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기
독일 여행 2019년 4월 20일~ 5월 3일, 7월 5일~7월 7일, 7월 26일~7월 31일
우리가 노르웨이에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을 무렵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 한 복판은 극심한 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한여름 더위가 조금 기승을 누그러뜨릴 무렵 우리는 다시 한번 독일로 들어오게 되었다. 독일에서 배로 차를 보내고 나머지 여행을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유럽 대륙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서 고속도로를 여러 번 지나게 된다. 게다가 지난번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를 갈 때도 캠핑장에 들어간 적이 있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여행의 마무리 시점인 만큼 우리의 경험도 풍부해졌고 캠핑 기반 시설이 좋은 독일이니 정말 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역시 위기는 평온한 순간에 어김없이 찾아오곤 한다.
유심칩을 끼워도 전화가 안돼요.
캠핑카 여행 마무리를 일주일 남짓 남기고 유심칩 만료가 되었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산 유심칩이 어째 개통이 되지 않는다.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 보니 우체국에 가서 개통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시골마을의 우체국 직원은 유심칩을 개통하러 온 외국인을 처음 보는 듯했고 방법을 알지 못했다. 휴대폰 매장을 찾아 직원에게 물어보니 독일에서는 보안 문제로 거주자 등록이 돼있는 사람이 보증을 해야만 전화를 개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깜깜이가 되었다. 다행히 미리 다운로드하여 놓은 정보가 있어 예정된 여행도 하고 캠핑카를 보내 줄 선박회사 까지 무사히 갔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선박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전화를 개통하게 되었는데 영상통화로 그 직원은 얼굴인식까지 해가며 인증을 했다.
함부르크 공항에서
우여곡절 끝에 배를 보내고 포르투갈에 가기 위해 공항에 갔을 때 역시나 유심칩을 파는 곳이 없었다. 어느 나라나 도착하면 공항에서 바로 유심칩을 사서 갈아 끼우는 일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인데 어디에도 그런 매장이 없었다. 그 대신 자동차를 대여하는 렌터카 매장이 빼곡히 들어찼다. 자동차 대여비용이 서유럽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한다.
짐에 조금 남은 고추장이 있었는데 공항 직원이 한참 동안 그 고추장을 기울여서 조금 움직임이 있다고 안된다고 한다. 휴대폰에 이어 다시 한번 겪는 철저한 독일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가방을 세 번씩이나 스캔하고도 정작 조금 남은 액젓과 칼집에 넣은 과도를 찾아내지 못했다.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 독일이지만 비행기 안에서 벌써 독일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함부르크 공항이 멀어져 가면서 독일을 여행하던 시간은 벌써 드라이플라워처럼 추억의 책갈피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독일의 추억 일기 중에서
독일을 여행할 때쯤은 계절은 캠핑카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우리는 주로 남부 독일을 다녔는데 유명한 고성들과 로만 가도는 호수와 숲이 어우러져 시간이 더해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장면을 모두 뛰어넘는 것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여행의 끝무렵 북부 독일을 여행하며 만났다.
2019년 7월 26일
아톰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고
여행 중 험난한 산길 혹은 복잡한 구도심, 해변가의 진흙밭에 이르기까지 위태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정작 아톰이 사고를 일으킨 곳은 아주 평평한 평지의 작은 주차장이었다. 후진을 하다가 이정표로 지어놓은 작은 지붕을 들이받은 것이다. 지붕이 뒷 문 유리창을 뚫어 움직일수록 차도 지붕도 점점 더 망가져 가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늘 그랬듯이 우리 앞에 천사가 나타났다.
캠핑카 여행을 하시던 노부였는데 근처에서 사고 소리를 듣고 오셨다.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를 괜찮다고 안심시킨 뒤 곧 커다란 톱 등 구호물자를 준비해 오셨다. 여행이 일상이 된 두 분은 가지고 있는 도구도 많으신 것 같았다. 특히 부서진 창문에 검은 테이프를 어찌나 꼼꼼하고 예쁘게 붙여 주셨는지 나중에 수리하느라 떼어낼 때 아까울 정도였다.
함께 이 장면을 지켜보던 중 할머니는 불안해하는 나를 꼭 안아 주셨는데 그 포근하고 따스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톰과 마지막 캠핑
7월 26일
여행의 마지막 캠핑장에 도착했다. 유럽의 폭염 소식에 우린 북부 독일에서 최대한 시원한 여름을 즐기고 나서 최종 목적지인 함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우리 각 도착한 캠핑촌은 드넓은 벌판과 바다를 접한 곳으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붐비지 않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7월 29일
날씨가 나쁘지 않았는데 어제 밤늦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소리에 텐트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었다. 아침 일찍 비가 그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 차 옆에 아주 작은 텐트가 보인다. 그리고 그 텐트 안에서 세 사람이 차례로 나온다. 젊은 부부와 기저귀를 찬 아기다.
맙소사 저런 어린애를 데리고 요런 텐트에서 잤다고? 세 가족은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니 캠핑 고수들이 될 수밖에... 아기를 키우면서도 거침없이 자전거 여행에 나선 그들이 너무도 대견하고 멋져 보인다.
7월 30일
다음 날 우리보다 일찍 떠나는 세 가족에 세 바나나를 나누어 주었다.
이 멋진 가족이 얼마나 멋지게 인생을 즐길지 기대가 된다. 나보다 훨씬 더 적은 것을 가지고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그들의 모습을 꼭 기억하고 싶다.
차 안에서 어린 소녀가 나비를 좇아 다니며 노는 모습이 귀여워서 한 시간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소녀의 손에 있는 나비가 보였다. 너무 신기해서 뛰어 나갔다. 드디어 소녀가 나비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어리는 나비를 잡고 있지 않았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 서자 나비가 날아가 버렸다."
네가 나비를 잡고 있던 게 아니네." 영어로 말해 보았지만 소녀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도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며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자기 이름이 리어리라고 말했다. 나 때문에 나비가 날아간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는데 리어리는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곧 다시 나비는 돌아왔다. 나비는 리어리의 신발이나 옷, 손 위에 거리낌 없이 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나도 해보고 싶다고 하니 리어리가 가르쳐 준다. 나비는 해를 가리면 무서워하니 그 점을 조심하면서 천천히 다가가고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영어 단어 몇 개에 대부분 독일어로 말했지만 그냥 알아들을 수 있었다.)
리어리가 코치해 주는 대로 시도한 지 10분 남짓 되었을 때 나비가 드디어 내게 다가왔다. 처음엔 내 발에 앉았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내 옷에 여기저기 앉아 보던 나비는 내가 안전하게 느껴졌는지 드디어 내 손으로 왔다.
얼마나 기쁘던지.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나비는 리어리와 나 그리고 우리 캠핑카에 옮겨 다니며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리어리와 나는 나비와 노을이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리어리가 부모라고 소개한 사람은 둘 다 여성으로 보였다. 그들에게 가서 리어리에게 책을 줘도 되냐고 물었다. 영국에서 산 쉬운 동화책이었는데 너무 고마워했다. 나비와 교감할 줄 아는 아이로 잘 키워낸 그들 덕분에 나야말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비랑 교감하며 놀 수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재미 탐험가가 된 이래 가장 재밌고 신기한 일이었다. 캠핑 마지막 날 선물처럼 찾아온 리어리와 나비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벌릴 수 있는 최대치로 팔다리를 뻗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와인으로 축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