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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Jul 09. 2024

 에너자이져 미림언니

2024년 6월 30일


올봄부터 저녁 8시면 매일 마을회관에 몇 명이 모여 간단한 운동을 하고 있다. 미림언니가 근육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에 시작되었지만 언니는 한 여름이 다 돼서야 운동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미림언니는 대도시에서 살았고, 나보다 몇 년 늦게 우리 마을에 왔다. 도시에 살던 사람은 농촌에서 일로 다져진 몸에 비해 힘이 약하고 면역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미림언니는 우리 마을에서 나와 더불어 대표약골이다. 마을식당 당번인 날도 가장 늦게 출근하는 편인데 언니가 당번인 날은 혹시 아파서 못 오나 걱정을 할 정도로 갑자기 몸이 안 좋은 날도 많았다.) 그마저도 최근에 감기 몸살로 고생하다 오랜만에 마을 회관에 나왔다.  


"우리 운동 끝나고 밀가루 반죽해 놓자." 막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미림 언니가 말했다. 나는  기가 막히면서도 재밌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니 오늘 아침 9시부터 일했는데 밤 9시부터 다시 밀가루 반죽을 한다구요? 언니 힘들지도 않아?"

"어차피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할 건데 뭐."

"아무리 그래도 밤늦게 다시 부엌일을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금지하자 언니!"

내 말에 함께 운동하던 미연 씨가 언니 편을 든다.

"난 언니 말엔 무조건 따를 거야" 

미연 씨 말에 사실 나도 동감이다. 언니가 이렇게 나서 주는 것이 너무 무지 고맙고 신난다. 다만 언니가 아플까 봐, 지칠까 봐 걱정이 될 뿐이다.


마을 식당은 월수금 점심에 운영을 한다. 아직 콧물을 훌쩍이며 오랜만에 출근한 언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할 때까지 잠시도 쉴새가 없었다. 반찬의 종류도 많았고, 대부분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지쳐서 정신이 희미해지는데 언니는 식사 후에 마을 아짐들과 화투를 친다.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한 잠자고 회관에 와보니 언니가 아직도 지치지 않고 아짐들과 놀고 있다. 점심때 만든 음식이 너무 많아서 나와 함께   저녁을 차리기로 했는데 언니의 극성(?) 덕분에 영양가득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집에 가면 나오기 싫어진다며, 운동시간까지 우리 집에서 꽃구경을 했다. 


결국 언니는  당번 첫날 12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수요일도 거의 비슷한 스케줄이 이어졌다. 그런데 전 날 마을 협동조합에서 딴 많은 애호박을 보더니  마을 식당을 안 해도 되는 목요일에 바지락 칼국수를 하자고 한다.  마침 장날이라 싱싱한 바지락은 샀지만  언니가 과로할까 걱정이 되었다. 아직도 감기 끝이라 콧물을 훌쩍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짐들이 반죽을 하고, 국수를 밀어내며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신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애호박 바지락칼국수는 분토리에서 먹은 것 중 최고였다. 그런데 그날 배암골 언니가 감자를 무진장 가져왔고 감자를 본 미림 언니가 이번엔  또 감자 옹심이를 들먹인다. 금요일 점심 식사 이후부터 작전이 시작되었는데 그 작전의 마무리가 바로 이 밤에 개시되기로 한 걸 나만 몰랐었다. 


운동이 끝나면 늘 하던 명상도 생략하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다음 날 부산에 사시는 어머님 뵈러 가는 정미연 씨가 제일 많이 애썼다.  이젠 냉장고에 넣어두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언니가 갑자기 감자를 커터기로 좀 갈아야 한다고 한다. 반죽에 쓸 녹말 앙금을 받아 놓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짐들이 깎아놓은 감자가 수북이 쌓인 데서 작은 것들을 추려서 나와 미연 씨는 자르고 언니는 커터기로 갈았다. 시간은 한 밤중인데 부엌은 점점 일이 크게 벌어진다. 그래도 손 발이 척척 맞았다.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냉장고에 잘 넣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제 미림언니 덕분에 오늘 밤 시간들이 감자 옹심이 맛을 위해 흐를 것이다.


토요일 아침 나는 감자 옹심이를 만들기 위해 회관에 나갔다. 회관 주변과 부엌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짐들이 한 분씩 강판을 들고 나타난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병들 같다. (내가 아동 센터에 가있는 사이 모두들 약속을 한 모양이다.)그리고 언니가 방망이 면보를 비롯한 많은 장비를 가지고 나타났다. 준비물 중에는 아짐들 손 다칠까봐 가져온 목장갑도 있었다. 언니는 밤에 자면서도 준비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웃에 사는 내친구 현득이도 합세 했는데 끝까지 갈아지지  못하고 남은 조각들은 믹서에 갈아 전을 부치면 되겠다고 한다.  바지락 칼국수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 무더운 날씨에 전까지? 하지만 어제 쓰다 남은 부추도 있고, 계란도 넉넉하며, 개봉한 밀가루도 빨리 쓰는 게 좋으니 반대를 하진 않았다. 


 마을 아짐들 몇몇이 간단히 먹으려던 감자 옹심이는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앞서 애호박 칼국수를 만들었을. 때 못 드려서 미림언니 마음에 걸린  몇 분이 있었기 때문에 칼국수까지 곁들여 충분한 양을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끝이었다면 글을 쓰자고 작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요즘 너무 일이 많아서 글을 쓰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전쟁 같은 점심을 마치고 빗속에 몇 군데 배달까지 하느라 지쳐 낮잠을 푹 자다 깰 무렵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회관에 녹두 나 팥 있어?"

"네. 녹두 사다 놓은 것 있어요."

"아짐들이 점심 먹은 게 다 내려가서 출출하시다니 남은 반죽으로 녹두 칼국수 만들려고 해."


나는 세 번째 칼국수 전쟁에 나섰다. 한 여름에 큰 솥 두 개 가득 끓이느라 전쟁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완전승리. 맛있는 녹두 칼국수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리고 월수목금 그리고 토요일 점심저녁까지 이어진 미림언니의 에너지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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