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Aug 27. 2022

 참깨처럼 쉬운 농사 없다고?

우리 동네에서는 이른 봄  마늘을 캔 자리에 보통 참깨를 심는다. 우리도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깨를 심어 보았다. 얼마 큼을 심어야 알맞을지 몰라 동네 분들의 조언을 듣고 두 두룩을 심었다. 그러나 한 여름인 요즘 깨를 수확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이것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심기  

2022년 6월 4일


앞 뒤 옆으로 한 구멍씩 떼고 깨 씨앗을 서 너 개씩 놓으라고 했다. 가로 세로 구멍을 세어 계산을 해보니 어마어마한 작업 양이다.  씨앗파종기를 구입해서 사용해 봤는데 그것도 만만찮게 힘들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 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힘들다. 


"그래도 한 번 심어만 놓으면 깨처럼 쉬운 것도 없어." 옆집 아짐의 말이 큰 힘이 되었다. 


한 두룩은 파종기로 정성껏 심었지만 광민이 다른 한 두룩은 그냥 손으로 뿌리자고 했다. 빗자루질을 해서 구멍에 들어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계로 심은 것과 비교하는 실험을 하자는 것인데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 그냥 편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둘이 다시 합의해서 반은 기계로 반은 손으로 뿌리기로 했다.


결과는 기계로 뿌린 것은 솎을 것이 적고 흙도 적당히 덮여서 더 튼실하게 자랐다.


2. 발아

 깨는 며칠 만에 거의 모두 파랗게 싹을 틔웠다. 새들이 씨앗을 먹는 경우도 많다는 데 우리 밭 깨는  대부분 기계로 심다 보니 밖으로 떨어진 깨가 적어 새들에게 거의 들키지 않은 것 같다.


3. 솎아주기

6월 27일, 28일


"깨는 키가 커서 초반에 잘 솎아주고 밭을 잘 매 주면 일이 적어"라는 아짐들의 조언에 귀가 솔깃해져 깨를 심었었다. 귀촌 3년 차 풀깨나 뽑을 수 있게 된 나는 비가 온 다음 날이 적기라고 생각하여 각오를 하고 드넓은  참깨밭을 매러 나갔다. 그런데 밭 근처에서 만난 아짐이 비 온 뒤 바로 풀을 매거나 솎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오히려 땅이 단단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풀이나 솎을 깨를 잘라내는 편이 낫다고 했다. 깨는  뿌리가 예민해서 조금만 흔들려도 죽어버린다고 했다. 하마터면 깨 농사를 초반에 다 망칠 뻔했다.


4. 비를 싫어하는 깨

올봄과 초여름은 유난히 비가 안 왔다. 그런데 마을 어른들이 하는 말이 깨 농사는 가뭄이 낫다고 했다. 우리 집 깨를 보며 "올해 이 집 깨 좀 먹겠네"하신다. 그렇지만 덧붙여하시는 말씀이 


"고추는 건조기에 들어갈 때까지, 깨는 깨 볶으러 갈 때까지 알 수 없어."


역시나 수확기가 다 되어서부터 늦장마가 시작되었다. 비바람에 쓰러지고 넘어진 깻 대들을 보며 점점 심란해졌다.


5. 수확 1 - 베기

8월 16일


깨를 심고 아직 석 달도 안되었는데 벌써 깨를 베라고 한다.


매일 비가 오다 잠시 개인 어느 날 오후 갑자기 깨를 베어야 한다며 아짐이 오셨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깨가 밭에 모두 쏟아져 버린다고 한다.


다닥다닥 달린 열매나, 잎이  아직도 성성한 초록이라 수확은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습한 날씨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아직도 한여름인 지금 깨를 거두라니! 게다가  한꺼번에 베는 것도 안된다고 했다. 넘어지거나 여문 것들을 먼저 솎고 , 덜 여문 것은 익기를 기다려 가며 순차적으로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여름에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서 골라가며 수확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난관이다.


수확 2 - 잎 따기 1

8월 20일

베어낸 깨는 다시 잎싹을 깨끗이 떼어야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광민과 나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많은 깻대들에 달려있는 훨씬 더 많은 잎싹을 때는 일은 얼마나 번거로운 것인가! 게다가 벌레가 득실거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직도 의심스럽기만 했다. 


마침 광민의 세미나 출장이 있어서 깨 수확의 지옥으로부터 이틀간 탈출했다. 세미나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캠핑카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오랜만에 여행을 즐겼다. 그런데 다니는 길에 다른 마을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깻잎 뜯어내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데 역시 깨 농사를 짓다 보니 안보이던 장면이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그분들의 표정이 참 편안하다. 우리는 너무 심난하고 힘들게 생각되는 일인데 멀리서 보이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집으로 돌아와 깻대들에는 역시 벌레가 득실 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벌레들 속에서 깨들이 어떻게 멀쩡한 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아짐들에게 물어보니 벌레들은 잎이 없어지면 모두 나가버린다고 했다. 벌레 속에서 버티는 참깨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여행 중에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벌레들이 우글대는 깻대들 속에 퍼질러 앉아 일을 시작했다. 커다란 벌레부터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언제 어디로 내 몸을 습격할지 모르는 공포는 잎싹 떼는 일에 집중하는 사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잎싹을 깨끗이 떼어내고 깻대들이 더 이상 심란하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예쁘다. 훨씬 공기가 잘 통해지게 된 깻대들이 나래비를 선 모습은 그대로 작품이 되어간다. 


그 작품을 바라보는 나도 풍경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 노래까지 흥얼댄다.


수확 2- 잎 따기 2

8월 21일 


일을 다 마칠 무렵 마을의 한 분이 지나가면서 우리 깨가 얼마 큼이냐고 물어서 이만큼이라고 대답하니 아짐이 이만큼이 다시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놀랐다. 우리 깨가 더 있다는 말에 즐거움이 아니라 버거움으로 놀라다니 아무래도 우리는 농사꾼이 아니다.


출장 가기 전 날 베어서 빈 집 처마 밑에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잎싹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광민은 또다시 할 필요 없다고 게으름 부릴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우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무척 습한 데다 바람마저 없으니 광민이 힘들어한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 그렇게도 싫어하던 벌레들이 득실대는 깻대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게 된 내가 참 좋아 보인다. 비가 좍좍 시원스레 한차례 내렸지만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깨들이 젖지는 않아서 날씨마저 고맙다.


수확 2-잎 따기 3

8월22일


우리 일을 마친 다음 날 동네에서 가장 많이 깨 농사를 지은 집에 아짐들이 잎싹 떼는 일을 도와주는 자리에 나도 일손을 보탰다. 여기서 우리 깨 수확 작업에 한 과정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깻대를 묶는 작업이다. 깻대를 묶어서 서로 기대어 세워 놓거나 줄에 매달아 놓으면 훨씬 잘 마른다. 그런데 묶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탈락. 


아짐들의 재미있는 입담에 힘든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몰라 광민은 혼자 저녁을 먹어야 했고 나는 아짐들과 어울려 집주인의 푸짐한 저녁상을 대접받았다.


이제 난 깻잎 떼는 일이 더 이상 싫지 않다. 

내가 보았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에 진짜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수확 3 - 말리기


 

광민이 내가 일하는 장면을 찍어서 가족 톡에 올리며 "우리 깨가 잘 마를까?"라고 썼다.

 그때야 옆집 아줌마 말씀이 다시 생각났다. 


"깨는 볶으러 가기 전까지 알 수 없어"


이제 우리 깨를 잘 말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다. 하지만 아직도 날씨는 화창하지도 않고, 내일은 다시 비 소식이다. 


우리 참깨는 정말 잘 마를 수 있을까?

초짜 농부는 며칠 동안 말려야 할지, 다 마른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뒤집어 주면서 노력하는 수밖에.  깨 볶으러 가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수확 4 -털기

8월 22일 

다행히 수확의 막바지에 햇볕이 도와 준다. 아침 저녁 서늘해 졌지만 한 낮에 뜨거운 해는 하루동안 며칠 양의 일을 다 해버린다. 아직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내일 비가 온다니 그냥 깨를 털기로 했다.


탁탁탁 집집마다 깨 터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물망 밑에 깔아놓은 하얀 부직포에 참깨들이 뽀얗게 쌓이면서 이제야  끝이 보이는 듯했다.


수확 5- 얼갱이 질, 키질

8월 22일

얼갱이로 대충 큰 불순물을 걸러낸 후에즌 키질이 시작된다. 우리 집엔 도구가 없어 동네 아짐 집으로 갔다. 그러나 키질은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감한 키질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대부분 흙이나 불순물이 나갔으나 깨도 상당히 나갔다.  덜 여문 것이라 괜찮다고 했다. 깨 한 톨도 소중히 여기던 아짐이 반전이다. 나도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깨들이 쏟아질까 봐 조마조마해서 과감한 키질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짐의 키질은 볼수록 경이로운 예술적 퍼포먼스였다. 


수확 5 말리기, 씻기, 여문 깨와 덜 여문 깨 분리하기

8월 25일 

키질 한 깨를 다시 며칠 말린 후 이제는 씻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벌레는 거의 다 나갔다. 이번에도 우리 집엔 도구가 없어 동네 아짐이 살림살이들을 들고 오셨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시간 나를 위해 기꺼이 와주신 아짐. 이런 사랑을 어디가서 받을 까? 


큰 양푼에 깨를 붓고 물을 부은 뒤 뜨는 깨와 가라 앉는 깨를 분리한다. 뜨는 깨는 양파 망에 담아 한 쪽에 놓아둔다. 이것은 덜 여문 것이라 기름을 짜면 쉽게 타서 안된다며 볶아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양푼에 가라 앉은 여문 깨는 몇 번 씻어내어 흙을 분리해내고 채반에 건져낸다.


 그다음  양파 망에 든 깨는 흙이 거의 없으므로 망에 담긴 채로  빨래하듯 몇 번 씻어낸다. 우리 깨는 쓰러진 것이 많아 불순물이 많아 여러 번 헹궈내야 했다.


수확 6 말리기

8월 26일

밤 사이 물이 빠진 깨들을 햇볕에 말린다. 여문 깨는 색이 뽀얗고 덜 여문 깨는 색이 어둡다. 다 말린 후 덜 여문 깨는 다시 한번 키질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여문 깨가  더 많다. 손으로 여러 번 깨를 뒤집듯이 문질러 주라고 했다.



수확 7 턴 깨 다시 털기

8월 26일

일이 다 끝나갈 무렵 아짐이 다시 깨를 털어야 한다고 했다. 깨를 털고 나니 대부분 덜 여문 놈들이다. (이제 깨 농사 좀 했다고 깨들이 한눈에 보인다.) 


덜 여문 깨는  할 일이 더 많다. 


우리는 내년에 깨를 다시 심을까?










작가의 이전글 사람책 도서관 방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