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먹고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들었을 때 청소하라는 말을 듣는 다면 하기 싫어진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은 의무가 된다. 하지 않아도 되는'쓸 데 없는 일'을 할 때 사람은 비로소 마음을 다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다. 자발성은 이처럼 의무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다.
이제 나는 글쓰기에 이어 그림 그리기로 '쓸 데 없는 일 한 가지'를 더 늘려보려고 한다. 나에게 '그림 그리기'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난 유난히 그림을 못 그렸다. 나는 5남매 중에서 넷째인데 위로 세 명은 정말 그림을 잘 그렸다. (동생은 6살 터울인데 그림을 잘 그렸는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나는 미술시간도 싫었고 방학숙제로 그림 그리기가 있으면 부담스러워 언니 오빠의 도움을 받았다. 하얀 스케치북을 펼치면 막막하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 그리기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아주 즐거워하는 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아들 성두는 매일 집과 자동차를 그렸는데 너무 즐거워하였고 그 모습이 너무 좋기도 하고 부러웠다. 미술학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는데 거기서도 성두는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우연히 초등학교 아이들이 상을 받도록 선생님들이 도와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미술 선생님들께 성두가 그림을 잘 못 그려도 좋으니 자신의 힘으로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덕분인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도 그림에 재능이 없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림 그리기를 계속 좋아했다. 둘째 선영이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종이를 접어서 작은 만화책을 만들기도 했다. 두 아이 모두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시간을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느덧 성인이 된 아이들도 사느라 바쁜 나이가 되었나 보다. 지금 함께 사는 조카 수아도 그림을 좋아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예전처럼 그리지 않는다. 아직 초등학생인 유빈이는 또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닐 시간에 뒹글 거리며 많은 시간을 그림을 그리며 지낸다. 요즘엔 그림 앱을 이용해서 나를 위해 몇 개의 이모티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유빈이는 언제까지 그림을 그리게 될까?
이렇게 아이들은 대부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재미를 잃게 되고 어른이 되면 그림 그리기가 중단되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왜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가만히 기억해 보면 언니가 예쁜 인형을 그려주는 것을 좋아하고 오빠가 그림을 그리며 실감 나는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직접 그리면 언니나 오빠처럼 되지 않으니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림은 평가의 대상이었다.
그림을 원래 못 그린다고 정해 놓은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불리한 평가를 내려줄 미술시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딱 한 번 아주 재밌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경복궁으로 사생대회를 갔었는데 당시 나는 오빠가 빌려준 이젤을 가지고 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괜히 그림 꽤나 그리는 사람인양 보였고, 나 스스로도 이젤을 어깨에 메고 가는 동안 그림꽤나 그리는 화가 인양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것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었는데도 내가 화가가 되었다는 기분이 된 것만으로도 그림이 잘 그려졌다. 평소 보았던 오빠의 모습을 흉내 내며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내 눈으로 봐도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림이 완성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과감한 터치로 진짜 화가가 된 양 몰입하고 있었고, 내 주위에는 그림 그리기를 대충 끝낸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난 무대 한가운데 조명을 받은 주인공 배우가 된 기분. 그러나 마지막 순간 한 남학생이 뒤쪽 사람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이젤이 넘어지고 물통이 엎어지고 그림은 끝장났다.
환상열차를 탔다가 내린 기분이었다.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서일까? 내 추억은 더 달콤하고 아쉬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날의 작은 설렘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흰 도화지만 보면 점점 더 어색하고 막막해지는 어른이 되어갔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서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어떤 사물을 그냥 바라보는 것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는 내용의 글귀가 내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켰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장면들을 많이 만날 테지만 얼마나 마음속에 담아 올 수 있을까? 그리기 위해서 사물을 바라본다면 보다 더 오랜 시간 사물을 바라볼 수 있고, 그러는 동안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과 가치를 발견하고 여행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 날부터 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즐거워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물을 바라보는 장면'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여행이란 낯선 세계를 만난다는 것. 일상을 통해서도 낯선 세계를 만난다면 삶은 여행이 될 수 있다. 낯선 세계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익숙하던 세상을 새롭고 낯설게 인식하기 위해서 '그림 그리기'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여행하면서 여유가 생기면 그림을 그리겠다고 캠핑카에 스케치북과 간단한 그림도구를 챙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긴 여행은 생존에 필요한 짐 조차도 덜어내야 했기 때문에 차에 실을 궁리를 하지 못했다. '필요하면 여행하다 사면되지,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스케치북이나 화구를 사지는 못했다. 그래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혹은 지나다니면서 간단히 따라 그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그림들은 사진에 담았다. 돌아가면 그리겠다고.
그러나 돌아와서 몇 개월이 지나도록 여행기를 쓰느라 그림은 또 뒷전.
1년 여행기를 쓰는데 1년이 훨씬 더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일기나 메모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글을 써야 할까 많이 망설였었다. 그러나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기에 쓰기로 결정했다.
남편과 함께 쓰고 있는데 남편 글의 조회수는 나의 몇십 배. 어떤 날은 몇 백배. 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은 정보도 거의 없는 내글에 더 깊은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전문 작가나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안심되고 편한지 모른다. 그만큼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를 누리다 보니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쑤욱 올라왔다.
가방 안에 작은 공책과 연필 한 자루가 마침 있었다. 해남에 있는 친구 집에 며칠 머물기 위해 짐을 싸던 중에 왠지 작은 공책 하나가 눈에 띄었었다.그리고 작은 연필한자루까지. (그리고 보니 내 무의식은 그 때부터 그림 그릴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우개는 없었지만 그것도 오히려 욕심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커다란 식탁 위에 컵 하나를 올려놓고 자세히 바라다보는데 생각지 않았던 컵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그린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냈다. 1일 1 그림 해보겠다는 결심을 알려야 매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날도 그림을 그렸다. 이번엔 커다란 주전자. 주전자의 꼭지 그림자, 테이블보에서 비친 수탉 한 마리가 포인트다. 친구들에게 보내는 사진에 처음엔 그림만 담았는데 다음 날은 창밖의 풍경도 담았다. 꽃병을 그리며 작심삼일도 지나갔다. 주말엔 쉴까 생각했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까지 미술학원에라도 가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못 그려도 너무 못 그리는 내가 미술학원에 간다는 용기를 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차라리 못 그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동굴에 처음으로 벽화를 그리던 몇 천 년 전의 어느 사람처럼 자유롭게... 어떤 법칙도 질서도 없이 내 마음대로 그리는 그림.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는 그림.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무턱대고 그림을 그린다고 연필을 잡고 대상을 바라보는데 너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교 사생대회 때 이젤을 세워놓고 화가가 된 양 풍경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이 다시 연결되는 기분이다.
언니 오빠가 그림을 잘 그려서 내가 그림에 자신이 없었다면, 이젠 거꾸로 나의 못 그린 그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림에 자신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못 그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그림 그리기를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