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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May 30. 2022

 오페라와 국수

오스트리아 빈에서

극장을 나오기  극장의 야외 휴게실에서  쉬었는데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도 사람들이 움직일 생각들을 안한다. 다들 공연에 지친 얼굴들이다. 우리는 3유로  냈으므로 가볍게 공연장을 떠날  있었다.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오스트리아 이틀 째. 오스트리아 말 공원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의 빈 근교에 있는 말 공원이다. 어제 아침에 슬로바키아에서 나와 오스트리아에 들어왔다. 작년 가을에 잘츠부르크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모차르트가 그토록 갈망했던 '빈'이 궁금했던 차에 함께 러시아를 횡단했던 피아노과 출신 별이님이 강력하게 빈 오케스트라 감상을 권하셨다. 탈린이나 라트비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빈에선 얼마나 더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결국 우리는 여행 경로를 대폭 수정하여 다시 오스트리아로 오게 되었다.


그동안 오스트리아 비넷이 20센트 올라서 9유로 20센트. 그런데 현금으로만 결재가 가능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같은 선진국에서 현금결제만 가능하다는 게 참 이상하다. 지난번 유심을 살 때도 현금만 가능했었다. 그래도 잘 사는 나라답게 간이 휴게소에 마련된 화장실에서도 더운물이 나온다.


오늘은 쇤부른 궁정과 훔베르트 바서 건축물 그리고 국립오페라 하우스 공연을 보기로 했는데 내가 일정을 짜기로 하였다. 쇤부른 궁정과 훔베르트 바서 건축물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먼저 쇤부른 궁전에 갔다가 오페라 하우스에 가고, 훔배르트 바서 건축물은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일정을 짜고 난 후 광민은 잠시 쉰다며 잠이 들었고 난 그동안 밀린 일기를 쓰고 있다. 출발이 늦어지긴 했지만 마음이 뿌듯하다.


공원 입구에서 버스를 타는 대신 산책 겸 공원을 가로질러가기로  했다. 훨씬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가로수가 양쪽으로 늘어선 넓은 길이 말 이 다니는 흙길이다. 가운데 말이 다니는 길을 중심으로 한 쪽은 잔디가 잘 다듬어진 공원이고 다른 한쪽은 오솔길이 가끔씩 나있는 자연 숲의 상태 그대로의 공원이다.  넘어질까 위험해서 인지 썩어서 인지 베어놓은 큰 나무들이 드문드문 누운 채 있는 게 퍽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조깅을 하는 사람, 지붕 달린 네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가족들, 산책하는 노인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 , 다들 싱그러운 햇살을 받아 기분 좋은 표정이다.



공원 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버스는 바로 지하철로 연계되어서 비엔나 시내까지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엔 버스 티켓 판매기가 없어서 버스에 무임승차해야 했고 지하철 역에서 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지하철 역 이름은 도나우도리에나인데 으로 바로 옆 도나우 강이 흐르고 있어서 도나우 강변역이라고 멋대로 이름을 붙였다.


4월 19일 금요일


말똥 주머니

궁전 앞 분수 근처에서 말똥 냄새. 말이 오줌 누는 장면을 보았다. 한 마리의 말이 누는 오줌은 거의 강을 이뤘다.  말 똥주머니도 처음 보았다. 똥은 주머니에 감출 수 있으나 냄새는 감춰지지 않는다. 말이 주된 교통수단이었을 당시는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악취가 났을 것이다. 그 악취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궁전엔 향기로운 꽃냄새가 필요했으리라.



3유로짜리 오페라 공연과 7유로짜리 국수


어제 골든홀에서 스탠딩 감상을 경험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표를 구하는 과정이 좀 어렵기는 했지만 오늘의 공연 환경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제는 빈 음악협회에서 바로 살 수 있었지만 오늘은 상대적으로 훨씬 싼 표라 그런지 건물의 뒤 쪽 아주 찾기 힘든 곳으로 가야 했다). 극장 앞에서 30유로에 좌석을 살 수 있다는 판매원들이 있었지만 우린 아예 관심이 없었다.  3유로에 입장할 수 있는 스탠딩 감상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적당한 곳에 앉을 수도 있다.) 마침  서둘러 가는 사람들과 표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여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아무런 표시도 없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안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고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표를 살 수 있었다. 짐을 맡기는 곳도 어제와 달리 무료이다. 부자들이 베풀어 준 품위 넘치는 배려다. 극장 안에 좋은 스탠딩 자리에는 자신의 옷을 묶어 둔 사람들 덕분에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광민이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휠체어 석이었다.  결국 옆으로 아래로 또 뒤로 이동당해야 했지만 그래도 무대를 보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영어자막도 잘 볼 수 있는 자리에서 감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드디어 막이 올려지고 우리의 예상대로 어제 보다 훨씬 대규모의 교향악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악기들의 소리는  높고 넓은 돔 천장에 공명되어 아주 장엄하고 화려하게 우리의 귀를 울리고 온 몸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무대는 아주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었지만 조명의 빛에 맞춰 음악을 감상하기에 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 이어지자 우리는 점점 지쳤다. 전체가 다섯 시간 공연인데 '1막 한 시간 반'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스토리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그리고 무겁다. 속도와 무게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영어 지막은 문어체 글에 생동감이 전혀 없다. 자막 읽기가 피곤을 더 가중시키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내 앞 쪽에 두 모녀가 계단으로 나가 앉는다. 내가 좀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앉아서 쉬며 광민에게도 쉬자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쉬지 않는다. 어제 모차르트 공연에서 내 다리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오히려 힘이 났는데 이 공연은 훨씬 좋은 환경인데도 힘이 더 든다. 너무 재밌어서 5시간 공연을 다 보고 싶어지면 광민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고민했었던 게 우습다.


결국 내가 먼저 중간에 나가자고 졸랐다. 쉬지 못하고 계속 서있는 광민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나는 가끔씩 앉아서 음악 감상을 하며 배우의 목소리를 따라 속으로 독일어 자막을 함께 읽는 놀이라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시종일관 무겁고 느린 공연 1막이 끝나자 우리는 아주 후련하게 나머지 공연을 포기할 수 있었다.


 문 앞에 소파에 앉아 쉬며 다른 사람들이 짐을 찾아 많이 떠나가길 기다렸다. 기운을 조금 다시 차린 후 우린 다시 극장에 들어가 기념촬영도 하고 극장 여기저기 구경도 다녔다. 극장을 나오기 전 극장의 야외 휴게실에서 좀 쉬었는데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도 사람들이 움직일 생각들을 안한다. 다들 공연에 지친 얼굴들이다.


우리는 3유로 만 냈으므로 가볍게 공연장을 떠날 수 있었다. 수업시간처럼 다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좀 안돼 보인다. 비싼 표를 산 사람일수록 더 자리를 떠나기 어려울 것이다. 3유로를 낸 우리는 아주 자유롭게 지겨운 극장을 떠나올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리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국숫집을 봐 두었었다. 공연 전에 먹고 오려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한 시간 후에 가기로 했던 곳이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걱정이 되었는데 아직 문이 열려 있었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광민은 쇠고기 국수 나는 두부국수를 주문했는데 둘 다 아주 풍부하고 다양한 야채를 넣어서 국물 맛이 환상이다. 지루하고 힘든 공연을 보느라 지쳤던 몸에 완전 회복을 주는 맛이다. 그릇을 완전히 비우는 사이 가게도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나 보다.


맛있는 국수에 지루한 공연이 아니라 지루한 공연에 맛있는 국수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완전 행운의 날이다.



돌이켜 보면 이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고,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일은 바로 맛있는 국수를 먹은 일이었다.

이 여행 이후로 나는 야채 육수를 만드는 달인이 되었다. 사실은 그날 비로소 야채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훔베르트 바서의 건축물은 자칫 밋밋할 뻔했던  여행에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기대가 적을 수록 보너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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