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6일
오늘은 광민이 일주일에 한 번 목포대로 강의를 하러 가는 날이다. 집을 나서며 광민이 하는 말
"바람이 없어서 지붕 얹기에 딱 좋은 날인데."
어제 지역아동센터에 가는 날이라 지붕을 반 만 끝내서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그래서 아쉬워?"
광민: "29일 우리 결혼기념일까지 마칠 수 있을까?
나 : "바람만 없으면 할 수 있겠지. 설마 내일부터 3일 내내 바람이 불겠어?"
해남에서 네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새 집에서는 세 번째 가을이다.
나는 텐트처럼 초 간단한 생활을 원해서 비가림 시설도 필요 없다 했지만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 집은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비가림만 하려다 집 앞 데크 공간은 벽을 세우고 문을 만들어 아늑한 실내가 되었고 전기밥솥과 전기레인지를 놓으니 우리 집의 새로운 부엌이 되었다. 냄새나는 요리나 오래 끓이는 요리는 요즘 이곳에서 주로 한다. (지금은 내가 가장 자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해가 잘 드는 남쪽 문 옆에는 겨울철 난방을 보조할 수 있는 태양열 난방기를 만들었고, 북쪽 문 옆에는 데크를 넓혀서 여름철 시원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았고, 야외 신발장을 만들었다. 그밖에도 반 평이지만 알차게 만든 창고며 쓰다 남은 자재로 만든 야외 부엌, 야외 샤워장 등이 광민 손에서 차근차근 만들어진 것들이다.
조금씩 자라나던 우리 집은 드디어 씨를 멀리 퍼뜨려서 우리 집 맨 앞 쪽 꽃밭 정원에 커다란 온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광민이 꿈에 그리던 카페 분위기의 온실이다.
시골 생활 3년이 넘어가자 집 안에서 겨울을 나야 할 화분들이 더 이상 자리가 없고, 구근을 관리하거나 모종을 키울 공간이 필요했다. 널찍한 데크도 놓아서 참깨나 들깨도 말릴 수 있고, 맘껏 춤을 출 수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다.
요즘 광민이 만들고 있는 온실은 우리 집과 비슷한 크기인데 기초 공사부터 조금씩 꾸준히 작업해서 이제는 골격이 완성되었다. 지인에게 각도 절단기 등 몇 개의 도구를 빌린 덕에 작업이 속도 있게 척척 진행된다.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저런 도구 없이 그동안 작업 헸다는 게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이었는지 마음이 짠하고 한 편 미안하다. 광민은 꼭 필요한 것도 쓰레기가 되는 것이 걱정스러워 가능하면 사지 않는다. 게다가 광민이 뭔가를 짓는다고 하면 나는 언제나 관리할 것이 많아진다며 반대를 했다. 그러나 실은 광민이 공사하다 다칠까 두려웠다.
골격이 세워지기 시작하자 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목포대 강의 외에도 전공 관련 책을 쓰는 일에,마을 협동조합일이며, 초등학교 환경 수업 등 할 일이 많은 중에 틈틈이 꾸준히 일해온 덕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사다리만 잡아 줄 뿐 광민은 거의 혼자 작업한다.
가장 무섭고 힘들었던 것은 상량을 올리던 날이다. 둘이라지만 난 힘도 없는 데다 겁쟁이라 혼자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내 전화에 급히 와 준 이웃이 있어서 사다리를 잡아 주게 부탁했고, 가까스로 두려움을 겨우 참고 7미터짜리 상량을 단 둘이서 올렸다.
광민은 몸고생, 나는 마음고생으로 우리는 저녁 9시를 못 넘기고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이렇게 열심이니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비가림 까지는 3일 남은 결혼기념일까지 가능할 것 같다. 그날에 켜려고 예쁜 태양광 등 도 두 개 주문해 놓았다.
비가림을 끝낸 뒤에도 우리 부부는 온실에 대해 의논할 것이 너무 많다. 우리 집처럼 온실도 자꾸자꾸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밌는 놀이터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지붕 작업이 끝나야 내 마음이 진짜 편안해질 것 같다.
친정아버지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광민이 사다리에 올라가면 마음이 너무 힘들다.
광민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온실을 지을 수 있기를 내가 아는 모든 신들께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