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는 건너뛸까?

여행 계획을 하면서 라트비아는 생경한 나라였다. 그래서 추워지는 날씨에 그냥 건너뛰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는 라트비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오히려 탈린에 비해 더욱 자연스러운 멋을 가진 체시쓰 성도 좋았고 시굴다의 아름다운 숲에서 맛있는 야생 사과도 듬뿍 얻었다. 탈린보다 훨씬 더 싸면서도 질이 떨어지지 않는 맛 좋은 음식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갑작스레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서 생각보다 빨리 리가로 가야 했지만 리가 근교에서 인심 좋은 호스트를 만나 자동차 문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아름다운 숙소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탈린에서 오케스트라에 감명을 받은 우리는 라트비아의 리가에 도착했을 때 바로 오페라를 예약하기 위해서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공연 중인 작품은 투란도트였다. 고등학교 시절엔 대부분 번역극이라 그랬는지 작품에 전혀 공감하기 힘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비싼 입장료가 부담되어 난 오페라에 원래 관심이 없다면서 멀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유럽에 와서는 유럽인이 쓴 동양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서양 사람의 눈으로 본 동양의 모습이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고 입장료도 너무 착하다.게다가 우리의 목적은 오페라보다는 음악감상이었으므로 설령 오페라가 재미 없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라트비아의 농촌 풍경과 아름다운 만호의 작은 집. 우리 부부는 이날 팔짱을 끼고 결혼식 하는 기분으로 꽃길을 걸었다.
시굴다라는 유명한 국립공원과 체시스 성
러시아 마지막 여행지에서부터 시작된 사과 수확은 점점 더 본격적으로 풍성해졌고 즞가을 스위스 여행까지 이어졌다


비수기라 방 한 개 비용으로 이 예쁜 집을 통째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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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한여름 꽃 장미도 서리를 견디며 피어있는 얇고 우아한 꽃잎들이 신기하다. 유럽인들은 장미, 백조를 특히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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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를 타는 소녀들과 총을 들어야 했던 소년들. 길을 걷다 만난 소녀상이 우리의 소녀상과 꼭 닮았다


오페라 공연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시내 구경을 하였다. 광장의 동상이며 전시물들을 둘러보며 라트비아의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많은 사진들 가운데 어린 소녀들이 시베리아로 강제 이송되는 장면과 어린 소년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모습 앞에서 가슴이 미어졌다. 이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아픔이 가슴에 파고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디서나 약소국의 운명은 똑같이 기구했구나...

길을 걷다가 만난 작은 소녀상이 또 내 발을 한참동안 붙잡았다. 참담했던 전쟁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 아픔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슬픔과 당당함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우리의 소녀상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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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민의 절반이 희생된 라트비아는 이를 기념하는 동상들을 통해 간절히 평화를 염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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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소련에서 독립하기 위해 200만명이 참여해서 발트 3국 600킬로를 연결한 인간 띠의 정 중앙을 기념하는 표지판과 당시 사람들의 모습.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모르고 지냈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세상에서 아주 위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1989년 5월 인류 최초 최대규모로 만들어진 인간띠.무혈 혁명, 노래 혁명,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내가 바로 그 현장의 정 중앙에 서 있다니!(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2006년 12월 11일 자 오마이 뉴스 서진석 기자가 쓴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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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1년 8월 23일 감격스럽게 독립을 쟁취한다.

전쟁기념관에서 라트비아가 세계대전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나라들이 피해를 당했지만 비율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라는 것이다. 라트비아에서는 이웃나라 에스토니아에서 보다 국기를 많이 본 것 같다. 나라를 잃을 뻔한 역경을 여러 번 겪으면서 그 경각심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약소국으로서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로서 그들의 애국심에 공감이 갔다. 요즘 들어 애국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지 절감하고 있고 깃발에 대한 좋지 않은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라트비아 국기가 들어간 리가의 마그네틱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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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 검은머리 전당과 세계 최초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곳이라는 걸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동상.

검은 머리 길드의 화려한 역사를 말해주는 검은 머리 전당의 문에는 그들의 수호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모리셔스 출신의 흑인 성인이라고 한다.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800년 전 만들어진 길드 조직의 수호신이 검은 머리의 흑인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제국주의와 노예무역으로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19세기와 20세기 근세에 비해 훨씬 더 옛날에는 흑인을 성인으로 받들만큼 인종차별이 없었던 것일까?


대극장은 시설면에서 탈린에 뒤지지 않았고 무대도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투란도트 공연은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이번엔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무대와 의상이 주인공이었다. 무대가 아주 잘 보일 뿐만 아니라 대사를 보기도 편해서 극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투란도트 감상

오페라에 관심이 적지만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나 투란도트는 너무도 유명해서 작품 이름만큼은 꽤 익숙했다. 하지만 역시 관심이 별로 없었던 터라 우리가 보기로 한 투란도트가 중국 공주의 이름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름이 너무 중국스럽지 않은 점이 의아 해서 알아보니 페르시아 말이었다.투란이라는 말이 중앙아시아를 뜻하고 딸이란 뜻의 도트와 만나 중앙아시아의 딸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베네치아의 카를로 고치가든이 페르시아의 천일 야화 중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만들었다고 하니 실제의 중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이야기다.


당시 서양의 눈에 비친 중국 혹은 동양의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며 작품을 감상했다. 특히 이 작품의 원작이 쓰여졌던 18세기는 제국주의 가 시작되면서 서양을 중심으로 동양을 객체화하는 경향이 만연하던 때이다. 전설 이라고는 하지만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공주의 야만적 행동이 매우 낭만적이고 세련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푸치니가 대본으로 각색하던 1920년대의 중국은 한국의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린애처럼 작은 투란도트의 시녀들이나 핑, 펑, 팡의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역할에서 그들이 보았던 동양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과민한 반응일까?


푸치니는 이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이 작품은 비록 끝내 완성하진 못했지만 푸치니가 죽기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한다. 그 사실 때문인지 오페라를 보며 난 극 속에서 더 큰 상징을 찾고 있었다. 투란도트가 그의 선조 할머니가 외국의 왕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한을 품고 수수께끼를 내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국의 왕자마다 죽인다는 것, 그리고 침략을 당하여 자신의 나라에서 쫓겨난 왕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것에 혹시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주의 남성 혐오는 침략전쟁에 대한 혐오를 말하며 예술가가 죽기 전 인류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바람님은 극의 주인공이 류 인 것 같다고 했다.

푸치니가 이 작품에서 만들었던 마지막 부분이 왕자 칼라프를 짝사랑한 류의 죽음의 순간 까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죽음을 앞두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하고 싶은 것이 류의 죽음이 뜻하는 비극적이지만 완전한 사랑이 었을지도 모른다. 푸치니는 배우들이 등장에 따라 악기를 다르게 사용했는데 왕자인 칼라프는 현 , 투란도트는 목관과 현 , 그리고 칼라프를 짝사랑한 비운의 여인 류는 목관과 현에 솔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단순하고 선명한 칼리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한 류의 심리를 표현하려 한 의도로 가정해 본다면 이극의 주인공은 류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푸치니는 사랑의 승리를 말하기보다 사랑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제물처럼 바쳐지는 보다 더 숭고한(?) 절대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주인공의 이름을 비롯하여 전혀 중국스럽지 않은 이야기 전개에 비해 무대나 의상, 특히 음악은 매우 중국스러웠다.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는문외한이지만 중국 특유의 가락과 리듬이 느껴졌다.푸치니가 만들어낸 지극히 동양스러운 음악이 놀랍다.


낯선 이야기와 낯선 가락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가며 푸치니는 창작의 고통 만큼 행복했을 것 같다.

익숙함과 편리함을 던지고 기꺼이 불편하고 낯선 세계로 한 발씩 내딪고 있는 지금 내가 행복한 것 처럼.


서유럽에서도 음악여행이 계속되었으나 정말 기대했던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독일의 뮌헨에서 우리는 뜻밖에 많은 실망을 했다. 특히 오페라 무대는 동유럽에 비해서도 볼거리가 너무 적었고 그나마 싸구려 좌석은 무대가 보이지 않는 황당함. 심지어 영어 대본을 보는 것도 비싼 좌석이나 운이 좋은 사람의 경우만 가능하였다. 매우 친절하게도 스탠딩 관람이 힘든 사람에게 지하 극장에 마련된 스크린을 보여 주는 경우도 있는데 정말 김이 완전히 빠져버린 맥주 맛이었다. 그나마 런던에서 다시 한번 오페라에 빠져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서유럽의 스탠딩 입장료 정도로 동유럽의 질높은 음악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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