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에 먹은 수박 이야기
2021년 7월11일 초복 날
이거 썩었는데,,, 광민이 수박 밑동을 보여준다. 엊그제 방송에 보도될 정도로 심한 폭우가 내렸어도 잘 견디던 놈이다. 물에 조금 잠겼었지만 내가 빨리 짚을 깔아서 돋아 주었다. 흙탕물을 씻겨주려 그놈을 들었을 때 어찌나 묵직하던지 참 흐뭇했던 게 바로 어제였다.
우리 부부는 올봄 날이 따스해질 무렵 밭에다 여러 가지 야채를 심었다. 그중에서 자라는 모습이 가장 신기하고 재밌는 녀석이 복수박이었다. 처음에 실패하자 땅이 의심스러웠지만 두 번째 모종을 다시 사다 심었다. 잎이 자라나기 시작하던 어느 날 엄지 손가락 만한 수박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것이 다음날 주먹만 해졌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해서 아침저녁으로 수박 열매 찾기를 했다. 바로 옆에 참외밭이 있지만 참외는 순만 많고 도무지 열매가 잘 보이지 않았다. 따가운 순을 뒤지며 간신히 찾은 열매도 커가는 속도가 수박에 비해 너무 느렸다.
수박밭은 매일 다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생긴 열매보다 며칠이나 뒤늦게 생긴 놈이 검은 줄도 선명하고 훨씬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신기했고, 큼직한 풍선들이 며칠 사이에 10개나 생겨서 너무 신났었다. 그 사이 참외 밭도 참외들을 숨겨놓고 있었지만 순이 따가워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뉴스에 우리 면이 나올 정도로 폭우가 계속 쏟아졌다. 그 비에 우리 텃밭의 수박도 힘들었나 보다. 내일부터 비가 개이면 며칠 동안 잘 익혀서 주말에 이웃들과 나눠먹으려고 했었는데 어제까지 멀쩡했던 녀석이 하룻사이에 밑이 썩어 버렸다. 수박을 버리고 온 광민이 이번엔 우리 수박 밭에서 가장 크고 싱싱하게 자라던 놈을 따자고 한다. 망설여졌지만 하루 만에 썩는 모습을 봤으니 광민을 말릴 수도 없었다. 냉장고에 넣고 후숙을 시키기로 했다.
저녁 산책을 나오셨던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들어오는데 광민이 수박을 다시 들고 나온다. 왜 그러냐고 묻자 반 자른 수박을 보여주는데 속이 하얗다. 혹시 속이 썩었을까 봐 잘라 보았다고 한다. 난 광민에게 수박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안 익은 수박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아예 속이 붉은 빛깔 전혀 없이 하얗게 안 익은 수박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안 익은 수박을 먹으면 탈이 날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먹어보기로 했다. 가운데 부분을 조금 파서 먹어보니 꽤 단맛이 난다. 길게 두 쪽 잘라서 먹고 반통은 나물을 하려고 껍질을 벗겨 채 썰어서 소금에 절여 놓았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양념하기에 알맞게 절여져 있을 것이다. 오늘이 초복이니 복수박 요리하기 좋은 날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던 기특한 복수박, 맛있게 요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