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딜레마

잘츠부르크 카드 덕분에 만난 모차르트

잘츠부르크 카드를 손에 든 우리는 놀이공원에서 프리패스를 받은 어린애들마냥 신났다. 유람선을 포함해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어디든 마음대로 입장할 수 있으니 가고 싶은 순서만 정하면 된다. (도시마다 대부분 그 도시를 즐길 수 있는 카드를 판매하는데 가장 가성비 좋았던 곳이 잘츠부르크와 부다페스트였던 것 같다. 부다페스트는 유람선은 아니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그런데 많은 후보지 중에서 모차르트의 생가나 박물관엔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쇼팽의 생가와 박물관에 다녀와서 실망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삶이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인지 호기심도 별로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잘츠부르크는 온통 모차르트로 뒤덮였고 무료 카드도 있으니 한 군데 정도는 가기로 했다. 맛없는 음식을 먼저 먹는다는 기분으로 모차르트의 집으로 향했다.


분홍색 건물에 오스트리아 국기가 걸려있는 곳에 모차르트의 집이 있었다. 이곳은 모차르트가 17세까지 7년간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쇼팽 박물관에 비해 훨씬 많은 입장객이 있었으나 서로 불편하지 않게 방을 돌아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전시실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들과 한국어 오다오 가이드가 좋었다.(쇼팽 박물관에서는 자막은 영어로, 오디오는 폴란드어로 나와서 황당했었다) 편히 앉아 설명을 듣기도 하고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모차르트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이젠 저절로 생가와 박물관도 궁금해진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부모들이 어린 모차르트를 낳고 기른 곳이 궁금해졌다.


모차르트 부모를 만나다

모차르트의 생가는 훨씬 복잡한 시내 중심가에 있었고 노란색 건물이 한 번에 눈에 띄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 모차르트 생가가 슈퍼마켓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 잘츠부르크를 온통 도배하고 있는 모차르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건물 전체가 모차르트를 위한 공간일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생가에는 모차르트의 물건들과 악보들, 심지어 그의 머리카락까지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보다 모차르트의 가족에 대해 더욱 마음이 끌렸다.


먼저 같은 부모로서 모차르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7명의 아이들 중 살아난 두 명의 자녀 , 그중에서도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인 모차르트가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을까? 그리고 같은 음악가로서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시키던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아들을 위해 택한 길은 연주여행이었다. 작은 우물 안을 벗어나 더 많은 세상과 만나며 맘껏 배우고 또한 맘껏 자신의 재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같은 여행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를 데리고 장기간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된다. 더구나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전 10년간의 여행이었다. 1년을 계획하고 여행을 시작해 여기까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되지만 훨씬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새로 적응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 또한 많다는 의미다.


아직 어린 여섯 살 아이의 장래를 위하여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시작한 연주 여행을 10년 동안 지속하며 쏟아 부운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국 땅에서 아들을 위한 여행경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버지는 영주들이나 귀족들에게 비굴하게 굽신거려야 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 또한 모차르트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감당했던 여인이다. 그의 아버지가 더 이상 궁정악사의 자리을 비울 수 없게 되자 직접 모차르트의 뒷바라지를 위해 그의 구직을 위한 연주 여행에 동행했다. 그러나 전염병에 걸리고 치료비가 없어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식 이기면 안된다.

아들을 위해 많은 헌신을 해 온 아버지는 인류를 위해 위대한 음악가를 선사했는지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차르트를 넓은 세상에서 키우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안정된 직장이라는 작은 틀에 가두려 했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은 연인과 헤어지게 했으며 ,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결혼식에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사랑하고 아들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죽기 직전에는 아들의 집에 방문하여 마음속 앙금을 털어냈다고 한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으며 이겨서도 안된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이미 과거의 것이므로 자식에게 맞을 리도 없고 맞춰서도 안됀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버지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용기 있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 지신의 길을 개척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청년 모차르트는 지금 내 아이들과 딱 같은 또래이다. 사랑이 지나쳐서 집착이 나 간섭이 시작되면 그것을 받는 쪽은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 또한 부모로서 이점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모차르트의 생가와 박물관을 나서며 이곳에서 살던 때가 그나마 모차르트의 부모들이 가장 행복했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본다. 모차르트의 집에 비해 훨씬 작지만 아늑하고 따뜻했던 그들의 행복한 시절이 떠올랐다. 막내 모차르트가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보며 그 부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을 만큼 사랑하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럴수록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 모든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가 아닐까?


예술가의 명성은 국력과 비례하나?
또 한 가지 같은 음악가의 박물관을 나오면서 쇼팽 박물관과 달리 모차르트 박물관이나 전시공간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게 두 음악가의 음악적 재능은 영향을 미칠 리가 없다. 전시를 제대로 관람할 수 있는 세심한 시설과 배려가 바르샤바에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두 음악가의 명성의 차이는 두 음악가를 배출한 나라의 경제적 토대와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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