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토마을 행복 협동조합 사람들
"계신가?"
"혹시 잠자고 있으까?"
잠시 아이들 가르칠 책을 보고 있다 나가보니 성자 언니가 계란을 수북이 담은 그릇을 들고 서있다.
한 손에는 낫이 들려져 있었다. 성자 언니는 우리 동네 제일 부지런한 일꾼 중에 일꾼인 사람이다.
"아이구 반가운 사람!, 이 바쁜 계절에 우리 집에를 다오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나 흙 투성 인디."
" 시골에서 다 그렇죠. 우리 집도 먼지 구덩이예요. ( 청소 안 한 우리 집과 때마침 입고 있던 작업복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여기 좀 보세요. 집 안 바닥도 지저분하잖아요. 나도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입고 있잖아요 "
일 욕심 많은 성자 언니를 겨우 안으로 끌어드렸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캠핑용 안락의자에 자리를 권하고 마침 끓여 놓았던 생강차에, 옆 집에 사는 친구가 만든 쌀강정을 내놓았다.
그릇에 수북이 담긴 계란을 씻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집은 아주 작아서 싱크대와 소파가 바로 옆이다.)"와 이렇게 작은 계란 처음 봐요."
계란 중에 골프공만 한 알이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작았다. 그래도 부녀회장님네 오골계 계란보다는 성자 언니네 집 알들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닭을 키울 거면 오골계가 좋다고 했다.
부녀 회장네와 같은 집에서 오골계를 분양받았으나 두 번이나 들짐승들에게 다 빼앗기고 닭 집을 다시 지은 뒤에는 닭장사에게 샀다고 한다.
남편분이 지어 주었던 닭장이 연달아 두 번이나 실패하자 자신이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직접 지었다고 한다. 모양은 우습지만 그 뒤로 닭을 들짐승에게 빼앗기지 않고 계란을 잘 먹고 있다고 했다. 요즘엔 나락을 베고 찌끄러기 먹을 것이 많아서 알을 잘 낳고 있다고 한다.
성자 언니는 지난번에 고구마도 주고 가고, 홍시도 동네 사람 중에서 가장 큰 놈으로 가져오셨다.
이렇게 마음이 넉넉한 사람인데 성자 언니는 동네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늘 환한 미소를 지닌 따뜻한 사람이지만 그 따뜻함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웃은 자신이 키우는 먹거리들을 거의 가지고 있으니 나눌 것이 없고, 바빠서인지 다른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먹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성자 언니네는 누구보다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고 누구보다 늦게 까지 일을 한다. 다른 집들은 서로 도와 가며 일을 하는데 성자 언니네는 농사가 많으면서도 거의 언니네 가족끼리 일을 한다. 올봄 일을 무리했던지 두 부부가 차례로 병원에 입원해서 집에 90이 되신 노모가 혼자 계시게 된 일까지 생겼었다.
동네 어른들은 이런 부부를 보며 욕심이 너무 많다고 걱정들을 한다.
그런데 요즘 성자 언니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올여름이 시작될 무렵 우리 마을 사람들과 만든 협동조합이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마을 이장이신 남편 분이 회원이시지만 이 마을의 특성이 '밭일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관념이 있어서 주로 성자 언니가 나오게 되었다. 그것도 거의 1등으로 나와서 하우스 문을 열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시곤 했다.
이사 와서 몇 년 동안 얼굴을 제대로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매일 환한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전 날 우리 물건이 잘 팔렸다는 소식이라도 전해드리면 너무 신나 하시고, 농담까지 하신다.
가까이서 보니 성자 언니는 돈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일에 대한 숙명 같은 것을 가진 듯 보였다. 특히 유기농을 하셔서 일반 관행 농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니 그 과정에서 작물 자체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더 생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돈 관리는 전적으로 이장님이 알아서 하니 경제문제는 통 관심 밖이다. 우리 협동조합은 노동한 사람이 이익을 받는 구조로 만들어서 로컬푸드에서 돈이 입금되면 넣을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했지만 관심이 없었고, 결국 남편분의 통장에 넣도록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자 언니가 연락도 없이 며칠을 나오지 않았다. 우리 마을 협동조합 사람들끼리 카톡으로 연결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성자 언니는 한 번도 대답을 안 해서 카톡을 혹시 보지 않나 걱정하면서도 개인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답장이 왔다. 더 감동적인 건 답장 내용 중
"안 온다고
연락도 주고
고맙네."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한 편의 시인양 몇 번이나 문자를 들여다보며 흐뭇하다.
내가 연락한 것이 언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그 마음은 다시 나를 벅차게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 성자 언니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아직도 바쁜데 일하러 나오는 성자 언니를 동네 분들이 오히려 신기하게 여기는 듯했다.
우리가 하는 작목은 들깻잎과 애호박 그리고 오크라인데 우리들은 주로 들깻잎을 따고, 애호박과 오크라는 광민이 담당했다. 같은 시간 일을 하면 성자 언니 작업량은 나의 몇 배다. 들깻잎을 따다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우린 포장을 하러 간다.
아직은 따로 작업장이 없어서 부녀 회장님네 창고에서 포장 작업을 한다. 아침부터 옹기종기 모여 앉아 푸짐한 수확물들을 만지작 거리는 것은 너무 재밌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 포장일이 끝나고 부녀회장님이 부침개를 해서 같이 먹었다. 부녀회장님 이야기가 30년 넘게 이웃해 살면서 성자 언니가 자신의 집 안에 처음 들어왔다고 했다. 부녀 회장은 나보다 한 살 아래라 성자 언니와는 거의 10살 차이가 나지만 남편들과 아이들 나이가 비슷했음에도 서로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두 집 사이에 한 집이 있을 뿐 거의 바로 이웃이다.
이럴 수가! 성자 언니가 동네 분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인 줄은 몰랐다.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이웃집에 들어와 그것도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있다니 이건 기적이 아닌가?
그렇다면 협동조합이 성자 언니를 마을 사람들과 연결해 주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기적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멋진 것인지 정말 몰랐다.
성자 언니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벅차고 행복하다.
달걀 꾸러미를 받던 날 성자 언니의 환한 미소를 보며 성자 언니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분토마을 행복 협동조합이 만들어가고 있는 또 다른 기적들이 떠오른다.
그 따스한 기적들을 잘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