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행의 예고편.

쿰루카산의 로디아 폴리스와 해안가 고대도시 올림포스

터키의 안탈리아는 겨울에 우기가 집중되어 비가 오는 날이 많았지만 그동안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하며 몸을 회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틈틈이 걷기 좋은 날이면 깊은 계곡, 주변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산, 오래된 유적지를 다녔고, 우리의 캠핑카도 수리하고 내 이도 치료하고, 새로운 음식재료에 도전하면서 안탈리아 사람처럼 살아 볼 수도 있었다. 어느덧 1월의 끝무렵이 되자 개인 날이 많아지고 광민이 움직이고 싶어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긴 여행을 위한 기지개를 켤 때가 다가온 것이다.


2월 1일 금요일 안탈리아를 벗어 난 날


안탈리아에 들어와 처음으로 장거리 주행을 하였다.


안탈리아에서 서쪽으로 100킬로 꼬불꼬불 산길을 손에 땀을 쥐고 도착한 로디아 폴리스는 복원공사와 주변의 편의 시설이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산 길을 오느라 힘들었지만 폴리스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훌륭했다. 바다와 시내, 그리고 비닐하우스와 오렌지 농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멀리 설산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이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풍경들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본다.


폴리스의 꼭대기에는 내려다 보기 아찔할 정도로 깊어 보이는 커다란 지하 시설이 두 개 가 눈에 띄는데 광민이 아슬아슬하게 가까이 다가가서 내 속을 태운다. 몇 천 년 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다시 깊이 땅을 팠어야 했을까? 물탱크가 필요했던 걸까? 유적지를 다닐 때마다 지금보다 훨씬 힘든 삶을 살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복원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원형극장은 우리의 독무대. 맘껏 노래 부르고 신나게 춤추다 보니 출출하다. 주변에 음식을 파는 곳이 아무 데도 없지만 우리는 식당을 가지고 다닌다. 오랜만에 차 안에서 먹는 점심이 꿀맛이다.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캠핑카 여행의 매력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한다.


두 번째 간 곳은 올림포스

(그리스와 터키는 서로 신화 속의 올림포스 산이 자신의 나라에 있다고 다투고 있다고 한다.)

안탈리아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이번엔 바닷가라고 해서 안심했다가 정말 큰 코 다쳤다.


뜨거운 햇살을 달리다 시원한 개울물이 흐르는 숲 속이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오랜만에 꼬불꼬불 산길을 마음을 조이며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잠시 산책이나 하자는 광민의 말에 잠시 바람이나 쏘이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물살이 제법 빠른 개울에 허술하게 놓인 다리를 지나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넓은 길이 나타나더니 눈앞에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가벼운 산책이라던 광민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감상도 하지 않고 자꾸만 앞으로 간다.


오렌지 쓰레기 더미에다 심지어 오랜지가 개울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풍경까지 신기해하며 컨디션이 회복될 즈음 드디어 유적지가 나타났다.(처음부터 유적지에 가자고 했으면 아직도 차 안에서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적지는 해안가에 있다고 했는데 아직 바다는 보이지도 않는다. 입장료는 한 사람당 오렌지 20킬로.


이곳은 유적지가 아니라 스릴 넘치는 놀이공원이었다. 아슬아슬한 징검다리를 몇 개나 건넜고 물을 피해 곡예사처럼 좁은 난간을 걸어야 했다. 그러다 드디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장면을 만났다. 물오리 떼가 바로 바다 앞 강물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강의 양쪽을 이었던 다리가 2천 년 넘게 버틴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새로운 문명이 파도를 타고 들어오고 다리를 넘어서 이어졌을 바로 그 다리다.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지점은 사나운 물살이 조금 무섭다. 낚싯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장화 바지를 입고 물살을 헤치고 다닌다. 해변은 강물로 인해 두 개로 나뉘어 있는데 작고 예쁜 자갈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소꿉장난 하는 아이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인근의 주민으로 보였다. 이들과 함께 강과 바다가 만나는 특별한 풍경을 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몇 군데 유적지를 돌아보려 시도하 했지만 길이 너무 험해서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고 어렵게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가야만 했다. 밖에 관리인이 4명이나 있으면서도 전혀 정비를 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위험한 고비가 많았던지라 불만을 말하고 입장료를 되돌려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까지 돌아오는 힘든 길이 끝나고 만세를 불렀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밤에 잘 때 오줌 쌀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며 차에 올랐다. 이제는 아톰과 함께 빨리 집으로 가는 평화로운 길만 남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 앞에서 갑자기 길이 없어져 버렸다. 개울로 변해버린 도로의 한쪽은 아슬아슬하게 강물로 이어지는 낭떠러지다. 오늘 있었던 모든 난관을 더하고 곱해도 모자라 정신줄 놓을 뻔할 만큼 무서웠다. 깊진 않지만 물살이 세서 커다란 개울 한가운데를 지날 쯤엔 차가 밀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곳을 빠져나오자 광민이 말한다. "겨울에만 잠깐 비가 오고 다른 계절엔 아무 불편함이 없으니 어떤 시설을 하거나 관리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이토록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원인 분석을 하는 광민 박사님!) 그러고 보니 그리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터키 입장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에 대한 애착이 훨씬 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 터키인들의 원래 조상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의 혹은 터키 땅의 먼 조상이 누구였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여행길엔 생각지 않은 어려움이 항상 뒤따르기 마련. 그리고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나고.

우리의 두 번째 여행의 화려한 예고편이 시작되었다.



안탈리아 떠나기


우리는 여행기를 쓰면서 서서히 새로운 출발 준비를 마치고 2월 20일 안탈리아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안탈리아 주변엔 아름다운 유적들이 아주 많아서 천천히 북상하기에 좋았다.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오랜만에 시내에 보다폰을 충전하러 가서 외식도 하고 땅콩도 샀다. 1킬로에 18리라인데 슈퍼보다 훨씬 싸다. 게다가 소금에 절이지 않은 것을 살 수 있었는데 정말 맛있다. 우리는 10리라어치를 샀는데 아저씨의 손이 정확하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샀으면 좋겠다. 보다폰은 앞으로 여행 일정이 얼마 안 남아 한 사람만 사려고 했는데 40리라 밖에 안 해서 둘 다 충전했다.


오늘까지 그리스 여행기를 마무리지었다. 미흡한 점이 아주 많지만 일단 쓰고 싶은 내용을 다 썼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동안 내 눈과 귀를 지배했던 지배자로부터 점점 벗어나는 기분이다.


요즘 친구가 소개해준 '신화의 힘 대담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책으로 읽을 때도 아주 감동받았는데 화면도 나오고 광민과 함께 보니 더 좋은 것 같다.


1회에선 용의 이야기 - 내 안에 용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

2회에선 고래 위에 앉아서 피라미를 낚시하는 이야기- 내 안에 고래, 잘 들여다 보고 그 고래가 춤출 수 있게 하고 싶다


2019년 2월 17일 또다시 출발 D-day 3일 전


이제 저녁이니 이틀 전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제부터 글 쓰는 일을 중단하고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 광민은 차 안을 정비하고 난 요리를 하고 있다. 사실 광민은 차 안에 새로운 수납 시스템을 만든다고 며칠 전부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납공간들에 있었던 엄청난 곰팡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민은 커튼과 발 매트도 빨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식탁보까지 모두 빨고 소독했다. 캠핑카는 여름보다 겨울에 바깥 기온과 차이 때문에 곰팡이에 잘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터키에 와서 장기간 사용을 안 하니 상태가 심해진 것 같다. 그래도 이젠 짐을 가져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요리도 당분간 여행에서는 걱정이 없을 정도로 준비되었다. 이제 다시 떠나 기 전까지 너무 긴장하지 말고 최대한 여유 있게 이 시간을 즐기고 싶다. 여행을 하다 2박 3일 숙소에서 쉬는 것은 얼마나 꿀맛인가!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여행 준비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시 지금을 즐기자.


2월 20일 새로운 출발


어제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보름달을 보았다. 전 날 저녁 작은 그릇 두 개를 깨고, 그거랑 비슷한 그릇을 사다 놓으려고 쇼핑몰에 갔다가 허탕 치고 심란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민이 보름달을 가리키며 보라고 했다. 갑자기 환해지는 마음. 친구들 카톡 덕분에 어제가 보름인 줄 알았지만 깨진 그릇 생각하느라고 하늘을 볼 생각을 못했었다.


지금을 즐기자고 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여행을 다시 시작한 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차 안의 곰팡이도 발견할 정도로 세심해지고 철이 들은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본격적으로 다시 이삿짐을 꾸리는 며칠 동안 화창한 날씨가 한몫하고 있다. 안탈리아에서 내릴 거의 모든 비가 끝나고 있나 보다. 어제 일찍 저녁을 먹으며 광민과 의논해서 아침 요리는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아주 잘한 일이었다. 너무 많은 준비도 욕심이고 그 욕심을 부리느라 안탈리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에 허둥대고 싶지 않았다. 저녁엔 광민과 영화도 보고 편하게 잠들었다. 아주 깊은 잠을 잔 것 같지는 않은데 긴장이 됐는지 아침에 몸이 가쁜하게 일어나 졌다. 유난히 아침해가 예쁜 날이다. 간단하지만 여유 있는 식사를 마치고 스텝들과 사진도 찍었다.

IMG_3886.jpg
20190209_123620.jpg
IMG_3885.jpg
내가 살아본 가장 큰 아파트. 친절하고 부지런한 주인장과 스탭 덕분에 안전하고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안탈리아의 잊지 못할 풍경들


케이블카 운행하는 날은 외출하기 좋은 날

부엌과 거실에서는 케이블카를 운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이 불거나 대기가 불안정한 날은 운행이 정지되기 때문에 우리는 날씨 예보 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케이블카가 운행되면 우리의 외출도 오케이


개들과 고양이들의 천국

안탈리아 겨울은 멀리 설산과 가까이 오렌지 열매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기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겨울 내내 달콤한 오렌지들을 실컷 먹을 수 있다. 계곡 사이를 걷다 보면 낙엽처럼 떨어진 신선한 오렌지들이나, 혹은 거센 겨울 비바람에 오렌지를 잔뜩 매단 채 꺾여서 계곡 사이로 날아온 오렌지 나뭇가지에서 맛있는 오렌지를 공짜로 먹기도 했다. 이렇게 한 겨울에도 먹을 것이 지천에 있는 안탈리아는 개와 고양이들에게도 천국인 것 같다.

어딜 가도 느긋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커다란 개들을 마주친다. 그리고 그 개들이 이탈리아 그리스 이스탄불에 비해 행복해 보인다. 사람들이 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이곳으로 모여들었듯이 개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한가운데서 편히 잠든 개들, 공원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있는 개들, 고양이들은 한 술 더 떠서 사람들이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에 버젓이 앉아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고양이를 쳐다보고 고양이는 당연하다는 듯 그 눈빛을 받아들인다.(처음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 고양이는 여전히 그 테이블에 남아 있었고, 산책길에서 그런 모습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참 신기했다.) 여유가 있다.


맛있고 값싼 오렌지가 썩어가는 냄새

우리가 떠날 때쯤부터 이제 오렌지들이 썩어가는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들도 이제 조금씩 싱싱한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오렌지를 아직 수확하지 않는 농장들도 있다. 오렌지가 없는 안탈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캠핑 공원

유럽 여행 내내 크고 아름다운 공원들을 만났지만 안탈리아처럼 바닷가로 바로 이어지면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캠핑 시설이 곳곳에 많이 마련되어 있는 공원은 없는 것 같다. 소년들이 직접 고기를 굽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그릇에 각종 양념을 넣어 맛있게 요리하는 걸 보면 캠핑에 익숙한 모양이다. 직접 놀 수 있게 만들어진 캠핑시설이 공원을 훨씬 더 여유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기다란 도시

해안가를 따라 도시가 기다랗게 뻗어 있고 자전거 도로와 공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캠핑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도 있고 화장실 시설도 말끔하다. 이렇게 무료로 정박하기 좋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다. 안탈리아에 들어왔을 때는 저 자전거 도로에서 매일 자전거 연습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었는데...


동양인 관광객이 드물어요

안탈리아에는 관광객이 넘쳐난다. 그러나 동양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도 주로 시내의 구도심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지에서 만날 수 있고 대부분은 유럽 쪽에서 온 관광객들로 보인다. 우리 숙소 주변은 주로 가족단위의 내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시내에 비해 케이블카 탑승장을 비롯하여 외식 물가가 아주 저렴하다. 진작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자주 이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안탈리아의 커피나 티 아이스크림 피자 등을 즐겼지만 전통음식은 별로 즐기지 못했다. 파묵칼레에서도 느꼈다시피 터키 음식이 왠지 아주 새로운 느낌이 없이 결국 케밥의 일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여행을 간다면 커다란 장작이 훨훨 타오르는 그곳에서 멋진 식사를 꼭 해 보고 싶을 것 같다.


IMG_3280.jpg 안탈리아에서 맞은 새해
20190111_155045.jpg
20190106_115229.jpg
20190106_110326.jpg
뛰어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


20190106_113601.jpg
20190106_115630.jpg
20190106_115509.jpg
20190107_114915.jpg
20190107_130831.jpg
20190107_120708.jpg
20190109_114400.jpg
20190110_173019.jpg
IMG_3551.jpg
20190119_151934.jpg
20190119_160400.jpg
IMG_3382.jpg
IMG_3863.jpg
IMG_3386.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뽑을까? 때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