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 일상 3
러시아를 지나 본격 여행이 시작되면서 내 몸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찾아왔다. 오른쪽 다리는 절며 다닐 정도로 통증이 심했고, 더 괴로운 것은 치통이었다. 터키에 들어오면 발치를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신경치료의 고통으로 우리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을 나기 위해 도착한 터키 남쪽 해안 안탈리아에서 치과에 가는 것을 자꾸 미루는 사이 어느덧 치통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 다시 여행을 시작해야 될 때가 가까워졌는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를 뽑아야 하나 때워야 하나?
1월 28일
월요일 '우연'이 데려다준 '운명'의 치과
며칠 전부터 치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치통은 없으니 이를 뺄 필요는 없지만 음식을 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혹시 지금의 평화로움을 깨버리는 고통이 찾아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충치 환자가 넘쳐난다는 터키 치과 의사의 실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여 후기가 좋은 병원을 골라놨었는데 막상 오늘 가기 전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광민과 다시 검색한 병원에 가보기로 하고 나섰는데 정작 버스에서 내려서는 구글 지도가 안 통한다. 결국 전혀 계획과는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운명의 병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 정거장 전에 보았던 외관이 좀 더 산뜻한 곳으로 가자고 광민이 말했지만, 난 빛바랜 광고사진이 붙어있는 이 병원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관이 깨끗하다는 것은 새로 개원했을 가능성이 많고 경험 부족의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반면 빛바랜 광고 사진은 그만큼의 세월과 경험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층에 있는 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면에 보이는 카페를 돌아가니 커다란 아치 모양을 한 입구가 나온다. 그러나 정작 그 안으로 들어서니 닫힌 쇠창살 문이 우릴 당황하게 만들어 잠시 헤맸다. 손으로 살짝 밀어도 열리는 문이었는데 굵직한 쇠창살을 보고 닫혔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이곳은 따뜻한 남쪽인데도 묵직하고 투박한 러시아 풍의 문이 신기하다. 러시아에서도 많이 경험했지만 이런 문들을 보면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투박한 문과는 대조적으로 실내는 아주 깨끗하고 화려했다. 그리고 그 실내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일회용 덧신을 신도록 되어있다. 위생적인 느낌이 좋으면서도 쓰레기가 걱정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가 외국인인 것을 확인하고 영어가 되는 직원이 나와 응접실로 안내해 주었다. 노란 소파와 꽃무늬 소파들에 천장까지 화사한 그림이 가득하다.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에 일단 마음이 편해졌다. 그곳에서 접수 카드를 만들고 잠시 후 의사들이 진단을 하는 곳에 갔다. 의사는 나의 얘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 보자고 한다.
그 옆 방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방사능에 몸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두꺼운 덮개들로 내 몸을 감쌌다. 촬영이 끝나고 모니터로 나의 치아 사진을 보면서 나의 설명을 들은 의사가 적절한 치료 단계와 치료 비용을 말해 주는데 서두르지 않고 통역하는 직원을 통해 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통역 직원은 마쟌이란 이름의 소녀였는데 방탄 소년과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서 한국어 공부를 해 '안녕하세요'를 아주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치과 치료를 앞에 두고 신경이 예민해진 내가 편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마쟌에게 한국에 모면 초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치료는 의사가 아닌 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보조직원 한 명과 진행하였다. 1차로 치석 제거를 했는데 고통의 시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긴장으로 움츠려 드는 몸에 계속 호흡을 불어넣어 릴랙스를 하려고 애썼다. 거의 다 끝났다는 마잔의 반가운 말이 있은 뒤에도 여러 가지 단계의 클리닝 작업이 이어졌다. 작은 도구들과 약들이 눈 앞에서 몇 가지 왔다 갔다 하고 잠시 후에 이에 무언가를 넣고 메운다.
2시간 후에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혹시 불편하면 다시 오라고 한다, 지금 때운 곳을 좀 더 낮춰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저녁을 먹을 때만 해도 마취가 덜 풀린 상태였는데 지금은 마취가 거의 풀린 기분이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걱정했던 치통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1년 5월. 치료를 받은 지 2년 반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 이상 없이 음식을 잘 씹고 있다. 이를 뽑지 않고도 한 번의 치료로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뿐이다. 당시 치료비용이 500리라(현재 환율로 6만 7천 원정도)였으니 오렌지 500킬로 값이다.그래도 보험 없이 이정도면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다.그래서 터키 치과는 터키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