 은총과 허락으로 제국을 정복했다는 내용이 궁정의 제1 정문인 황제의 문에 새겨져 있다. 광민은 궁 안에 들어서서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며 실망스러워한다. 그러나 난 규모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비가 오고 있는 날씨에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정신이 없다.
왕궁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건 보물관의 칼들. 화려의 극치였다. 참 이상하게도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일수록 그 칼날과 칼 끝이 더욱 잔인하고 무서워 보였다. 신의 가호 속에 전혀 양심의 가책 없이 휘두르는 칼, 그중에서도 수많은 칼들을 이끌었던 지도자의 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교한 시계들. 그들이 얼마나 정밀한 계산에 능통했는지 보여주는 세밀함에 놀라웠다. 화려하고 정교한 황제의 보물관에 비해 일상 공간은 생각보다 소박한 분위기다. 대 제국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대 제국의 주인이 되었지만 자만하지 않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는 생각이 있었을까?
인상적인 건물은 드넓은 주방이다. 왕궁의 긴 벽을 따라 둥근 지붕들이 이어져 신기하게 보이는 주방은 몇 만 명의 식사를 준비하고 연회를 베풀고 황실의 식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나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왕은 요리사가 같은 음식을 만들어 오면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사들이 죽을힘을 다해 새로운 요리들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면서 뛰어난 요리를 만들게 되었고, 프랑스의 왕국에서 데려가고 싶어 했을 정도로 요리 솜씨가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리스에 비해서도 절임류나 소스, 치즈의 종류가 많아 보이고 무엇보다 이 동네는 대용량이다.
이 왕궁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전망이다. 동로마를 정복하고 이 곳에 왕궁을 지은 이유가 바로 전망이 좋아서였다고 한다. 식당 테라스가 있는 제4 정원에 가면 구 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로스 해협, 아드리아 해 골든 홀이 합류하는 지점이 한눈에 보인다.
5리라짜리 닭고기 밥 도시락
돌아오는 길에 근처 가스 판매점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니 먼지 묻은 부탄가스 한 개가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니 개당 25리라라고 한다. 그것도 비싸서 결국 사진 않았지만 한식집보다는 싼 가격이다. 사장님이 여행자인 우리에게 소매상보다 개당 7리라나 비싸게 팔려고 한 것이다. 참 씁쓸하다. 여행 다니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는 온갖 친절을 다 받았는데 같은 나라 사람 한데 바가지를 쓸 뻔했다는 것이. 이국 땅에 사는 게 많이 힘드셨을까? 나이도 우리보다 많아 보이던데 아직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그분이 참 안쓰럽다.
돌아오는 길에 길에 병아리콩 밥에 닭고기를 얹어주는 5리라짜리 도시락을 샀다. 얼마나 맛있던지. 고기가 큼직한 게 11조각이나 들어있고 콩도 꽤 많이 들어 있었다. 둘이서 과일, 와인과 함께 먹으니 도시락 한 개로 훌륭한 한 끼가 해결되었다.
이후 우린 자주 도시락을 먹곤 했는데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금방 동이 났다. 이때 맛을 알게 된 병아리 콩은 터키를 떠날 때까지 거의 매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