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만난 '마지막 수업'


"어디를 가고 싶어?"

새로운 나라나 도시를 갈 때마다 남편이 하는 질문이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주로 하던 대답이다.


세계 여행을 하고는 있지만 나는 여행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리 내가 갈 지역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가고 싶은 곳을 정하는데 늘 소극적이었다. 그렇게 러시아를 지나 발트해 3국을 거치고 폴란드에 들어서기 직전 드디어 조금 관심을 가져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폴란드라는 나라 이름이 내게 아주 익숙하고, 잘 생각해 보면 친근한 무엇인가가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마지막 수업'이었다. 발트해 3국을 지나오면서 러시아가 약소국에 입혔던 전쟁의 상흔을 많이 경험한 터라 그랬는지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러시아의 침략을 당한 폴란드라는 엉뚱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폴란드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지역은 보불전쟁 시절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이었다. 보불전쟁은 1870년 독일 연방국가의 중심국이었던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인데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럽의 최강국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14세기부터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었지만 주민 대부분이 기원전부터 독일계로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뒤 이 땅의 프랑스 점령이 끝났고 그들은 이제야 자신의 언어를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인 선생님이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생과 주민들이 모였던 마지막 수업 시간에 '프랑스어 만세'라는 내용을 칠판에 썼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난센스다..


이 작품과 관계되어 알게 된 사실 하나 더.

전후에 일본의 한 작가가 이 내용을 완전히 패러디한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


1945년 8월 15일 서울의 어느 보통학교 국어 교실을 무대로 삼은 한 일본인의 단편소설 끝장면.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방금 전해 들은 일본인 선생님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조선인 학생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일본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언어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설혹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국어만은 잘 지키고 있으면 스스로의 손에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때 창 밖에서 호각소리가 울려왔다. 일본인 선생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러분, 여러분. 나는..."하고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선생님은 끝내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칠판으로 돌아서 분필로 "일본 만세"라고 큼지막한 글을 썼다. (출처 2002년 오마이 뉴스)


유럽은 우리와 역사와 문화가 많이 달라서 민족과 국가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보는 것이 근세에 이루어졌으므로 우리와 일본 같은 사이라고 등치 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당시 알자스 지방의 독일계 사람에게 저 이야기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모욕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에 대해 일본에서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잘못된 내셔널리즘의 반영이라고 끊임없이 비판되어 1970년대 초에 에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30년이나 더 지나서 까지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과서에서 내려온 이유도 작가에 대한 비판의식에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서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드는 의문.

이 글을 교과서에 실었던 사람들은 이런 진실에 대해 정말 몰랐을까?

그랬다 하더라도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곡된 내셔널리즘을 교육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걸까?


분명한 사실은 난 어린 나이에 무방비 상태로 국가주의에 오염된 채 몇십 년 동안이나 방치되었다는 것.

그 결과 나에겐 어떤 식으로든 왜곡된 내셔널리즘이 뿌리내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


이 작품을 쓴 작가는 알퐁스 도데였다.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릴 때부터 내가 끔찍이 좋아하던 작가이다. 정서적으로 무방비 상태였던 어린 나에게 그의 작품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사춘기 시절 나의 정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의 내셔널리즘에 대하여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야 최초의 의문이 생겼다. 일제의 침략에 대해 우리 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명제였고 그러기에 너무도 깊이 공감할 수 있던 이야기에 의심을 품어야 하다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알퐁스 도데를 다시 소환해서라도 물어보고 싶어 졌다. 그의 지나간 삶을 통해 작은 단서라고 찾아내야겠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 중에서 정치적인 부분만 요약하면 아주 간단하다.

알퐁스 도데의 아버지는 왕당파였으며 그 또한 나폴레옹 3세의 비서로 일했고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훗날 나치의 앞잡이가 되었다.(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독일계 사람들 앞에서 프랑스어 만세를 외친 작품을 쓴 작가의 아들이 정작 독일 나치의 앞잡이가 되다니...)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 심경

알퐁스 도데의 아들이 나치라니...

생각해 보면 나치라는 말은 국가사회주의 노동당이라는 긴 이름의 앞부분을 따온 말이다.

국가주의와 나치즘이 정말 이렇게나 가까운 사이인 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멀게만 느껴졌던 나치를 하필 내가 사랑했던 알퐁스 도데를 통해 만나게 될 줄이야....

여행은 늘 예상치 못한 만남을 선사하지만 이번 만남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알퐁스 도데가 왕당파였던 시절 프랑스는 시민 혁명을 겪고 난 직후에 공화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작품 '별'을 생각해 보니 목동의 아가씨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어딘가 수상하다.


감히 계급을 뛰어넘어 아가씨를 사랑할 수 없는 목동. 그의 아가씨에 대한 지극히 순수한 마음은 작가가 목동에게 허락한 사랑의 최대치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에서 조차 범할 수 없는 목동의 순수한 사랑 뒤에 숨은 작가의 의도. 아가씨에 대한 현실적 사랑은 허락할 수 없으며 그것은 불의하다는 작가의 계급 이데올로기가 이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차별적 존재라는 것을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은 매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의 배경에 대해서 혹은 작가에 관해서 제대로 알고 읽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빠르게 많은 정보들이 공유되는 시대가 되었는데 어째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수많은 진실이 묻히거나 왜곡되고 둔갑하여 우리가 세상의 한 면만을 보게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국가주의에 대한 두려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내게 스며들어 있는 왜곡된 국가 주의가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폴란드에 들어서기 직전 난 처음으로 국가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품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폴란드를 나오며 왜곡된 국가주의의 참혹한 현장을 마주 하였다.


독일에 있을 거라 예상했던 아우슈비추는 또다시 나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독일의 점령지였던 폴란드에 있었다.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인 폴란드의 지명을 독일어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비참한 세계사의 현장을 어떻게 착각하거나 혹은 제대로 된 지명조차 모를 수 있을까? 결국 나에겐 남의 일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무관심이 너무 두렵다.


나치의 학살은 당시 팽배했던 반 유대주의 와 국가주의에 힘입어 유럽 전역에서 묵인되거나 동조되고 자행되었다. 무엇보다 이 광활한 수용소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태인, 장애인, 정치범들을 학살하거나 도운 사람들 중 대다수도 어쩌면 대단히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시민들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외면하기 힘들다.


내 생존과 무관한 이웃의 아픔이나 사회의 불의에 무관심하는 것은 너무 쉬우므로.

그리고.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이나 배타성, 혹은 혐오가 나의 무의식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므로..


마지막 내가 또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가짜 뉴스 주의

보불전쟁은 '엠스의 전보 사건'이라 불리는 가짜 뉴스로 인해 발발하게 되었다.

왜곡된 국가주의와 더불어 가짜 뉴스는 인류의 평화 공존을 위협하는 적이다.







이숙경


남편과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귀농 혹은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농사에 소질이 없어서 저절로 자라는 풀이나 들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가 허브에 대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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