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영감이 넘치는 나라 리투아니아
동화 같은 풍경 트라카이
트라카이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친구들과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생과 사의 경계에서 치열한 전쟁터였던 성을 경험했었다. 그 이후로 예쁜 성에 대한 환상이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멀리 숲 속의 예쁜 성을 보자마자 황홀해진다. 그리고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우리가 주차할 곳을 찾기가 그만큼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오랜만에 제법 비싼 주차비를 내야 했다. 그래도 우리 아톰이 주차한 곳은 호수를 바라다보며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아름답고 아늑한 곳이었다. 화장실도 있어서 부지런한 바람님이 놓치지 않고 또 수고를 한다. 가쁜한 맘으로 산책을 나서는데 기념품 가게를 지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커다랗고 푸근해 보이는 양털 실내화. 양털이 들어간 어그부츠를 신어본 경험으로 양털의 놀라운 보온력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한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시장에서 비슷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지만 그동안 사지 않았던 게 무척 다행으로 여겨졌다. 러시아부터 지금까지 어디나 양 떼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이런 물건이 어딘가에 꼭 있을 거란 생각했는데 지금 만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사기로 했는데 다 팔릴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빨리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앞에 마치 호수에 떠있는 듯 아름다운 성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연인이나 가족들을 태운 크고 작은 요트들이 출발하는 선착장을 지날 때 요트를 탈까 망설이는 바람님에게 양털실내화처림 오면서 다시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긴 여행 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배를 타야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서 탈 필요가 없다. 더구나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걸 바람님이 잘 알고 있으니 차라리 그 돈으로 양털 실내화를 사자고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멀리 보이던 아름다운 성에 가까이 가니 다시 웅장하고 높은 성벽들이 내 다리를 부담스럽게 만든다. 바람님 혼자서 성안을 구경하고 오라고 했지만 러시아 블라디미르 이후 어디에도 혼자 입장하는 법이 없다. 결국 우리는 성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성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 많던 인파들을 만나지 않고 의외로 우리만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쁜 관광객들 덕분에 텅 빈 벤치도 우리 차지였다. 우리는 훨씬 더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 성 구석구석을 다니며 세월의 흔적들을 찾아내기도 하고 혹은 반대편의 인적이 드문 호숫가를 거닐며 맑은 물속에 보이는 물고기를 바라보기도 했다. 멀리 혹은 가까이 보이는 요트들이 더 아름다운 풍경화를 만들어 내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트라카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풍성해진 마음으로 양털 신을 함께 샀다.
전망대
가는 곳마다 볼거리를 자랑하고 싶은 곳엔 전망대가 있다.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라면 대게 무료로 개방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여유 있으며 안전한 곳에서 천천히 날이 저무는 것을 보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어딜 가나 예술과 만나기 쉬운 나라 리투아니아
멀리 호수에 비친 마을은 관광지보다 더 아름답다. 사과나무와 낡은 나룻배, 그리고 떨어진 사과들이 어느 유명한 설치미술 작가의 작품 못지않다.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실제 삶이 만들어낸 우연한 조화에 더욱 끌림을 느끼게 된다.
마을을 벗어나 다른 마을로 들어설 때 예상치 못했던 작품들을 만나곤 한다. 리투아니의 예술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트라카이는 매우 아름다운 성이었지만 유럽의 여러 성들을 방문하다 보니 느낌이 비슷비슷한 곳이 많았다. 그래서 나중엔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해진다. 그러나 일상에서 발견했던 아름다운 순간이나 넘치는 영감을 주는 작품들은 여행이 끝난 다음에 더욱 기억이 새롭고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