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열흘 같다는 말 , 지루할 때만 쓰는 말이 아닌 거 같어
일기를 쓰다 보면 바로 어제 아침 일이 며칠 전 혹은 더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해.
뇌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느라 시간을 길게 느낀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실감 난다. 내가 여행한 지난 1년을 돌아보니 10년 치 이상의 새로운 기억들이 쌓였다는 생각이 드네.
이런 계산이면 10년 여행하면 100살이 더해지는 거지
여행은 짧은 기간을 오래 살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이 숨어있는 거 같아.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친구들은 이미 만수무강하고 있는 중
오늘도 만수무강에 하루를 보텐다.
(여행 중 친구들에게 보낸 카톡 메세지 중에서)
과잉 여행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난 여행자들이 더 많아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자가 많아질수록 세계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여행자가 많아지는 것을 문제 삼기보다는 관광객들이 환경을 덜 파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더 자주 더 오랫동안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면 여행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생산력 과잉 시대이며 점차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훨씬 더 과잉이 될 것이다. 인류가 조금 더 현명해져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행복한 여행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미니멀 라이프의 연습장 캠핑카
장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장거리 비행의 횟수를 줄임으로써 얻어지는 경제적 이득이다. 한 번 여행하는 기간을 평균 2주일이라고 가정하면 1년이라는 여행기간 동안 24번의 왕복 항공권이 필요하다. 1회 왕복 항공권을 100만 원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당 2400만 원이 필요하다. 부부가 함께 여행할 경우 비행기 값만 4800만 원이 든다. 여기에 캠핑카로 여행할 경우 서유럽의 비싼 숙소비와 외식비를 상당히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스케줄을 변경하거나 조절할 수 있음으로써 얻어지는 이익도 상당하다. 그러므로 캠핑카 장기 여행은 적은 돈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친환경 삶 미니멀 라이프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 여행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한된 공간과 재화를 사용하는 일상은 언제나 더 적은 소비를 염두에 두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사용하는 물을 내 손으로 탱크에 저장해야 하고 내가 버린 물을 내 손으로 버려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함께 여행하시던 별이님네는 거의 한식으로 드셨다. 그것도 매번 끼니마다 새로 밥을 하시려니 물 소비량이 많았다. 별이님이 쌀을 씻을 때마다 버리는 물이 너무 많다 보니 조 선생님이 잔소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물을 구하러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자발적으로 쌀을 한 번만 씻으셨다고 한다.
물 사용은 줄이고 세제는 안 쓰고
우리는 쌀 씻는 물과 연료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빵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밥과 국은 한 번에 많은 양을 하여 데워먹으면 시간과 노동이 함께 절약된다. 설거지는 스님들의 발우공양을 따라 하고 소독할 겸 뜨거운 차를 마시며 마무리했다. 우리의 연료나 물 소비량은 조 선생님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제를 사용하면 헹구는 물을 너무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고민하며 이것저것을 많이 사용해 보았다. 그중에서 구연산을 선택하여 작은 분무기에 물과 희석해 놓고 과일을 닦을 때나 기름기 있는 식기를 닦을 때 사용하고 소금이나 식초도 보조적으로 사용하였다.
물한 컵으로 전신목욕
남편은 온수기와 샤워 커튼을 설치했지만 난 화장실에서 물 사용을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좁은 차 안에 습기까지 많아지면 위생적인 뒤처리가 더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혼 분위기를 내려고 멋진 디자인의 샤워 커튼을 정성껏 구매했지만 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남편은 샤워 대신 매일 족욕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차 안에서 족욕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은 물과 가스를 사용해야 하는 일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대신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하여 한 컵 정도의 물을 데워 수건 목욕을 했다. 모든 것이 계속 낯선 곳에서 문제 많은 차로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힘든 남편의 목과 발에 뜨거운 수건을 대어 주면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에 물을 쓰면 다 식기 때문에 보온병에 담아 조금씩 수건에 따라가며 쓰면 물 한 킵으로 따뜻한 전신 목욕이 가능하다.
이렇게 극단적인 절약을 하다 보니 버리는 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야채를 씻은 물은 채에 걸러 변기의 청수로 사용하였고 쌀 씻은 물은 나의 세안용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발전해서 가라앉은 곡물을 이용하여 그동안 서울에서조차 하지 못하던 팩까지 하게 되었다. 물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어느덧 마음에 여유까지 덤으로 얻었다.
난생처음 김치 담기
물 절약에 대해서 말하면 요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물 사용의 대부분이 사실 요리와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요리 중 대표적인 김치는 절이는 과정이 있고 , 절인 것은 헹궈야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소금과 물이 낭비된다. 절인 물을 씻어내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다. 절인 물을 그대로 사용한 덕분인지 숙성 후에도 오랫동안 맛이 변하지 않아 조 선생님네와 몇 달 후 스위스에서 다시 만났을 때 맛있는 김치를 대접할 수 있었다.
저온 요리법
가스 사용을 줄이는 것도 아주 재밌고 유익했다. 예를 들어 야채볶음을 할 때 특히 감자는 잘 익지 않고 붙는다. 그러나 물을 조금 넣고 약한 불로 감자를 익히면 붙지도 않고 잘 익는다. 그리고 다른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뚜껑을 덮어 놓으면 연료와 시간을 더욱 절약할 수 있다. 다른 재료들도 모두 넣고 물이 거의 없어질 때 기름을 넣어서 살찍 볶아주면 재료도 충분히 익고 재료에 기름도 너무 많이 배지 않아 담백하고 맛있다. 특히 유럽 전 지역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올리브유는 높은 열에 요리를 하면 산패되기 쉬우므로 맨 나중에 불을 끄고 기름을 넣으면 더 맛있다.
저온 요리법은 찌개를 만들 때도 아주 유용했다. 재료를 준비하며 바로 요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시간도 적게 들고 재료의 맛도 충분히 우러나와 된장과 고추장처럼 귀한 재료는 마지막에 아주 조금만 넣어 줘도 풍부한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저온 요리법은 음식이 넘치는 일이 없고 재료가 타는 일이 없어 가스레인지와 냄비나 프라이팬을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고 이것은 다시 물 낭비를 막아준다. 그리고 모든 익히는 요리는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불을 끄고 남은 열로 요리를 완성했다.
작은 공간의 장점
아무리 차가 커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캠핑카 생활을 하다 보면 작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배운다. 특히 우리 차는 다른 유럽차에 비해 실내가 좁아 더욱 많은 궁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기본 전략은 최소한의 물건만 사용하기.
냉장고 위에 있던 전자레인지를 치운 일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전자레인지는 아주 편리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려면 따로 발전기를 가져가야 할 만큼 에너지 소모량이 크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여행에는 많은 변수가 따르고 특히 늦은 출발로 언제 어디서 겨울을 만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최대한 발전기가 필요 없는 여행을 하기로 합의했다. 덕분에 냉장고 위는 식기를 정리할 수 있는 수납공간이 되고 요리 준비대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발전기를 넣으려던 공간은 식품창고로 아주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이제 작은 공간이라는 단점은 테이블에 앉은 채로 손을 뻗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바뀌었다. 한 자리에서 거의 모든 것이 내 손에 미치게 때문에 난 이후에 집을 짓더라도 부엌 공간만큼은 지금의 캠핑카랑 똑같이 하고 싶다. 특히 작은 부엌 창에 가득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들까지..
냉장고가 작을수록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크고 화려한 냉장고가 나오는데도 집집마다 한 대의 냉장고만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싸고 좋은 식품을 한꺼번에 많이 저장해 놓고 편리하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편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나 또한 캠핑카의 100리터짜리 냉장고는 너무 작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없는 셈 쳤다.
그러나 캠핑카로 새 지역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식재료를 충분히 경험하기에 작은 냉장고는 아주 유용했다.
일정한 크기의 밀폐용기를 사용하니 냉장고의 한정된 수납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냉장고가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에서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냉장고에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 돌아왔을 때 냉장고가 너무 크고 버겁다. 시장에서 막 사온 신선한 재료를 요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쓰레기가 적은 여행.
더 적은 소비가 시장 경제를 위축시킨다고 누군가는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딜 가나 쓰레기가 넘친다.
세상 한 편에서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과 연료,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인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7평으로 지을 호화 저택
우리는 캠핑카 여행으로 여행 경비를 매우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익은 미니멀 라이프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몸에 익혔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전 해남에 13평짜리 집을 지으려 계획했을 당시만 해도 너무 작은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집을 지으려고 그 마저도 예산이 부족하여 포기하고 이동식 주택을 구입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동식 주택도 평당가격이 만만치 않고 크기에 따라 운반 비용과 설치비용 등이 많이 들어서 결국 더 작은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작은 차에서 1년 간 살았던 경험을 살리니 6평 농막도 충분한 공간이 나왔다. (그래도 남편은 평생 살 집인 만큼 업자에게 부탁해서 한 평을 더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바닥 난방을 위한 보일러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입김이 나오는 실내에서도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결코 검소한 집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많은 사치를 부렸다.
1. 작은 집을 답답하지 않게 하고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폴딩도어
여름 철엔 문이 넓게 열리고 앞마당을 바로 연결해 공간을 확장해 주는 역할까지 한다.( 난 비용 문제와 집은 아늑한 게 더 중요하다며 반대해 보았으나 남편이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이 문 덕분에 에어컨이 필요 없는 시원한 여름을 기대해 본다.
2. 겨울철에 낭만적인 화목난로
여행 중에 우린 화목난로에 대한 따뜻하고 좋은 추억이 많이 쌓였고, 남편은 불 때는 솜씨가 아주 좋다. 그리고 해남 우리 집 근처에는 땔감들이 무지무지하게 널려있다. 겨울철에 난방도 하고 잿 속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 따뜻한 차도 마음껏 마실 수 있을 것이다.
3. 피로 해소를 도와주는 반신욕조까지 구비된 예쁜 화장실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내가 바란 유일한 것은 반신욕조가 있는 작은 욕실이었다. 내 계획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데 상담하는 사람마다 싸고 작은 집을 찾는 주제에 반신욕조라니.. 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던 중 함평에서 만난 건축,디자이너 부부가 만들어 놓은 집에 내가 머릿속에 생각했던 바로 그 욕실이 딱 있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아름답고 쾌적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 지금까지 상담한 곳 중에서 평당 가격이 가장 비싸지만 작은 평수라서 견딜만하다.
이런 집을 자신 있게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은 캠핑카 여행이 나에게 남겨 준 귀중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